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15일 ’페미니즘은 세상의 혐오와 싸우고 있고, 결국엔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청소년들이 뽑은 서울시장은 누구였을까.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3일 투표권이 없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 4만5765명이 한국YMCA 등의 주관하에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박원순 후보는 2위였다. 그럼 김문수 후보나 안철수 후보? 당선자는 36.6%를 얻은 기호 8번 신지예(28) 녹색당 후보였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슬로건에 ‘삐딱한’ 시선과 ‘도도한’ 표정의 사진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 또한 맘고생이 적잖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완주했고, 개표 결과 8만2874표(1.7%)를 얻으며 당당히 4위에 올랐다. 선거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을 15일 그를 만났다. 1시간 넘게 이어진 그의 답변은 차분하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전
2020년 총선 때 원내진입 목표
벽보에 당당한 눈빛 담았다 생각
시건방? 쾌감 느낀 세대도 있어
정치가 바로 서면 개인 삶 달라져
어떤 차별도 없는 세상 만드는게 꿈
- 질의 :선거 결과에 만족하나.
- 응답 :“만족스럽지 않다(웃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싶었다. 분위기가 좀 늦게 떴달까. TV토론에라도 나갈 수 있었다면 김문수 후보는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 질의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나.
- 응답 :“2012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녹색당에 가입했지만 정치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신 2013년 동료들과 청년기업을 만들었다.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청년들이 주체가 되는 사업을 해보자는 게 목표였다.”
- 질의 :그런데 서울시장 출마까지 했다.
- 응답 :“1990년생 백말띠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백말띠 여성은 남성을 잡아먹을 거라는 등 온갖 험한 소리를 듣고 자라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해 낙태가 가장 많았고 성비도 최악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자기가 선택해서 태어난 성별이 아니잖느냐. 그런데 그 성 때문에 위험에 항상 노출된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면 당신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말해주고 싶었다. 정치가 바로 서면 개인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지방선거 출마 포스터.
- 질의 :두렵진 않았나.
- 응답 :“밀림에 큰불이 나자 모든 동물이 달아나는데 벌새 한 마리가 물을 머금고 바쁘게 오갔다. 코끼리가 물었다. 그 정도 물로 불을 끌 수 있겠어? 벌새가 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가냘픈 목소리에 불과하겠지만 벌새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도 바뀌지 않겠나.”
- 질의 :선거를 치르면서 힘들었던 점은.
- 응답 :“군소정당 후보의 비애가 컸다. 후보 기탁금 5000만원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선거권을 갖고 있는데 기탁금이란 장벽으로 청년과 서민들이 정치를 할 수 없게 해놓은 거다. TV토론도 마찬가지다.”
- 질의 :벽보 훼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 응답 :“한편으론 그런 현상이 신기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시건방? 의도한 건 전혀 아니었다. 당당한 눈빛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층에겐시건방지게 느껴졌다는 게 오히려 재밌었다.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여성과 정치에 대한 상(像)이 시건방지다는 단어에 담겨 있다고 본다. 반면 어떤 세대에게 제 사진은 쾌감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정치를 읽는 세대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
- 질의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세웠는데.
- 응답 :“서울도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차별하고 배제했던 게 그동안 서울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평등이다. 이만큼 성취했으면 그동안 배제됐던 약자를 배려하는 게 이 시대 정치인들의 소명이라고 봤다. 그중에서도 성평등이 가장 큰 현안이라고 본 거고.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 않나.”
- 질의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도 적잖다.
- 응답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고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 오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질의 :큰 정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나.
- 응답 :“그런 유혹도 굉장히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의회 정치에서는 한 사람이 당선되는 것보다 여러 정당이 시민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 왜 거대 정당에 가지 않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 정당에도 카르텔이 워낙 공고했다. 줄도 서야 하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 질의 :남자 친구는.
- 응답 :“하하하. 없다. 연애는 많이 해봤다. 그리고 나는 비혼주의자다.”
- 질의 :선거 포스터 사진은 맘에 드나.
- 응답 :“나는 정면 사진이 좋았는데 다른 분들이 더 강렬하다며 반대하더라(웃음).”
- 질의 :앞으로의 계획은.
- 응답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이 제 출마 목표였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해 나갈 것이다. 녹색당도 원외정당으로 6년간 국고보조금 한 푼 없이 버텼다. 그 생명력을 살려 2020년 총선에선 꼭 원내에 진입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