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녹차 쉼터로
사월 하순 토요일은 섬진강 트레킹을 나섰다. 지난겨울부터 올봄에 하동 화갯골과 섬진강을 몇 차례 걷는다. 의신계곡 지리산 기념관에서 서산대사 길을 걸었다. 화개장터에서 남도대교를 건너 구례에 이르는 수달생태공원도 찾았다. 이후 악양 평사리공원에서 화심으로 걸어 김태수 시인 ‘섬진강 탄곡’도 살폈다. 지난번은 섯바위 설화에 서린 한유한 은둔지 빗돌도 알게 되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천 상류에서 창원대학을 관통해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부전역을 출발 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주말이라 승객이 만석이다시피 빼곡했다. 그러함에도 전날 도서관에서 빌린 프랑스 젊은 작가 니콜라 마티외의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을 읽었다. 1990년대 프랑스 북부 노동자 계급의 방황하는 십대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하동역에 닿아 화개를 거쳐 쌍계사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몇 차례 다녀 읍내를 빠져나가 악양에 이르는 차창 밖 풍광이 낯이 익었다. 평사리에서 외둔을 지난 검두에서 내렸다. 지난번 화개로 오르던 길목 못다 걸은 구간을 걸을 참이다. 유홍준이 남긴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자동찻길 차창 밖 풍광이 제일 아름답다는 구간이다. 찻길 건너 강가로 가니 대숲과 은모래가 펼쳐졌다.
유속이 빠르고 맑은 물이 흐르는 섬진강 상류 냇바닥에는 물살에 둥글게 마모된 바윗돌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좁은 강폭에 빤히 건너다 보이는 마을은 광양 다압 청매실마을에서 구례 수달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섬진강이 남해로 빠져나가는 하동과 광양은 지리산과 백운산 산세 봉우리가 뾰족해 영남의 노년기 지형이 아닌 침식이 덜 된 장년기 예각 지형으로 봐도 될 듯하다.
신기마을을 지난 덕은 나루터에는 ‘대금이들’ 설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대금을 부는 경상도 총각과 판소리를 잘하는 전라도 처녀가 서로 솜씨를 익혀 칠월 보름날 밤에 만나기로 했는데 장대비에 강물이 불어 상봉 못해 애를 태웠는데. 발을 동동 구른 지 수 시간 만에 강물이 잦아들고 보름달이 훤히 떠올라 만날 수 있었더란다. 이후 덕은마을 앞들은 ‘대금이들’로 불리어 온단다.
중기마을을 지난 제2 쉼터에서 더 상류로 가니 화개장터 기점 제1 쉼터에 이어 은모래 쉼터도 나왔다. 강바닥에 모래가 많아 ‘모래가람’, ‘두치강’, ‘다사강(多砂江)’으로 불린다는 섬진강이었다. 토지 작가 박경리는 그의 작품에서 “촉촉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 섬진강의 모래는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라는 인용구를 표지판에 새겨 세워두었다.
대숲을 지난 어디쯤에서 누군가 먼저 채집해 간 두릅나무 두 번째 순이 나와 자랐다. 국가하천 청정지역 두벌 두릅을 몇 줌 따 배낭에 채운 의외의 성과가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녹차밭이 나왔는데 할머니 둘이 차양이 넓은 모자에 수건을 둘러 찻잎을 따 자루에 담았다. 곡우 무렵 딴 찻잎을 덖은 제다 제품은 ‘작설차’로 이름 붙인다. 참새 혓바닥처럼 작고 여린 잎이었을까.
강변 따라 차밭에서 할머니가 찻잎을 따던 구간을 지나자 ‘천년 녹차 쉼터’가 나왔다. 하동에서 태어난 정호승 시인이 어느 해 야생차 문화 축제를 다녀가면서 남긴 축사를 안내문에 새겨 놓았다. “지금 하동은 차나무에 새움이 돋는 거룩한 시간 푸른 빗줄기 사이 찻잎도 푸르다. 지리산은 아들을 키우듯 야생의 차나무를 키우고 섬진강은 딸을 낳듯 하동 녹차를 낳는다”고 했다.
강심으로 남도대교가 걸쳐진 화개장터 들머리에 한 할머니가 두릅 순을 가득 펼쳐 놓고 손님을 맞았다. 고생해 딴 두릅을 못 팔아 안쓰러워 보였는데 사주십사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한 묶음 샀다. 배낭에는 내가 딴 두릅이 채워져 할머니한테 산 두릅 봉지는 손에 들었다. 장터 재첩국으로 점심을 먹고 하동 읍내로 나가 순천을 출발해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복귀했다. 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