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39)
사울왕은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가는 다윗에게 투구와 갑옷을 입히고
군복 위에 칼을 차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였으므로 군복이 불편하기만 하였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갑옷과 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다윗은 세상의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아니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며 양을 치는 목동으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영적 전쟁이요 믿음의 싸움을 싸우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전쟁을 위한 갑옷과 칼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싸움을 위하여 믿음으로 무장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전쟁은 육의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도를 거스려 대적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원수 마귀와의 영적 전쟁입니다.(엡6/10~)
골리앗은 믿음을 대적하는 악한 원수 마귀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그 입으로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는 것이지요.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계13/5~6)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40)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43)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의 차림으로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아갑니다.
이 막대기는 양을 보호하며 인도하기 위해 쓰여지며 때론
양을 해하려는 짐승을 대적하며 때리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양무리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골리앗을 개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짐승 쫒는 막대기를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무리를 인도하시며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지팡이요 원수에게서 보호하시는 막대기가 되어집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그리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개를 골라서 목자의 주머니에 넣습니다.
시내는 목동이 양을 몰고 와서 목을 축이게 하며 쉬게 하는 곳입니다.
또한 시냇가의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이니(시1/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수가 되어집니다.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무성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형통케 하십니다.
이곳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고릅니다.
시내에 있는 돌은 동글 동글하고 매끄러운 차돌입니다.
차돌은 철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인데 매끄럽고 동글 동글하게 단련되고 깎인 것은
물의 힘으로 둥글러져 모나고 뾰족한 부분들이 매끄럽게 깎인 것이지요,
철연장으로 깎은 돌은 하나님 제단의 재료가 될 수 없습니다.
자연석이 아닌 절 연장으로 깎은 돌은 인위와 인간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수8/30~31)
물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차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은 심령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연단되고 단련되어 인간의 모나고 거친 성품이 매끄럽게 변화된 심령이
곧 매끄러운 차돌인 것입니다.
이 차돌을 부싯돌로 사용하여 불을 일으키기도 하고 이것을 쪼개어 할례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매끄러운 차돌을 부딪치면 불이 일어납니다.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출4/25)
차돌은 깨어지면 날카로운 돌칼이 되어집니다.
이 돌칼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이지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수5/2)
부싯돌로 만든 칼은 불을 일으키는 칼이요. 불칼로 할례를 행하는 것은 곧
성령의 할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단련되고 정결하게 된 심령엔 성령의 불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차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심령을 의미하고
돌 다섯은 다섯 수이니 다섯 수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오순절(50)에 이루어졌습니다.
차돌 다섯은 말씀으로 연단되고 온전하게 된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불 같이 역사하실 때에 원수 골리앗은 꺼꾸러지고 마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이 막대기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에 골리앗은 말하기를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들고 나오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다름아닌 개입니다.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니 막대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개와 같은 인생을 막대기로 치시고 징치하십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45)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47)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9)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 하였습니다.
골리앗은 자신의 힘과 병기를 의지하고 싸웁니다.
그러나 다윗은 육신의 힘과 방법(갑옷과 무기)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갑니다.
세상과 성도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만
성도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지요.
전쟁은 여호와께 달렷습니다. 영의 전쟁도 여호와께 달린 것입니다.
육신을 의지하는 자는 패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다윗과 같은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시내에서 취한 매끄러운 차돌을 물매로 던지매 골리앗의 이마에 차돌이 박히므로
골리앗은 땅에 엎드러지고 맙니다.
차돌이 이마에 박히지요 그 이마는 굳은 이마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마요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하는 악인의 이마인 것입니다.(시10/4)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아무리 강대하고 흉익한 원수일지라도
거꾸러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갈고 닦은 심령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그 어떤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천하무적이 되는 것이지요.
다윗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요 우리 성도들의 승리를 예표하는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소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로 창골산 봉서방 카페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귀한 섬김을 통하여 모두에게 유익이 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