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함정에 빠지게 되는 구절이 있다.
<로마서>
3:27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3: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4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4:5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4:6 행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사람의 복에 관하여 다윗도 말하였으니
4:7 말하기를 "죄악들이 용서받고 죄들이 가리워진 사람들은 복이 있고
4:8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느니라.
4:18 그가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으니 "네 씨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백 살이 되고서도 자기 몸이 이제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도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였느니라.
4:20 그는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느니라.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느니라.
이 구절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행위'가 필요 없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계속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야고보서의 이 구절과 마주치게 된다.
<야고보서>
2:14 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2:16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하면서 그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2:17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2:20 오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2:21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2:22 믿음이 어떻게 그 행함과 더불어 작용하였으며,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음을 네가 보느냐?
2:23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는 성경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2:24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2:25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그들을 보냈을 때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니라.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왜 성경에 이렇게 충돌되는 구절이 있는 것인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거야? 아니면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거야?
이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이 구절에 들어 있다.
3: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바울은 분명 '율법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모든 행위를 다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율법의 행위'만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히브리서에 나온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지녔느니라.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 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을 통하여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에 의한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차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떠나가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으며
11:9 믿음으로 그는 타국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기거하여 그와 함께 그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느니라.
11:10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성을 기다렸음이니 그것을 세우시고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11:11 사라 자신도 수태할 나이가 지났지만 믿음으로 씨를 잉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신 줄로 여김이라.
11:12 그러므로 죽은 자와 같이 된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늘의 수많은 별과 해변의 헤아릴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이 생육하였느니라.
11:13 이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은 것은 아니로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또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느니라.
11:14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자신들의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
11:15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11:16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
11: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11:18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씨라 불리울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11:19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들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고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하나 하나에게 축복하였으며 그의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드렸느니라.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에 관하여 말하였고 또 자기 유골에 관하여 명하였느니라.
11:23 믿음으로, 모세는 태어났을 때에 출중한 아이로 보였기에, 그의 부모가 삼 개월 동안 숨겼으니, 이는 그들이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11:25 잠시 동안 죄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고
11:26 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음이라.
11:27 믿음으로 그는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이는 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었기 때문이라.
11:28 믿음으로 그가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지켰으니, 이는 첫 태생을 멸하는 이가 그들을 손대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라.
11:29 믿음으로 그들은 마른 땅을 가듯이 홍해를 통과하였으나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느니라.
11:30 믿음으로 그들이 칠 일 동안을 돌았더니 여리코의 성벽이 무너졌느니라.
11:31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함으로 믿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믿음을 행위로써 입증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부정한 '행위'에는 이런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위'도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행위'를 말하고 있고,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충돌되지 않는다.
로마서를 읽을 때 바울이 부정하는 '행위'가 '모든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임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마저도 부정하고, 믿음만 있으면 행위가 없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져들기 쉽다.
로마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히브리서를 종합해 봤을 때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그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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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믿음 말고도 행위가 필요하다면 과연 은혜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에베소서>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역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므로 다음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