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
한평생 학문에 매진
퇴계학맥 꽃피운
'영남의 소퇴계' 참된 선비의 기상 가득
고산서원은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상정(1710~178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대산 이상정과 소산 이광정 배향.
대산 이상정(1711-1781)은 한평생 오직 학문으로 나아간 인물이다. 흔히 대산 이상정을 퇴계 학맥을 이은 대학자라고 부른다. 그의 별칭이 ‘소퇴계’인 것을 보면 일찍이 그의 학문은 근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중앙에까지 두루 미치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퇴계 학맥의 연원과 정맥을 이어받아 꽃피운 것에 비해 인식은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에 아쉬움을 남긴다. 영남학맥에서 대산만큼 학문이 깊은 사람도 드물었다.
그의 제자 인명록인 ‘고산급문록’에 올려 있는 문하생만 273명에 이른다. 안동 일직 망호리 출신의 이상정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목은 이색의 15대 후손이다.
대산은 70세(정조4)에 이르러 정3품 당상관인 예조참의가 되었고 세상을 떠난 해인 3월에는 형조참의가 되었으나 사직했다. 그해 6월 ‘9조소’를 올린 뒤 12월 9일 세상을 하직했다.
세상을 떠나면서 올린 9조소에는 대산의 평생 학문이 이 한 편의 글에 응축돼 있다.
입지(立志), 이치를 밝히는 일(明理), 거경(居敬), 하늘을 본받기(體天), 간언을 받아들이기(納諫), 학교를 일으키기(興學), 사람 부리기(用人), 백성 사랑하기(愛民), 검소하기(尙儉) 9조소의 항목이다. 대산은 이 9개 항목이 모두 덕을 연마하고 본심을 기르는 요점이고 정치를 잘하는 근본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정조는 “좌우명으로 바꾸어놓고 보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겠다”고 다짐하고 대산을 크게 등용할 의사를 가졌으나, 이미 대산이 세상을 뜬 후였다.
ㅡ 오종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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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9
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