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다들 고선지가 누구인지는 압니다. 다만, 철저히 당나라 사람으로서 당나라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며 당나라 사람으로서 살아간 그를 교과서에 실는다는 것도 저 개인적으론 부정적이고, 굳이 당나라 사람으로 살아간 그를 고구려 유민 2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역사속 위인으로 삼는 다는 것도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정기가 조명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선지는 유민 2세라지만, 이정기는 무려 3세. 거기에 성 이씨는 당의 왕성을 사성받은 것이지요. 이정기가 평로치청을 장악한 이후에도 나라를 건국하거나 뚜렷하게 당나라에 맞섰던 것도 아니죠. 이런 이정기의 제나라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고구려님// 지금과 같은 태도는 토론하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토론은 '반론이 있어서는 안 됨' 이 아니라, 토론예의(욕설, 내용과 관련없이 상대에 대한 인격적 모독 등)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라면 상대의 주장을 얼마든 반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또다시 맞받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만을 하고 싶다면 그건 토론 게시판이 아니라 다른 게시판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고구려님이 토론을 하고 싶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조명해야 하는가' 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셔야지요.
앞서 다른 글에서 잠깐 꼬리말로 남긴 바 있지만, 고선지가 '한국의 위인' 으로서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선 고선지를 '고구려 장수' 라 보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고구려와 연결될 그 어떤 발언이나 업적도 남긴 바 없습니다. 즉, 고선지는 '당대의 한국' 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다고 볼 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당나라 군대의 일원으로서 당나라를 위해 한 서역정벌이 '세계사' 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그게 왜 한국사에 유의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요?
마치 (아일랜드계 이민 3세인) 케네디 대통령을 (미국인이 아니라) 위대한 아일랜드인, 아일랜드의 위인.... 이라고 추켜세우는 것과 고선지를 위대한 한국의 위인이라 말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그리고... 웬 히말라야입니까? 고선지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 중국에서 '인도' 를 정벌하러 간다면 몰라도 '서역'(중앙아시아)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히말라야를 넘을 이유가 없습니다. 힌두쿠시 산맥을 히말라야로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주가효님이 맞습니다. 힌두쿠시입니다. 고선지 군의 전술작전이 관심의 대상인 거 자체는 맞습니다. 일단 탈라스 결전이라는게 동방문명과 서방의 이슬람 문명(일단 서방을 트란스옥시아나를 기준으로 이서로 가정)이 정면대결한 첫 전투인데다가 이 전투 이후 동방 중국제국이 원제국이나 청제국 같은 정복왕조를 제외하고는 1000년 이상 트란스 옥시아나를 완전히 상실한데서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당시 안서도호부군의 작전이 일종의 기동작전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전사상 의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선지, 이정기 둘다 재조명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영웅대접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당나라의 사람으로서 당나라 국기를 들고 싸운사람들입니다. 이정기는 거기다가 반란까지 일으켰죠. 그리고 고구려유민들이 보기엔 당나라에 빌붙어서 산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재조명하는건 친일파 사람들을 재조명하자는거랑 똑같습니다. 똑같을 뿐입니다. 도리어 당나라의 이민족융합 정책을 본받는게 훨씬낫습니다.
한국사의 관점에서는 그닥 주목할 필요가 없을 수 있겠지만, 세계사나 동양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두 사람 모두 주목할 만한 인물이지요. 고선지는 고난이도의 원정을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제지술로 대표되는 당의 문화가 서방으로 전파되는데 한 몫 했고, 이회옥은 당 말에서 송의 중국 재통일 사이 기간에 등장하는 자립형 절도사의 효시를 이뤘으니까요. 두 사람을 친일파와 비슷한 관점에서 보는 건... 에... 조금은 현재주의적인 관점이 아닐까 합니다만^^;
위 여러님들의 의견 모두가 의미가 있읍니다만, 제생각에는 알아서 나쁠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안다고 영웅이 되는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매도가 될 필요도 없고 있는그대로에서 취할것은 취하고 알것은알아서 이 현실에서 반영하면 될 듯 합니다..내역사를 알고 지키려면 남의역사를 같이 알아야 하는것은 당연한 일 이니까요...
첫댓글 다들 고선지가 누구인지는 압니다. 다만, 철저히 당나라 사람으로서 당나라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며 당나라 사람으로서 살아간 그를 교과서에 실는다는 것도 저 개인적으론 부정적이고, 굳이 당나라 사람으로 살아간 그를 고구려 유민 2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역사속 위인으로 삼는 다는 것도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당나라 시기 고구려 ,백제의 유민으로써 성공한 사례는 흑치상지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선지는 유민이라기 하기도 뭣한게... 고사계가 당나라로 건너온 뒤 당나라에서 태어난 2세라서요, 마치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떠벌리는거랑 다를게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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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가 조명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선지는 유민 2세라지만, 이정기는 무려 3세. 거기에 성 이씨는 당의 왕성을 사성받은 것이지요. 이정기가 평로치청을 장악한 이후에도 나라를 건국하거나 뚜렷하게 당나라에 맞섰던 것도 아니죠. 이런 이정기의 제나라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고구려님// 지금과 같은 태도는 토론하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토론은 '반론이 있어서는 안 됨' 이 아니라, 토론예의(욕설, 내용과 관련없이 상대에 대한 인격적 모독 등)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라면 상대의 주장을 얼마든 반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또다시 맞받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만을 하고 싶다면 그건 토론 게시판이 아니라 다른 게시판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고구려님이 토론을 하고 싶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조명해야 하는가' 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셔야지요.
탈라스 전투의 그 장군님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선지장군의 전투 전술작전이 어떠하기에 세계 각 국의 군사 연구가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 지네요
앞서 다른 글에서 잠깐 꼬리말로 남긴 바 있지만, 고선지가 '한국의 위인' 으로서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선 고선지를 '고구려 장수' 라 보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고구려와 연결될 그 어떤 발언이나 업적도 남긴 바 없습니다. 즉, 고선지는 '당대의 한국' 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다고 볼 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당나라 군대의 일원으로서 당나라를 위해 한 서역정벌이 '세계사' 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그게 왜 한국사에 유의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요?
마치 (아일랜드계 이민 3세인) 케네디 대통령을 (미국인이 아니라) 위대한 아일랜드인, 아일랜드의 위인.... 이라고 추켜세우는 것과 고선지를 위대한 한국의 위인이라 말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그리고... 웬 히말라야입니까? 고선지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 중국에서 '인도' 를 정벌하러 간다면 몰라도 '서역'(중앙아시아)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히말라야를 넘을 이유가 없습니다. 힌두쿠시 산맥을 히말라야로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 양귀비가 사랑했던 사람이 고선지 장군이라니...
뭐.. 고구려의 정체성을 갖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그냥 당나라 장군일뿐..패스~~``
미주가효님이 맞습니다. 힌두쿠시입니다. 고선지 군의 전술작전이 관심의 대상인 거 자체는 맞습니다. 일단 탈라스 결전이라는게 동방문명과 서방의 이슬람 문명(일단 서방을 트란스옥시아나를 기준으로 이서로 가정)이 정면대결한 첫 전투인데다가 이 전투 이후 동방 중국제국이 원제국이나 청제국 같은 정복왕조를 제외하고는 1000년 이상 트란스 옥시아나를 완전히 상실한데서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당시 안서도호부군의 작전이 일종의 기동작전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전사상 의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51년 탈라스회전에서 참패후 숙청당했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서역에서 주로 활동을 하셨죠. 그분은 고구려의 유민이라고 보는게 맞죠. 하지만 소속은 당나라 장군이었습니다.
양귀비와 애정행각이 있었다고 추측되는 쪽은 안록산이죠-_-; 고선지는 양귀비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고선지, 이정기 둘다 재조명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영웅대접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당나라의 사람으로서 당나라 국기를 들고 싸운사람들입니다. 이정기는 거기다가 반란까지 일으켰죠. 그리고 고구려유민들이 보기엔 당나라에 빌붙어서 산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재조명하는건 친일파 사람들을 재조명하자는거랑 똑같습니다. 똑같을 뿐입니다. 도리어 당나라의 이민족융합 정책을 본받는게 훨씬낫습니다.
한국사의 관점에서는 그닥 주목할 필요가 없을 수 있겠지만, 세계사나 동양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두 사람 모두 주목할 만한 인물이지요. 고선지는 고난이도의 원정을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제지술로 대표되는 당의 문화가 서방으로 전파되는데 한 몫 했고, 이회옥은 당 말에서 송의 중국 재통일 사이 기간에 등장하는 자립형 절도사의 효시를 이뤘으니까요. 두 사람을 친일파와 비슷한 관점에서 보는 건... 에... 조금은 현재주의적인 관점이 아닐까 합니다만^^;
위 여러님들의 의견 모두가 의미가 있읍니다만, 제생각에는 알아서 나쁠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안다고 영웅이 되는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매도가 될 필요도 없고 있는그대로에서 취할것은 취하고 알것은알아서 이 현실에서 반영하면 될 듯 합니다..내역사를 알고 지키려면 남의역사를 같이 알아야 하는것은 당연한 일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