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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엽기 혹은 진실 (세상 모든 즐거움이 모이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신길동짬뽕
출처 : 잉여인간 또라이짱
살맛 나던 3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다시 또 날이 밝았다.
휴일의 마지막날이었던 월요일 밤, 줄어드는 연휴가 마냥 아깝고 서러워 밤새 이부자리에서 뒤척거렸더니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내내 정신을 못차리고 버벅거렸다.
어설프게 가진 지난 밤 잠자리에 눈이 좀 침침한 것 같아 손거울을 집어들었는데
전에 없던 몹쓸 것들이 피부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패이고 팔뚝살이 처지기 시작하는 옘병 같은 일을 실제로 목격하고 보니
언제 한번 날잡아서 동네 피부과에 예약전화를 때려넣어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회사 창고가 위치한 지하2층 주차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창고 밖에서 대윤오빠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얼마전 고양이 한마리를 주차장 구석에서 본적이 있다는 오빠의 말에
오~드디어 올것이 왔군! 인간 대 고양이가 벌이는 하악질을 라이브로 보여주겠어~하고
느긋하게 밖을 나섰다.
그런데.............................팔뚝만한 고양이는 어데가고 애옹~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뭔가 다른 세계로 인도될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에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손바닥보다도 작은 뭔가가 같은 자리에서 바동거리며 애처로운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아이구야! 새끼 고양이네. 완전 새끼예요. 완전 새끼!"
뭐 그렇다고 불완전 새끼가 있다는건 아니지만 여지껏 살면서 이렇게 작은 꼬물이는 처음 봤던지라
괜스레 호들갑을 떨며 손안에 주워들었다.
아직 눈도 못뜬 꼬물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건지 아니면 곁에 있던 어미가 갑자기 사라져 불안한건지
목청껏 울어대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손목을 벅벅 긁어댔다.
자그마한 발에는 살집이 아직 붙지 않아 뾰족한 발톱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마도 동네 길냥이가 회사 주차장에 새끼들을 낳았는데
수시로 들려오는 차 시동소리에 놀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떨어뜨렸거나
아니면 형제 중 유독 약해보이는 놈이라 부러 놔두고 떠난 것 같았다.
일주일도 채 안되어 보이는 어린 것이 차가운 바닥에서 마냥 울고 있으니
어찌나 딱해보이던지. 마치 계모임에 나가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쳐
동네 입구에서 발작을 지기던 내 7살의 모습과 같았다고나 할까.
우선 작은 박스에 넣어 그자리에 두고 퇴근때까지 기다려봤다가
그런데도 어미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대의 인생은 내가 접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 7시 반, 얄팍한 신문지 한장을 덮고 자는 꼬물이를 박스채 품에 안고
회사를 나섰다.
2008년5월6일.....꼬물이의 인생이 제대로 말리기 시작한 날.
회사 근처의 동물 병원에 들러 꼬물이의 상태를 진단하니 태어난지 5~7일정도 되었으며
다행히 특별한 질병이나 상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요만한 아깽이는 절대적으로 어미품에 의존해야 하고 그편이 살아날 확률이 크지만
이미 혼자가 되버린 이상 키우는 사람의 꾸준한 관심과 보살핌이 살수 있는데에 큰 관건이라 하셨다.
당시에는 뭐 그냥 우유만 냅다 먹이면 살겠지~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직원분께 분유 한통과 조그마한 젖병 하나를 부탁드렸다.
헌데 강아지용 분유만 취급하고 있다는 병원 원장님께서는
언젠가 TV 동물 농장을 봤는데 호랑이 새끼가 강아지용 분유를 먹고 훌륭하게 잘 컸다는 예를 꼽으며
동물 병원에 고양이용 분유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셨다.
고양이용이든 강아지용이든 어린 것이 뭐 맛의 차이을 알겠냐 싶어
그냥 강아지용 분유로 구입했다.
다만 강아지용 분유를 먹고 훌륭하게 잘 자랐는데 성격이 개 같으면
주인이랑 애완묘랑 아주 환상적인 콤비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다.
게다가 젖병마저 새것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딱 한번 밖에 쓰지 않았다는 젖병을 들고와
이건 공짜로 드리겠다며 너덜해진 포장지를 흔드셨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물품을 건네받는데 직원분은 또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사연 하나를
귀에 아주 쏙쏙 들어오게 흘리셨다.
"뜯은 흔적만 있지 거의 새것과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새끼 강아지한테 한번 물려봤는데
바로 다음날 죽어버렸거든요."
뭔가 위험한 동물 병원이였다.
검은 기운이 가득한 젖병을 가방에 넣고
털이 복실복실한 강아지가 프린팅 되어진 분유통을 옆구리에 들었다.
한참을 울다 지쳐버린 꼬물이는 박스안에 몸을 잔뜩 웅크려 잠이 들었고,
그날따라 스피드 레이서 찍으시는 1번 버스 기사님의 만행에
얘 자다가 구토할까 싶어 박스를 공중에 띄운채
근력 하나로 50분의 크레이지 드라이브를 견뎌냈다.
쳐진 팔뚝에 탄력이 붙은 기분이였다.
며칠전, 아직까지 상영관 하나를 접수하고 있는 '추격자'의 강인한 생명력에
오랜만에 서울 상경하신 엄마에게도 감상의 기회를 드리고자 싶어
늦은 밤 극장을 찾아 개봉 2주만에 200만명을 돌파한 저력을 직접 보여드렸다.
그 작품을 보고난 후로 엄마의 잔소리와 걱정은 평소의 열배로 늘어나
퇴근이 조금 늦어진다거나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으면 아주 그냥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귀가를 기다리셨다.
그날도 역시.....배터리가 방전된 폰은 나도 모르는 새에 자동적으로 꺼져 통신수단으로써의 구실을 잃은 상태였고
조금 늦은 퇴근에 동물병원까지 들렸다 오느라 보통 귀가 시간보다 두시간 늦게 집앞 대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현관문을 열자 안방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계시던 엄마는 왜 이렇게 늦었냐며!!
품안에 든 박스에 대한 얘기를 꺼낼 틈도 없이 다다다 잔소리 어택을 가하셨고
행방불명된 딸래미의 실종단서라도 찾고 계셨는지 아빠는 내 방에서 뭔가를 뒤지고 계셨다.
(뭔가 발견하셨다면.....난 정말 행방불명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집 식구들...시트콤 출연을 노리고 계신건가.
왜 있지도 않은 사건을 미리 재연하고들 계시는건지.
한참 잔소리를 퍼부으시던 엄마는 늦게서야 손 안에 든 박스를 발견하고
흠칫 얼굴을 굳히셨다. 사고에 휘말린 것이 아니라 사건을 저지르고 온게 아닌가 하는 눈초리로
박스에 든 것이 혹여 토막난 뭔가의 사체인가 싶어 눈쌀을 잔뜩 찌푸리셨다.
"엄마!! 이거 고양이!"
차라리 토막난 사체가 나았으려나.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는 엄마는 요물을 주워왔다며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셨고
요물이든 뭐든 네발 짐승은 그냥 싫은 아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셨다.
어미에게도 버림 받고, 뭔가 동물병원에서도 버림 받고,
우리집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꼬물이의 처지가 너무 안쓰러워
내방으로 조용히 들어와 자고 있는 꼬물이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여운 마음에 무작정 데리고는 들어왔다지만 솔직히 잘 키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일 굶은 채 도롱도롱 잠만 자는 녀석을 보니 착잡한 마음에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
허나!
사실은 마음이 너무나도 약하신 엄마 아빠는 다음날이 되자
이렇게 작은 놈인줄 몰랐다며 엄마는 손수 분유를 타 먹이시고
새벽에 자고 있는 놈이 추워 보인다며
아빠는 출근하면서 자신의 베개 수건을 꼬물이에게 덮어주었다.
한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부모님은
처음으로 집안에 들인 새끼 고양이가 그렇게도 신기할수 없는지
대화의 절반은 고양이의 올바른 양육과 배변훈련에 관한 내용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이내 박스 안에서 뒤집혀서 잠이 든 꼬물이에 시선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이번주말에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던 엄마의 일정은
매 3시간씩 분유를 먹어야 하는 꼬물이로 인해 다음주로 연기되었고,
아빠는 내방에 있던 박스를 안방으로 옮겨, 나와 꼬물이가 돈독해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틈만 나면 손바닥에 올려놓고 직접 잠을 재우셨다.
이 집안의 귀여운 딸래미가 부모님의 기억에서 잊혀진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외롭다.
너무나도 작은 고양이라 아직은 성별 구분이 어렵다는 동물병원 원장님의 말씀에
꼬물이의 이름을 최대한 유니섹스하게 짓기로 하였다.
그런 내 마음으로 모르는 아빠는 '특허'라고 부르자며 꼬물이의 인생에 자신의 업을 얹어주시려 하였다.
꼬물이의 인생이 뭔가 처연해지는것 같아 급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최대한 부르기 쉽고 간단한 걸로 짓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한자를 중얼거리시더니 고양이 묘자에 선영이의 선자를 붙여 '묘선'은 어떻겠냐고 의향을 물으셨고,
'아이구 참말로!!! 묘선이가 뭐야~~묘~영이가 낫겠네~묘영아~' 하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히셨다.
물론 두분의 의견은 나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묘선~묘영이라고 지었다가 나중에 거대 뽕알의 수컷으로 자라면,
지극히 여성스런 자신의 이름을 두고 정체성에 크나큰 혼란을 초래할거라고........
이런 말도 안되는 나의 반박에 부모님은 이름 짓는데에 백기를 드시고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부르셨다.
나비, 나리, 똘망이, 막냉이, 어이, 임마..................
볼품 없는 검정색에 종도 길냥이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코숏,
똥도 맛동산만큼 굵직하게 싸대는 똥쟁이지만 이왕 한가족으로 들인거
꼬물이의 생이 끝날때까지 책임지고 키워가야 겠다.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을 동고동락할 사이가 되어버린 이상
이름도 대충 짓기보다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똘망이라고 부르던 엄마의 부름에 익숙해져 꼬물이의 이름은 '또랑이'로 결정되었다.
상당히 건전치 않은 상태가 연상되는 이름이지만,
연탄-탄빵-빵상-깨랑까랑 식으로 사고를 넓혀가던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어
앞뒤 잴것 없이 또랑이로 의견을 모았다.
헌데 밤마다 또랑이를 안방에 데리고 가 주무시는 아빠의 행동을 보아서는
매일 밤마다 또랑이의 귓속에 '특허'라는 단어를 심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데려온 첫날, 이틀 내내 재채기를 달고 있어 동물 병원에서 감기약을 지어 먹였더니
하루만에 다 나았다. 진료비가 12000원이었다. 낫지 않을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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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개돼지로 성장했다.
저희집 고양이 개또랑이(개또라이)입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던 녀석이~
이제는 대갈통이 손바닥으로도 다 안잡히는 개돼지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평생 귀여운 녀석이에요.
평소에는 주인을 개같이 보면서
간식 줄때만 존내 앵기면서 발라당 뒤집어지는데
아~~~이런 사랑스러운 띱딱구.
이후 17년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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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메모장
이것이 바로 마흔두 살이 쓰는 간병 일지다.
여러분들도 항상 도서를 멀리하고
깊게 사고하는 습관을 버리면
위와 같은 유치부 곤충관찰일기 수준의
필력을 갖출 수 있다.
쉽진 않겠지만 매사 정진하길 바란다.
또랑이의 치매 증상이 첫 발현된 1월 말을 기점으로
내 일상은 각이 잡히고 좀 더 바지런해졌다.
외박은 물론 누군가를 집에 들이는 일이 뜸해졌고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귀가 시점을 카운팅했다.
퇴근길의 속도는 거의 뭐 육상선출 수준이었다.
원체 약해진 또랑이의 뒷다리의 근력에
'나자빠진 자리가
하필 차가운 욕실 바닥이면 어떡하지?'
'게워낸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토사물 범벅채 허덕거리고 있으면 어째?'
'엊그제 새로 산 스니커즈를
이 쉑히가 몰래 신고나가면!!!'
등등의 최악의 순간들로 부피를 더해가는 망상 덕에
결국 점심시간까지 이용해
중간 점검을 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에서부터 집까지는 대략 3km 정도로
천천히 걸으면 40분 남짓 소요되는 거리였다.
밥벌이의 특성상 내가 활동하는 야간에는
버스고 전철이고 진작에 다 끊기는 시간대라
별수 없이 매일 왕복 한 시간을 뛰고 걸어야만 했다.
(나는 서민 중에 상서민이라
택시 타면 시름시름 앓다 죽는 병에 걸려있다.
근데 심야할증까지 있다?
미터기 누르자마자 급사한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는
녀석의 무사 안전을 확인하곤 1~2분 정도 체류하다
다시 허겁지겁 회사로 복귀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달에 한두 번 컨디션이 최저를 찍는 때를 제외하고는
장장 5개월이 넘도록 하루에 출퇴근을 두 번씩 했는데
점심때가 지나면 항상 인상이 짭쪼롬해져서
등장하는 나의 꼬라지에
팀원들은 홈캠을 달아보라는 의견을 전해주었다.
허나 근무시간에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편이 옳다는 입장이라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근면한 개꼰대 상사였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그래프를
고만고만하게 그리며 나아가던 8월 초입.
나는 돌연 코로나에 걸렸다.
굉장히 격정적인 기침감기라고만 여겼는데
후각과 미각을 잃은 후에야
자가검사키트로 두 번째 코로나 확진을 받아들였다.
전신이 느슨해지고 감각이 무뎌진 탓이었을까.
사나흘을 빌빌대며 자리보전하느라
나는 또랑이에게 짙게 드리워진
이별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한창 귀여울 68세 (13년차)
또랑이는 17살이었다.
고양이의 나이로 환산하면 여든을 훌쩍 넘긴 노묘였고
나름 장수의 반열에 드는 축이었다.
작년까지는 이렇다 할 큰 병치레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 어려운 걸 훌륭히 해냈기에
무지개다리, 끝, 죽음, 로또, 인생역전 같은 상황은
나와는 무관하다 넘기며 지냈다.
하지만 살고 죽는 데에 예외는 없고
뭐든 당연한 것도 없었다.
전날까지 평온했던 또랑이가
느닷없이 부산스러워졌다.
다리도 성치 않은 녀석이
침대와 방바닥을 의미 없이 오르내리며
묵직한 헛울음을 흘려댔다.
모래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는 하는데
막상 똥삽을 챙겨 들고 다가가면 별 수확은 없었다.
건사료와 습식사료는 물론
평소에 환장하는 훈제 고등어 간식에도 흥미를 잃고
목적 없는 서성거림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거동은커녕
목도 가누지 못한 채 밭은 숨만 내뱉었다.
불과 반나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얘가 이제 정말 갈 준비를 하려나보다.
1월의 경험이 나를 초연하게 만들었다.
식이를 중단한 지 2일째가 되는 날,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주사기를 꺼내 강제급여를 시도했다.
회복캔을 묽게 으깨 주사기를 채우고
또랑이를 품에 안았다.
절반도 차지 않은 모래주머니마냥
내 손길대로 흐물거리며 늘어졌다.
주둥이를 고쳐 잡고 어금니 옆 빈 공간을 강제로 벌려
음식물을 밀어 넣자 없는 기운을 쥐어짜
고개를 흔들며 발버둥을 쳐댔다.
먹은 게 없으니 입안이 바짝 말라 구취가 심해
물이 담긴 주사기로 바꿔 들고는
다시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흘리는 양이 90%였지만
그나마 물은 조금이나마 넘기는 듯하였다.
3분 만에 녀석은 은거지를 지킨 독립투사의 몰골이 되어
혼이 절반치 나가 있었고
개주옥같은 만행을 벌인 일제 고문가는
축축해진 티셔츠를 벗어째끼며 엉엉 울었다.
서로가 괴롭고
서로가 섭섭해지는 밤이었다.
강제급여는 관두기로 했다.
회사는 뭐 거의 프리랜서급으로 다녔다.
결근과 조퇴가 비일비재했고
눈감고도 하던 업무가 세상 무의미하고 번거로웠다.
마지못해 집중을 하려다가도
홀로 숨을 할딱대고 있을 또랑이를 떠올리면
'보고서가 뭐가 중하고 실적이 뭔 대수랴.'
이내 진저리를 치곤
서둘러 사무실을 뛰쳐 나오기 일쑤였다.
은연중에 두터워지고 있던 서운함의 요소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기폭제가 되기도 했고,
열정과 욕심을 내려놓으니
좇고 있던 이상과 관계가 다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12년간 '충성충성 딸랑딸랑~'
하던 근면의 자리엔
'내 알바 아님'의 무책임이 대신했다.
식이 중단 4일째, 오전 8시.
퇴근하고 오니 거실 복판이 휑했다.
자력으로 침대로 올라갔나 싶어
들뜬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녀석의 지정석엔 여분의 배변패드들만
어지러이 쌓여있었다.
출근 전 거실에서 인사를 건넸던 또랑이를
욕실 바닥에서 발견하였다.
앞다리로 어찌저찌 기어갔는지
물이 가득 담긴 세수대야 앞에 널브러져
멍청한 얼굴로 눈만 끔뻑 끔뻑대고 있었다.
소변으로 젖은 뒷다리를 살살 씻겨내고
다시금 거실 이부자리에 또랑이를 뉘었다.
그리고 10여분 뒤,
뒷다리를 질질 끈 채로
또랑이는 욕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저 장면 워킹데드 1편에서 본 것 같은데.
결국 타일 바닥에 배변패드를 깔았다.
네가 가고 싶은 데 가고
머물고 싶은 데 자리 잡거라.
고작 이 10평 남짓한 공간이
네 평생의 세상이었을 텐데
마지막은 네 마음 편한 곳이 맞지.
하~지~만!!
아침 저녁 샤워를 할 적마다
배변패드를 걷었다가 물기를 닦고 다시 깔았다가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도가니가 내 것 같지 않은 이 할미에겐
너무나도 소모적인 노동이었다.
게다가 나도 생리 활동이라는 걸 해야 되는데
본의 아니게 녀석은 항시 1열 직관으로
내가 힘주는 장면을 라이브로 시청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뒤통수에서
쯧, 주인 저 쉑히 아직도 똥 주서 먹고 다니네.
같은 희미한 경멸을 읽었다.
어쨌든 강제급여에 이어
서로에게 두 번째 몹쓸 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욕실 엔딩은 기각!!
거실을 욕실처럼 꾸려주기로 했다.
대야를 거실로 옮기고 방안의 조도를 낮춘 뒤
서늘함을 유지하기 위해
스물네 시간 에어컨을 가동했다.
식이 중단 7일째, 새벽 2시.
땀에 절은 이마를 훔치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중요 업무가 있어 이번엔 조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10분 뒤에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 매야 했다.
소변으로 말라붙은 배변패드를 교체하고
대야의 수위를 넘치기 직전까지 보충했다.
그래야 고개만 살짝 들어도
턱과 입에 물이 닿을 수 있다.
피이-피이- 코가 막혀 숨이 막히는지
또랑이는 개구호흡을 하며
앙상한 가슴팍을 발락거렸다.
반대편으로 자세를 바꿔 뉘이곤
힘겹게 오르내리는 등가죽과 정수리에
입술을 꾹꾹 내리눌렀다.
내 숨통이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왔던 길을 다시 또 되물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의 가로등과 차량의 굉음들을 뒤로하고
인적 드문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워지는 눈가를 연신 훔치며
소리 죽인 통곡을 터뜨렸다.
이 울적한 루트는
또랑이의 증세가 악화될수록
내 서글픔을 토해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자전거 도로가 넓어지는 구간으로 진입하면
맘 편히 울자.
이 앞은 운동기구가 있으니 자중하자.
하천 근처에서는 얌전히 입을 닫자.
하루살이 개많다.
저 대교 밑은 어두워서 오열하기 제격인데
가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미친 매미가
윈드밀을 튀기니 후레시 켜는 것을 잊지 말자.
나름의 철칙을 되새기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후텁지근하고 끈적거려서
오만데가 다 번들거렸다.
덕분에 어쩌다 오가는 이들의 눈에도
대수롭지 않게 보였으리라.
식이 중단 10일째, 새벽 3시.
또랑아. 오늘도 조퇴함. 조만간 짤릴 듯~
백수 라이프를 담담하게 예고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곧장 또랑이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이틀 전까지는 숨이 꼴딱꼴딱하는 모양새였는데
오전께부터 숨소리가 고르고
개구 호흡도 멎었다.
뭔가 호전되고 있는 양상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미세한 차이지만 대야의 물 수위도
조금 내려가있었다.
그렇다면 2차전으로 돌입해 봅시다.
다시 주사기를 빼어 들고
강제급여를 시도했다.
또랑이는 반항할 기력도 없는지
밀어 넣는 대로 입맛을 찹찹 다시며
꼴깍꼴깍 삼켰다.
하지만 이내 넘긴 양의 배를 게워내며
점성이 짙은 흰 거품을 입에 물고 축 늘어졌다.
지면에서 살짝 뜨는가 싶더니
지하 100미터 아래로 처박히는 심정이었다.
오전 7시.
30분에 한번 꼴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또랑이의 상태를 살폈다.
내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또랑이는 여느 때와 같은 맹한 표정으로
먼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 증세를 보이고부터
녀석은 눈을 감지 않고
항상 흐린 초점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통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애써 정신을 잡아두려 하는 건지.
불과 열흘 전까지는
또랑이는 하루 스무 시간을 퍼질러 잤는데
그 잠만보와 동일한 녀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이한 체력과 정신력이었다.
중간중간 몸을 반대로 뉘이고
고개를 들려는 추임새가 보이면
턱과 입을 축일 수 있도록 대야를 받쳐주었다.
피로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감사했다.
오후 2시.
본격적인 경련이 시작되면서
들숨과 날숨에서 쇳소리가 섞여 들었다.
통증을 참을 수 없는지 계속해서 실금을 했고
붉은빛이 도는 거품을 서너 차례 게워냈다.
그때마다 체액과 분비물이 묻지 않도록
또랑이의 몸을 수시로 닦아내고
배변패드를 계속해서 교체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발작으로 잔뜩 굳어있는 등줄기를 빠르게 쓰다듬거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또랑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주는 것 밖에 없었다.
이제와 병원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나에겐 이 고통을 해소해 줄 의학적 깜냥도 없었다.
그렇게 또랑이 퐈이탱!!!을 외치며
녀석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힘들고 지치는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후 3시 6분.
또랑이에게 길고 긴 평안이 찾아왔다.
건물 전경이 보이자 입구에서 직원분이 마중을 나와
또랑이가 든 박스를 조심히 건네받았다.
준비를 하는 동안 로비 한쪽에 마련된 대기석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박스의 전면부 지퍼를 조금 열어
녀석의 등줄기를 연신 쓰다듬었다.
전신은 딱딱하게 굳었지만
손바닥에 감기는 털은 여전히 보들거려서
이 쉑히 그냥 자는 거 아냐??
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오래전에 찍은 또랑이의 사진과 영상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한 손은 움직이는 액정을,
나머지 한 손은 멈춰버린 녀석을 훑어댔다.
그 와중에 회사 단톡방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업무 관련된 대화들로
화면 상단이 소란스러웠고
내 과실이 아닌데 나를 타박하는 내용의 글이
반짝하고 떴다가 사라졌다.
황당하기보다는 모든 게 같잖고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상담실로 들어섰다.
고양이의 이름, 나이, 품종 등
묘적사항을 간략하게 기재하는 동안
직원분은 또랑이의 상태를 잠시 확인하시곤,
- 음...길고양이였나요?
- 아니요. 완전 애기때부터 키웠어요.
- 수컷이죠? 덩치가 좀 있네요.
- 여자애예요!!!ㅎㅎㅎㅎ
- 아ㅎㅎㅎㅎ
쿵짝이 하도 안 맞아서
어디 게임 파트너로 나가면
본선 진출은 꿈에도 못 꿀 지경이었다.
장례 절차와 선택옵션 비용 관련하여 고지를 받고
나는 별도 추가 없이 기본 장례로 진행을 부탁드렸다.
- 일시불로 할까요?
.
.
.
- ......아, 예.
죽음의 값을 치르는 상황이 어색해
순간 멈칫했다가
아주 그냥 36개월 장기 유이자로
청구서에서 3년간 녀석을 기려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한 템포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모방이 준비됐다는 다른 직원분의 등장에
그를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출발 전 미리 전달한 또랑이의 개돼지 시절의 사진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고
구슬프고 처량한 곡이 빽뮤직으로 흘러나왔다.
워터파크 대기줄에서 들어도
콧날이 시큰해질 멜로디를
아주 작정하고 틀어대니
추모방에 입장하고 5초 만에
울대가 못 견디게 아파왔다.
직원분은 사후경직으로 뻣뻣해진 또랑이를
알콜솜으로 꼼꼼하게 닦아주시며 입을 여셨다.
- 길고양이였나요?
...........이번 콤비도 예선 탈락이구나.
와일드한 스트릿 스멜~
우리 또랑이 온실 속에서 아주 개잡초같이 키웠더니
죽어서도 이 야성적인 매력이 숨겨지지가 않는다.
종이상자에 또랑이가 뉘어지고
제단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분은 추모가 끝나고 문을 열어놓으면
다음 절차를 이행하겠다며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셨다.
낯선 곳에서 다시 둘이 남았다.
십수 년간 매일 내 방, 내 침대,
내 품에서만 고롱대던 고양이가
조악한 종이상자에 누워
고른 숨소리 하나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튼튼한 오동나무관도 아니었고,
예쁜 꽃다발도 없었고,
네 마지막을 지켜본 이도 나뿐이고,
네 죽음을 아는 이도 나뿐이고,
지금 이 순간을 슬퍼하는 이도 나뿐이라
........너무 초라해서 미안했다.
허례허식이다.
업체의 장삿속이다.
태우면 다 부질없다.
그런 삐딱한 생각에
애초부터 담백하게 보내주자 다짐했는데
덩그마니 놓여져 있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화려하게 치장해서
진정한 돈지랄이 뭔지 보여줄걸 싶었다.
가는 길 적적치 않게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너의 소식을 알려
애도 인사를 전달해 줄까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낱 동물 가지고 유난이다 여길지 모를
일부의 인색한 인식과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위로가
되레 무례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는데
혼자 어디서 처맞고 이러고 있다.
어쨌든 요는,
처음도 내가 품었으니 끝도 내가
오롯이 품어서 조용히 보내주기로 했다.
사지가 굳어 상자 밖 삐죽하게 나온 뒷발을 시작으로
꼬리, 배, 등, 목, 정수리, 눈가를
가슴에 깊게 새기는냥 천천히 쓸어댔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세 번.....쉼 없이 반복하자
잔잔하게 귓가를 울리던 음악소리도 더 이상 안 들리고
마구잡이로 터져 나오는 내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미안하고 마냥 미안해서 면목이 없었다.
내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또랑이는 일 순위가 되었다가
차순위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안중에도 없었다.
또랑이의 존재 자체가 성가실 때도 있었고
내 일상의 안위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좌우되는 현실에
싫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놓고 이제야 위하는 척
오열해 대는 내 꼬락서니가
너무나도 위선적이어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그냥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네 죽음의 물꼬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
단순히 나이를 먹을만치 먹어서도 아닌,
나를 만나서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가게 되었노라고.
네가 늙고 볼품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변변치 못해서 그런 거라고.
너는 원래 좀 더 귀하게 살다갈 팔자였다고
되뇌고 되뇌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하도 울어서 코에서 된장 끓이는 소리가 났다.
막힌 코를 대차게 풀고
어수선하게 놓여진 휴지 뭉치들을 한데 모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녀석이 곡기를 끊을 때부터
각오했었던 상황이라 금세 덤덤해졌다.
직원을 부르기 전
마지막으로 또랑이의 눈가를 마사지하듯
어루만져주었다.
실은 녀석이 숨을 거두고 난 후
눈을 너무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어서
물티슈로 눈꺼풀을 살살 내리며 눈을 감겨줬는데
내 손길의 의지가 너무 강했는지......
눈탱이가 마시마로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울상이 되어버린 또랑이의 인상에
헝헝대는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
녀석의 눈가에 이마를 부벼댔었다.
누구한테 돈 떼였니. 왜 이렇게 억울해졌어.
개별 화장하는 곳으로 안내받아
건너편 건물로 이동했다.
자그마한 방을 배정받고
참관의 용도로 길게 난 창을 통해
또랑이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화장로에 종이상자가 올려지고
직원분의 묵념과 함께
또랑이는 곧 불길이 치솟을 공간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내 문이 닫히고
직원분의 기기 조작을 끝으로
화장로 부근에 아른아른 열기가 일렁였다.
녀석에게도 내게도 꽤 잔인하고 아플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불이 당겨지고 온도가 400도 이상으로
오르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침착해지고 조금은 평온해졌다.
그러다 옆방에서 들리는
서너 명의 통곡 소리에 덩달아 격해져서
다시금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울다가 멍하니 있다가
또 울다가 창가를 서성이다를 반복하며
40분을 죽이고 있자
창 밖에서 어른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뻘건 불씨를 머금고
여직 타닥대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그마한 뼛조각이 누운 형태를 흉내 내며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안 만지고는 못 배기던
보들보들한 정수리와
입술 사이에 말아 물고 뻡뻡~하면
귀찮은 듯 파르르 떨던 쫑긋 귀.
꾹 누르면 순식간에 울버린이 되어
내 팔을 아작 내던 말랑 발바닥.
'오늘 밤 너를 내 것으로 만들겠어~'
하고 옆에 누우면
질색하며 휘두르던 끝이 살짝 굽은 꼬리.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라 그런지
크게 슬프지도 애처롭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서 너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조금 먹먹할 뿐이었다.
또랑아. 평생을 나만 보고 살았으니
이제는 딴 데도 많이 보고 지내라.
나중, 좀 더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나는 하도 못돼 처먹게 살아서
먼 훗날 너 있는 데에는 못 갈 것 같다.
그래도 남은 여생 조금씩 선해지도록 노력해 볼게.
그랬는데도 레인보우 브릿지 앞에서 입뺀각이면 뭐,
내 알아서 개구멍을 파든가 해서 찾아갈게.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롯가를 조금 걸었다.
올 때의 너는 두 손 묵직한 박스였는데
갈 때의 너는 백팩 한켠의 작은 함이 되었다.
오래전 우체국 주차장 구석에서 바동대며 우는
꼬질꼬질한 새끼고양이를 주워 들었을때
우리가 과연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했을까.
손바닥보다 작던 녀석이
또 손바닥만 하게 돌아와서 그런지
17년이 지나 다시 한번 너를 거둔 기분이다.
차가 막혀 좀 늦을 것 같다는 택시기사님의 연락에
천천히 오셔도 된다는 말을 건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위가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서둘러야 될 구실도, 필요도 없어졌다.
망연히 폰을 들여다보며
쌓인 메세지들을 무성의하게 훑었다.
나를 타박하던 글귀는
사과 대신 삭제된 메세지로 둔갑해 있었고
할인을 미끼로 허용한 푸시 알림에는
사료 특집전을 홍보하는 광고들로 가득차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너무 그저 그런 날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나는 여전히 운동화를 고쳐 신고 거리로 나온다.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걸음걸이에 조급함이 없어졌고
목적지에서 한참 못 미치는 지점에서
다시 되돌아온다는 건데,
긴 시간 습관으로 굳혀진 터라
멍 때리고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속도가 붙어
집 근방까지 찍고 오는 날이 더 많다.
날이 제법 선선해져서 그런지
밤마실을 나온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맘 놓고 질질 짤만한 구역도 찾기가 어려워져
요즘은 벤치에 앉아서 코가 매워질 때까지
콧평수만 크게 벌름대고 있다.
아무리 흉부를 크게 부풀려도
숨이 가쁘고 명치가 깝깝하다.
들이킨 공기가 폐부에 닿기도 전에
코 언저리에서 허무하게 흩어져버리는 것 같다.
그때 주기로 한 내 숨통의 절반 치를
녀석이 이제사 제 몫으로 찾아간 듯싶었다.
기특하다. 잘했다.
덕분에 나도 개구호흡이란 걸 해본다.
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아
다시 품에 안아보고싶은데
진짜 너무 슬프다...언젠가 너를 떠나보내야한다는게...항상 사랑하고 너가 너무 힘들지않게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또랑이랑 주인이랑 다시 만났기를
아 나 지금 내옆에 내 고양이 자고있는데 안고존나오열 ㅠㅠ아
오열중...
상상도 하기 싫다..
우리첫째 얼마전에수술하고 16살 인데 가슴 찢어질거같다 점심먹다말고 오열중 …
우리고양이랑 닮아서 너무 눈물난다 후 ㅜ
아 진짜 너무...슬퍼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
ㅜㅠ 우리애기도 보낸지 2년이나 됐는데 가는길 이렇게 정리해놓을걸.. ㅜㅜ 너무 슬프다
옛날에 본 글인데... 결국 가는길까지 끝까지 지켜주셨네 ㅜㅠ 슬픔이 모니터 너머까지도 느껴져 ㅠ
우리 강아지 생각나서 눈물난다 나도 저렇게 병간호 다 하고 떠나보냈는데 힘들었지만 돌아간다면 더 잘해주고 싶어ㅠㅠㅠ 보고싶다ㅠㅠㅠㅠㅠ
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안멈춘다.. 너무 슬퍼
나 못보낼거같아 어떡하지 눈물이안멈춘다...
ㅠㅠ 강아지 아팠을 때랑 보냈을 때 생각나서 너무 눈물나
글쓴분 발랄하던 말투가 그대로인듯 성숙해진 게 느껴져서 더 슬프다 긴 세월 함께 했는데 결국 먼저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ㅠㅠ
모든 동물들이 떠나서도 행복하길
또랑아 고양이별에서 잘 놀고있지.. 이별이란거 생각만해도 진짜 눈물만 나는데 내 수명 나눠주고싶다 제발
아ㅜㅜㅜㅜㅜㅜ엉엉 울었다
우리애기생각나네...ㅠ
아 너무 슬퍼ㅠㅠㅠㅠㅠㅠ
겪여봐서 더 절절하다 평생 모르고 싶던 감정 이런 글 볼때마다 눈물이 나려다가도 울지 않으려 애썼던 건 우리애와의 진짜 마지막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어느덧 떠난지도 100일이네 진짜 너무 많이 보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작던 내 아기 아플 때 얼굴 떠날 때 모습마저도 또랑이랑 비슷하네... 떠나는 걸 자기도 알았을까 아프고 난 뒤부터는 하루 온종일 잠만 자던 내 고양이 마지막 날엔 진짜 눈 한 번 감지 않고 오롯하게 나 하나만 바라보더라 마지막 가는 길에 오래오래 나를 보고 싶었던 걸까 하염없이 발작을 반복하는 얼굴을 계속 마주보다가 무서워 품에 안고 외면하듯 자꾸 휴대폰 화면을 보던 야속한 날 너는 계속 바라봤었지.... 그때만 생각하면 자꾸만 울컥한다 더 바라봐줄걸... 계속 눈 마주쳐줄 걸 너무너무 보고 싶어
와 또랑이 처음에 구조했던 글로 저분 블로그 접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되는구나.. 넘 슬프다
오열 ㅠㅜ
미치겟다ㅜㅜ
오열.....
아 진짜 너무너무너무 슬프다 오열중이야.... 또랑아 고양이별가서 행복하길 바랄게
아 너무 슬프다
회사에서 율어울어ㅠㅠ
얘들아 제발 오래살아줘 내가 이 글이 기억도 나지 않을때까지
너무 슬프다...ㅜㅠ또랑이 고양이별 갔구나...
와.. 오열했다 ㅠㅠㅠㅠㅠ
또 보고 오열 함.. 언젠가 나에게도 올 일이라 너무 슬프다 겪고 싶지 않아
내 생명을 나눠줄테니 평생 함께 하고 싶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