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예고했던 대로라면 이번 글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그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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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에 이르기 위해 믿음 말고도 행위가 필요하다면 과연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 답을 하려고 보니 9절의 ‘행위’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이 구절에서의 ‘행위’역시 ‘율법의 행위’가 맞는지 재차 확인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 글은 에베소서 2장 9절의 ‘행위’역시 ‘모든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제한됨을 입증하는 데 쓰려고 한다.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얻게 된다.’라는 주제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글에서 로마서 3장-5장에 나오는 ‘행위’가 ‘모든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3: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사도 바울이 3장 28절에 ‘율법의 행위’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에베소서 2장의 경우에는 그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바울이 쓴 다른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에베소서 2장의 ‘행위’역시 ‘율법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그가 쓴 서신서에서 반복적으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반대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여러 차례 ‘율법의 행위’를 ‘행위’ , ‘율법’, ‘법령’, ‘육체’ 라는 단어로, ‘믿음’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의’, ‘십자가’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이어지는 구절들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해 보자.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 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3:22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7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3: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4:1 그러면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육신에 관하여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요?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4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4:5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4:13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이나 그의 씨에게 율법을 통하여 하신 것이 아니요, 믿음의 의를 통하여 하신 것이니라.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헛되고 그 약속은 무효가 되느니라.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하던 이방인들이 의에 이르렀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라.
9:31 그러나 의의 법을 따르던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9:32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넘어진 것이라.
9:33 기록된 바와 같이 "보라, 내가 시온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0:3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10:4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3:1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채로 너희의 눈 앞에 분명히 제시되었는데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누가 너희를 미혹하더냐?
3:2 내가 너희에게서 알고자 하는 것은 오직 이것이니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더냐? 아니면 믿음을 들음으로써냐?
3:3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온전해지려 하느냐?
3:4 너희가 그처럼 많은 고통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그것이 헛된 것이더냐?
3:5 그러면 너희에게 성령을 전해주고 너희 가운데서 이적들을 행하는 그가 율법의 행위로 하는 것이냐? 아니면 믿음을 들음으로 하는 것이냐?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함과 같으니라.
3:10 율법의 행위로 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느니라. 기록되기를 "행하도록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느니라."고 하였음이라.
3:11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음이니라.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이를 행하는 사람은 그 안에 살리라."고 하였느니라.
<빌립보서>
3:7 그러나 나에게 유익하던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손실로 여겼느니라.
3:8 실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며,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요
3:9 또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니, 나의 의는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니, 곧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의라.
단어가 생략되고 대체되기는 했어도 뜻은 동일하다.
율법의 행위 = 행위 = 율법 = 법령 = 육체
믿음 = 하나님의 의 = 십자가
위와 같이 다른 서신서들에서 '행위'라는 단어를 '율법의 행위'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했던 사도 바울이기에 그가 에베소서에서 사용한 '행위'라는 단어 역시도 '율법의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들을 말하는 것일까?
그 구체적인 예시가 나와 있는 구절들이 있어서 덧붙여 본다.
<골로새서>
2:13 너희의 죄들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살리셔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셨으니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2:15 정사와 권세를 벗겨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2:16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2:17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2:20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2:21 (손 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2:22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즉, 바울이 ‘믿음’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한 ‘행위’는 ‘모든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 즉, 음식, 마시는 것,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 즉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이나 라합 등의 믿음의 선조들이 했던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율법은 어떤것 하나만 꺼내서 지킬수 없는
법입니다
한개를 지키면 나머지 612개 율법을 다 지켜야
할 의무가 생김니다
제사법만 폐한것이 아님니다
제사법만 폐했는지, 모든 율법이 다 폐해졌는지에 대해서 글 한 편 써주시면 어떨까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네요.
@방문자
아가페 목사님께서 그부분에 대해서 카페에
수없이 많은글을 올리셨으니 읽어보시기
바람니다
도움이 되실겁니다
저도 처음엔 님같은 신앙이었다가 회개하고
율법을 배설물처럼 여겼지요....
@베냐민 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베냐민 율법 가운데서도 폐하지 않은것이 있으니
ㆍ음행을 피하라
ㆍ우상의 제물을 먹지말라
ㆍ피를 먹지 말라
ㆍ목매어 죽인 짐승을 먹지말라.
이것들은 폐하여지지 않았다.
믿음을 받은 의와 믿음으로 받은 구원
다른 겁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율법의 행위는 구원이 아니고 의롭다 함을 위해서
에베소서 행위는 구원을 위해 행위..
율법 말고..
구원은 율법의 십계명과 관련이 있은 것이 아니고.
율법의 제사법.. 속죄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