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 곰취잎을 따서
사월 하순 화요일 자연학교 행선지는 거제 국사봉으로 가려고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간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대학을 출발 진해 용원으로 향했다. “한 줌 흙 아쉬운데 용케도 싹이 움터 / 매연도 마다하고 가뭄도 견뎌내어 / 파릇한 잎사귀 펼쳐 싱그러움 더한다 / 차도엔 쏜살같이 차량이 질주하고 / 보도로 느긋하게 오가는 이 드문지라 / 화사한 꽃 덤불 앞에 한참 멈춰 살폈네”
앞 단락 인용절은 3006번 좌석버스를 타고 가다 남긴 ‘도심 씀바귀꽃’인데 일전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원이대로를 건너오면서 보도 틈새 자란 꽃 사진을 남겨두었더랬다.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안부로 전하는 시조로 삼았다. 용원 종점에 닿아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가 부산 하단을 출발 거제로 가는 2000번 버스를 탔다. 신항만 육중한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성곽을 이루다시피였다.
가덕도에서 침매구간 터널을 통과하니 연륙교 구간에서 진해만 풍경이 드러났다. 바위섬과 저도를 지난 거제 장목 연안을 따라갔다. 내가 교직 말년을 3년 동안 머물면서 퇴직과 함께 뭍으로 건너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곳이다. 연사리에 원룸을 정해 아침 이른 시간이나 퇴근 후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연안 곳곳으로 트레킹을 다녀 발자국을 남겼더랬다. 때로는 주말도 다녔다.
뭍으로 건너온 지 5년째인데 매년 봄이면 다시 그곳으로 찾아감이 연례행사다. 거제에는 알려진 산이 몇 군데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국사봉이다. 국사봉에 이어진 작은 국사봉 중턱에 곰취가 자생한다. 내가 거제 머물던 때가 코로나 팬데믹과 겹치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곰취 자생지를 알고 있어 자연산 잎을 따 먹고 있다. 어떤 해는 여름 장마철에 한 번 더 다녀오기도 한다.
곰취는 강원도 깊은 산골이 자생지겠으나 거제 국사봉에도 자랐다. 내가 창원 근교 산자락은 웬만한 곳을 다 다녔는데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오래전 불모산 정상부 언저리에서 한 번 만나고는 다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거제 국사봉 곰취는 현지에 사는 사람들도 모르는 곳으로 나만 혼자 알고 찾아가 잘 따 먹는다. 어떤 해는 산짐승이 먼저 시식하고 남겨 둔 것을 따기도 했다.
장목 연안을 거쳐 옥포에서 연초로 넘어가 버스에서 내려 낯이 익은 수양마을 주작골로 들었다. 연초에 ‘야부(冶釜)’라는 동네가 있고 ‘주작(鑄作)’이라는 지명은 쇠붙이는 만든 곳이다. 왜구 침략이 일상이 되다시피 한 변방이라 전쟁 군수 물자로 쇠가 필요해 조달한 곳으로 짐작된다. 송정에서 문동으로 국도 지선을 뚫으면서 터널을 개설하는 공사 현장을 지나 산자락으로 올랐다.
산허리 임도에서 작은 국사봉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등산로를 벗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해 곰취 자생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바윗돌과 부엽토가 쌓인 숲 바닥이 워낙 넓어 곰취가 눈에 쉽게 띄질 않았는데 가까스로 찾아냈다. 올봄 제주도와 남녘 해안으로는 비가 잦았고 기온도 높아 곰취가 잎을 펼쳐 제법 자랐을 터인데 생육 상태가 부실해 의아했다. 산짐승이 시식한 흔적이 보였다.
배낭을 벗어두고 여린 잎을 한 장씩 포개 차곡차곡 따 모았다. 어느 해는 배낭이 불룩하도록 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수량이 많지 않아도 이만큼이나 남겨 둠에 감사했다. 멧돼지는 거들떠보지 않겠으나 초식성인 고라니나 노루가 좋아할 곰취를 자연인도 나눠 먹는 셈이다. 양이 적기는 해도 진주 사는 여동생에게도 택배로 보낼 생각이다. 자연산 곰취는 약초로 여겨도 될 정도다.
적은 양이긴 해도 곰취 잎을 따 하산해 수양마을에서 보리밥을 점심을 먹고 고현으로 나가 시외버스를 탔다. 귀로에 ‘국사봉 곰취’를 한 수 남겼다. “정상은 바위다만 북사면 활엽수림 / 산 중턱 숲 바닥에 부엽토 양분 삼아 / 곰취가 군락을 이뤄 은밀하게 자란다 // 거제와 연이 닿아 교직을 마무리해 / 떠나온 이후에도 봄이면 다시 찾아 / 아무나 쉽게 못 구할 자연산을 딴다네”2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