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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실시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국가에서 시행하는 수능시험은 공통점이 있다. 학생 자신의 관심과 호기심이 아니라 외부에서 제시한 문제를 학생들이 풀고 해결한다는 것이다. 즉, 대부분 시험은 학생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출제’한 문제를 푸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 결국 학생들은 학습 시간의 대부분을 외부에서 출제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보내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어진 문제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력 신장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수입 농산물의 범람으로 야기된 농촌 공동체의 해체는 출제되지 않는다. 도시 변두리의 흙수저 이야기도 없고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자연 훼손 문제는 소극적으로 언급될 뿐, 직접적인 현실 문제로 인식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돼 먼산바라기로 키워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참여국 간 인적 교류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난 2000년부터 3년 주기로 국제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를 실시하고 있다. 이 시험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적은 전 과목에 걸쳐 최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문제 풀이과정 자체에 대한 흥미도와 만족도는 하위권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비록 좋아하지 않고 즐겁지 않아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회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온갖 인간적 가치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과 어둠을 나타내는 측면이기도 하다. 일부 교육자들은 이런 최상위권 성적 결과를 소개하면서 우리 교육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하위권 수준으로 드러난 학생들의 흥미도, 만족도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교육은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며, 귀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교육의 성패 여부를 진학률이나 학력, 학벌 등으로 왜곡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교육의 본질과는 멀어지고 있다. 진학률이나 학력, 학벌 등은 사회적 문제로서 교육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여러 장면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국가 주도의 제도 교육이 가장 우선시되면서 주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실 현장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교실의 교육적 환경 여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 이행의 충실도 여부, 교실의 주인공인 학생과 교사의 심리적 환경과 상호 작용 등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교실에서 수업을 통해서 학생이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과 분석적 대안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비판적 시각 배양을 위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수 학습 과정을 학교 교육과정에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각론에 들어가서는 학습 목표나 수업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지도상 유의점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교직원들은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혹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하여 완전학습에 이르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조금 부족하다. 국어 수업에서 ‘읽기’ 지도를 예를 들어보자. 수능 국어 시험에 나오는 지문은 상당히 길다. 그냥 단순히 문제와 지문을 읽는 데에도 주어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고 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깊이 읽기’인데, 이 ‘깊이 읽기’를 학생들이 매우 어려워하며, 교사에게 그 해결 방법을 질문한다. 무엇보다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배경 지식에 따라 어떤 학생은 인간의 운명의 한 장면으로 읽힐 수도 있고, 어떤 학생은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아예 무슨 말인지 모르는 깜깜한 암흑으로 여겨진다. 읽기는 누적적이다. 누적된 것이 없으면 읽기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다. 읽기는 지금까지 읽어온 누적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유추하고 추론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타인의 관점에 서서 모순된 것을 찾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수행을 요구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문제 해결 방식으로 채택하는 것이 깊이 있는 독서나 비판적 사고와 추론 등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방법이 아닌 구 박사(구글)에게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간편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장래에 대두될 인공지능, 인공 로봇의 첨단 시대에 대비하여 IT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광고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별 고민 없이 단편적인 해결 방법을 선택한다. 보상으로서 쾌락은 즉각적으로 주어져야 하고, 그렇지 않고 지연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디지 못하고 별다른 의미 부여나 가치 존중을 하지 않는 태도를 당연시하고 하고 있다. ‘깊이 읽기’는 교육 과제이지만, 구 박사 이용은 사회적 문제이다.
우리는 가끔 교육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혼동한다. 본질적 교육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본질적 교육 문제는 학생 개개인의 인격 향상과 실력 배양을 여하히 하는가이다.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실력을 배양토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하고, 특히 교육 관련 해당자는 이 점을 집중해서 살펴야 한다. ‘인 서울 대학’이나 학력, 학벌, 취업 문제는 사회가 해결할 문제 즉, 사회적 문제이지 학교가 해결해야 할 교육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