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인중이는 남달랐다. 꾀가 똑똑 흘렀다.
제 어미 손을 잡고 장에 갔다 오다가 길섶에 있는 친척집에 들렀다.
마침 그 집에서는 우물가에서 앵두를 따고 있었다.
앵두나무 세 그루에서 딴 앵두를 장에 내다 팔아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탰다.
소쿠리에 담겨 있는 새빨간 앵두가 초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자
인중의 입속에 침이 고였다.
친척 아주머니가 인중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움큼 쥐어 가거라”
하자 인중이는 부끄러운 듯 제 어미 치마를 잡고 뒤로 숨었다.
“인중이가 체면을 차리네”
하더니 아주머니가 한움큼 쥐어 인중이 조끼 주머니에 넣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물었다.
“그 집 아지매가 너보고 앵두 한움큼 쥐어 가라 할 때 왜 내 치마를 잡고 숨었어?”
“그 집 아주머니 손이 내 손보다 훨씬 크잖아.
내 손으로 쥐었으면 한주머니도 못 채웠을 거야!”
인중이 어미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인중이는 어릴 적부터 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았고, 돈벌이에 눈을 떴다.
일곱살 때는 엿장수, 열살 때는 야바위 바람잡이,
열두살 때는 소매치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과 밤중에 수박서리 가서는 개울가 풀숲에 몰래
한 두개 감춰놓았다가 이튿날 대낮에 혼자 와서 수박을 끄집어내
주막 주위를 서성이는 들병이들에게 싸게 팔았다.
열대여섯살이 되어서는 밤에 훔쳐두었던 수박을 주고 들병이 치마를 벗기기도 했다.
인중이는 손재주가 좋아 농방(가구점의 강원도 방언)에 들어갔다.
농도 만들고 술상, 밥상도 만드는 소목공방에서 만 삼년을 배우고 나자
더 배울 게 없어 자기 집 헛간에 목공방을 차렸다.
눈썰미가 있고 솜씨도 좋은 데다 값도 싸 몇달 지나지 않아 소목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뚝딱뚝딱 끌질을 하고 있는데 노스님이 찾아왔다.
가끔씩 탁발을 하러 와 낯설지는 않았다.
“인중이 너, 나 좀 따라와야 쓰것다. 연장을 몽땅 들고 가자.”
인중이 미간을 찌푸리고
“스님 공짜로 일 시키실 생각 마십시오.
이래봬도 소인 일당이 비쌉니다요.”
노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걱정 말거라”
하자 인중이는 대패며 톱이며 끌이며 아교로 한짐을 챙겨 등에 졌다.
망종이 지난 햇살은 따가워 금방 땀이 흘렀다.
산허리를 돌아 주막이 나타나자 노스님이
“우리 곡차 한잔하고 가자” 고 말했다.
인중이도 목이 마르던 참이라 주막으로 들어가 평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지난 석탄일에 재가불자(在家佛者)들이 법당에 몰려 나가 문이 다 떨어져 나갔네.”
노스님이 곡차 한잔을 들이켜더니
“그 문이 어디 보통 문인가.
볼 때마다 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단청꽃살문이 박살이 났지 뭔가”
하며 한숨 쉬었다.
노스님이 먼 산을 바라보더니
“그 꽃살문이 꿈속에도 나타나고 하늘을 쳐다봐도 아른거리네.
나를 살려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하고 말했다.
주막을 나와 산을 오르는 인중의 가슴은 뿌듯했다.
‘스님은 내 솜씨를 알아주는구나.’
주지스님이 인중과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절 마당에 들어서자
스님들과 행자들이 반갑게 맞았다.
인중은 요사채 방 하나에 단봇짐을 풀고 이튿날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법당 뒤에 터를 잡고 삼년간 건조시켜놓은 물푸레나무를 톱질하기 시작했다.
꽃살 문양을 하나하나 조각하는 작업은 보통 고된 작업이 아니다.
가끔씩 노스님도 와서 끌로 꽃살을 조각하는데 많이 해본 솜씨다.
스무하루 만에 꽃살 문양 문짝을 완성해 삼일을 그늘에 말렸다가 단청했다.
문짝을 다는 날은 법회를 열어 축하했다.
노스님이 인중에게 돌배나무로 만든 목탁을 줬다.
“스님, 하산하렵니다. 할 일도 많고요.”
노스님이 인중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너는 우리 고을 최고의 소목장이다.
앞으로 다른 절 종단 불사도 도와주려무나.”
“그런데 스무나흘 동안 문짝에 매달린 일당은 왜 계산해주지 않는 거야?”
인중이 연장 보따리를 싸다 말고 그동안 친해진 행자에게 볼멘소리를 하자
“목탁을 드렸잖아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목탁이 무슨 소용이야! 돈을 줘요. 돈을!”
인중이 문을 열고 숲속으로 ‘휭∼’
목탁을 던져버렸다.
“안돼요. 안돼.”
행자가 문을 열어 초롱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울상이 되어 반쪽으로 깨진 목탁을 들고 왔다.
“우리 큰스님이 삼년에 하나씩 만들어내는 목탁은 천하명품으로 값을 따질 수 없어요.
그 청아한 목탁 소리는 십리 밖까지 들려요. 아이고∼ 이걸 어쩌나.”
스님 목탁을 사겠다고 대기하는 스님과 부자 재가불자들이 열사람이 넘는다는 소리다.
첫댓글
어~허!
이일을 어쩌나 ?
거지가 복권을 한장 샀는데
마침 그 로또복권이 1등으로 당첨이 되었답니다
1등으로 당첨이 됐으니 기분이 좋아서 술을 거나하게 한잔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가는 길에 하천을
건너다가
이제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동냥을 하는 밥통도
더이상 필요가 없다하며
복권이 들어 있는 밥통을 흐르는 강에다가 던져 버렸답니다
밥통은 급류에 둥둥 떠내려 가다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거지는 앗차 내복권 하며 찾으니 이미 복권은 하천물 속에 잠겨버린 뒤였습니다
범사에 신중하고 경솔하지 말라는 교훈인것 같습니다
인중이 자신의 작은 재주만 믿고 오만한 행동으로 봐서는 큰인물이 되기는 틀린것입니다
인중이 에게는 명품 목탁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와 같았구나 ㅎㅎ
인중은
자기가 만든것만 최고품으로 생각하는 오만을 가지고 있으며
남이 (노스님)만든 것은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를 갖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글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명품 목탁을 부셔 버렸으니 어쩌나
ㅎㅎ
우와~~~
뚝배기 보다 장맛입니다.
원문보다 댓글이 더 걸작이네요~~~
흑곰 작가님 감사합니다^^*
ㅎ ㅎ
소인의 댓글로 과찬을 하시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좋습니다만
김유진님의 칭찬을 받고
인중이 처럼 까불이(촐랑됨)며
논두렁 뱅기 타다가 넘어 질까봐
조심하며 경청하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