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덕주사
‘코로는19’가 거칠 것 없는 듯 온세계를 흔들고, 인간들의 등 뒤에서 정수리 위에서 비수가 되어 내리꽂는다.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하루하루의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 속에 오늘도 평안함을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매일매일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염원한다.
새벽공기로 청아한 숨 고르던 시간이 행복했고, 평온함이 그저 그 무엇보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덕주사 입구
덕주사 전경
덕주사 전경
법주사 말사인 제천 덕주사를 찾았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 일행과 이곳에 들렀을 때 이 절을 세워 절 이름을 덕주사라 하고, 골짜기 이름을 덕주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때 지은 사찰은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 앞에 세워졌었는데, 6 ·25전쟁 때 훼손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사지에서 1.7km쯤 떨어진 곳에 1970년에 중창된 것이다.
절 입구에 남근석이 있는데, 이곳이 남아선호 신앙이 깃든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쪽 언덕 산 밑에는 네 기의 부도와 장대석이 있다. 6.25 때 불탄 뒤로, 1963년에 지암화상이 5칸 인법당을 중창하였으며, 1985년 성주화상이 현재의 법당을 다시 중창하고 충주댐으로 수몰된 한수면 역리에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약사불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상덕주사는 이곳에서 동편계곡으로 1.5km 올라간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현 덕주사 주지스님이신 보림 스님으로 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덕주사의 전설의 상념에 빠져든다.
덕주사 대웅보전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웠다는 남근석
대불정주범자비(유형문화제231호). 통일신라시대의 명찰이었던 월광사와 관련된비문
범종각
약사전. 석조여래입상(유형문화재196호)
덕주사마애여래입상(보물제406호)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은 전체 높이 14m의 거대한 입상으로,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신체 부분은 선각에 가깝게 새겼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의 기록이나 현지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통일 신라 말기에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누이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와 있다가 자신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천 덕주사 마애 여래 입상과 관련되어 이 지역에서 꾸준히 구전되어 오는 경순왕, 또는 덕주공주 조성설은 제천 덕주사 마애 여래 입상의 조각 양식 수법으로 볼 때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다고 한다.
보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