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까지 만능 ‘육각형 걸그룹’ 뜬다.

[천갑후에도전을]

아이들 소연, ‘톰보이’ ‘누드’ 성공 이어 아딱질’ 1위 역주행 아이유·비비 눌러 직접 작사·작곡에 프로듀서까지 맡아 예쁘면 그만?’ 걸그룹 지형 바뀐다. K팝 연습생 때 작사·곡 훈련받기 도키오프 벨·르세라핌 윤진·영파씨 등 음악적 유능함에 팬덤·대중 더 환호

아이돌로 데뷔한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벨

작곡가로 먼저 활동하다가 아이돌로 데뷔한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벨. 이번엔 ‘아딱질’이다. 2022년 곡 ‘톰보이’의 인기에 이어 지난해까지 ‘누드’ ‘퀸카’ 등 발표 곡마다 연달아 히트시킨 걸그룹 (여자) 아이들이 최근 곡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로 국내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월 말 발매한 정규 2집 수록곡이 한 달여 지나 역주 행하면 서다. 타이틀곡 ‘슈퍼 레이디’에 비해 높은 성적일 뿐 아니라 음원 강자 아이유의 ‘러브 윈즈 올’, 신드롬급 인기를 일으킨 비비 ‘밤양갱’ 등을 단숨에 눌렀다. 요즘 대세인 이지리스닝 흐름의 밴드 사운드 곡으로, 펑크 기반에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떠오르게 하는 아기자기한 감성이 돋보인다.

사실 기획된 아이돌 그룹이라도 직접 곡을 쓰고 자기 메시지를 내는 건 보이그룹에선 그 계보가 길다. 1세대 그룹 H.O.T. 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 후 작곡가 유영진과 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정규 5집은 모두 자작곡으로 채웠다. 이후 빅뱅의 지드래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RM 등이 직접 쓴 곡으로 K팝을 세계에 알리면서 ‘자체 제작 아이돌’이 늘었다.

블락비 지코, 세븐틴 우지, 스트레이 키즈의 ‘쓰리라차’(방찬·창빈·한) 등이 프로듀서로 활약 중이고, 최근 데뷔한 신인 그룹 라이즈의 멤버 앤톤도 부친인 뮤지션 윤상의 영향을 받아 작곡을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변화엔 최근 걸그룹들이 높은 판매량과 화제성을 몰고 다닌 활약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기획사 입장에서 ‘남성 아이돌은 강한 팬덤과 높은 판매량, 여성 아이돌은 (돈보다는) 대중성’이라는 시선이 공공연했는데, 이젠 옛말이 되면 서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전의 차등적 시선에선 여성 그룹을 제작할 때 굳이 작곡 능력을 고려하거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반면 최근엔 여성 그룹도 대형 팬덤을 기반으로 한 큰 주목도를 받으면서 재능이 있다면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져가는 환경이 됐다”라고 짚었다.

지난 17일 태국 방콕 공식 팬미팅 무대에서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이에 일찍부터 그룹 외에 개인 작곡·프로듀싱 작업을 선보이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데뷔 후 한국대중음악상 등 각종 신인상을 휩쓴 키스오브라이프(키오프)의 멤버 벨(본명 심혜원)은 작곡가로 먼저 데뷔한 이력이 있다. 

고1 때 작곡했다는 그룹 퍼플키스의 ‘파인드 유’라는 곡이다. 이후에도 르세라핌의 히트곡 ‘언포기븐’, 키오프 데뷔곡 ‘쉿’ 등에 참여하며 높은 음악성으로 주목받았다. 벨은 1990년대 인기 가수 심신의 딸이기도 하다.

걸그룹 르세라핌의 허윤진 쏘스뮤직

대세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도 곡 ‘블레싱인 디스가이즈’ 등 작사·곡에 참여한 솔로곡을 내며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를 구축 중이다.

지난해 낸 첫 정식 싱글 ‘아이돌’(I ≠ DOLL)은 ‘어제는 인형 같고 오늘은 이 X이라고 해’ ‘내 멋대로 하는 멋/ 무시마 내 목소리’ 등 상품화된 인형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르세라핌 윤진. 쏘스뮤직

르세라핌 윤진. 소스뮤직 지난해 낸 첫 정식 싱글 ‘아이돌’(I ≠ DOLL)은 ‘어제는 인형 같고 오늘은 이 X이라고 해’ ‘내 멋대로 하는 멋/ 무시마 내 목소리’ 등 상품화된 인형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자)아이들 멤버 소연. 큐브엔터테인먼트

아이들 멤버 소연. 큐브엔터테인먼트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최근 유행한 J팝 등 이른바 ‘서브 컬처’(하위문화) 유행을 영민하게 읽어낸 곡”이라며 “소연이 제작자로서도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돌 음악가로서의 자기 가치를 보여줬다”라고 평했다.

걸그룹 (여자) 아이들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소연. 큐브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걸그룹의 자체 제작 성공 사례는 (여자) 아이들을 필두로 이제 막 시작이다. 이 그룹은 두각을 나타내는 소연뿐 아니라 민니미연 등 다른 멤버도 작사·작곡에 참여한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소연

1등 비결로는 그룹의 리더이자 프로듀서인 멤버 소연이 꼽힌다. 앞선 곡들에 이어 이번 곡도 모두 그가 제1 작사·작곡가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소연은 데뷔 때부터 ‘자작돌’(작사·작곡을 직접 하는 아이돌)이다.

앨범 기획 때마다 직접 발표 자료를 만들어 소속사 측을 설득하고, 반대에 부딪혀도 콘셉트를 관철해 히트시킨 뒷이야기를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이번 곡도 소속사인 큐브엔터 관계자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1위”라며 얼떨떨한 환호를 지르는 중이다.

힙합 걸그룹 영파씨.·비츠엔터테인먼트  

지난해 데뷔한 5인조 걸그룹 영파씨도 힙합을 추구하면서 데뷔곡 ‘마카로니치즈’를 비롯해 전 멤버 고루 곡 작업에 참여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K팝 팬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노래·춤 외에 작사·작곡이나 프로듀싱 능력은 팀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연습생 때부터 관련 수업도 제공한다”며 “그런 경향이 걸그룹에도 반영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