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니시기자를 만났다.
머리는 짧게 단정했고, 대륙의 추위를 염려한 코트가 여운을 준다. 예의 빠른 말속도는 직업과의 연관성인지 습관인지 알 수 없다.
대전 원도심을찍은 사진심포지움은 한국어로 진행되었으나 용케도 인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제적인 언어인 사진이 있기에 다행이다.
한국에 왔으면 매운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권한다. 우리 방식의 익숙한 인사다. 동동주도 마찬가지이다. 음식은 정으로 먹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사카모토 료마가 누구냐고 물었다. 일전에 나가사키 데지마를 소개한 한국의 티브이에서 그 곳에서 수학한 사카모토 료마를 만났고 그에 대해 물은 것이다.대답은 "그는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므로 로망스가 있는 것이다"는 것이다.
미완의 로망스.
언어가 미완성이라 항상 아쉬움이 남는 만남도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한국건축에 관한 책을 주고 여운을 달랜다. 그 흔한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고 다음날의 일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나는 한국잡지들을 챙겨 그가 있다는 대전공고 학생교류회에 갔으나 방금 전 그는 떠나고 없다. 지금쯤 광주에 있을 것이다.
작년 8월 그는 보이지 않게 우리 지역대학팀을 도와 주었다. 고치신문의 취재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요사꼬이팀과 같이 서울을 왔고, 후배기자와 같이 대전에 와 인터넷신문사를 본 적이 있다. 다시 올해 2월 우리가 고치로 갔을 때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었다. 특히 시만토시에서 폭풍우를 뜷고 시코쿠 산맥을 넘어 마츠야마로 같이 간 것이다. 그리고 올해 8월 그는 시만토시 인근 구보카와쵸의 한일교류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하였고, 고원마츠리와 하츠세마츠리를 같이 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시코쿠에서 나누었지만 그의 한국방문 기간 중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은 항상 짧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어제 우리는 만났고, 예전처럼짧게 헤어졌다. 때로는 언어와 시간이 인간의 벽을 넘지 못한다.그 때 생각난 사카모토 료마의 미완의 로망스는 어제 미쳐 전해 주지 못한 잡지들과 같이 다음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나머지 한국여행에서의 행운을 빈다.
나는 작년 8월 고치시에서 시만토시로 가던 중 우연히 오가카쵸에서 "어느 조선처녀의 비"라는 거리입구의 작은 나무팻말을 본 적이 있고, 그 사연을 올 2월의 우에무라 선생님댁에서 본 책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백의의 한복을 입고 도라지를 든 채 하늘을 나르는 삽화가 있었다. 임진년의 슬픈 역사가 잠겨 있었고 그 때의 기억이 500년을 흘렀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 한 권의 책이 되고, 그 번역본출판기념회가내일 광주에서 있을 예정이다.
나는 그 때 도라지를 불렀고, 그 여운으로 출판기념회의 사연을 보는 것이다. 그 책을 쓴 오가타의 교사부부의 마음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 것인가. 아까 들렀던 대전공고 교류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대전공고 교장선생님과 간사이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오사카부립 공고의 교장선생님은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10년간 교류를 한 사람들이다.
첫댓글 여전히 젠틀한 모습의 니시상이 연상되는 글입니다. 유스하라의 손님을 항상 최선을 다해 맞이해주시는 장변호사님같은 분들때문에 우리 지역대학이 더욱 더 풍요로워지지않나 생각합니다. 떠나올 때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어요.마음은 있었으나 여유가 없었슴을 헤아려주시길 바래요. 담에 만날 땐 씩씩하게 웃는 모습으로!!^^ 뵙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