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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음과 고성 사이
사순절을 맞아 평화누리를 순례하는 동역자들이 있어서 잠깐 함께 걸었다. 기장(基長) 평화공동체운동본부에서 강화 볼음도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DMZ 아랫 길을 따라 이동하는 두 주간(월-금)의 행진이었다. 나는 첫날 강화도 볼음도와 마지막 날 고성에 동행하였다. 강화도로 갈 때는 아직 찬 바람이 불었는데, 그새 봄이 왔다. 고성 명파리 해변 마을에는 목련이 피었더라.
강화도 선수 선착장에서 모인 순례단은 ‘종전·평화’를 앞뒤로 찍은 푸른 조끼를 두르고 볼음도로 가는 배를 탔다. 서도면에 있는 볼음도-아차도-주문도를 잇는 삼보해운은 한 시간 남짓 만에 흐릿한 바다 안개를 뚫고 목적지로 데려다 주었다. 볼음도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앞에서 평화순례 발대식 예배를 드렸다. 2019년 4.27 판문점 평화손잡기 행사도 볼음도에서 출범하였다고 한다. 철원 백마고지 인근에서 열린 평화맞이 봄나들이에 색동교회가 참여한 기억이 새롭다.
은행나무는 볼음도 북쪽 해안 가에 우뚝 서 있다. 그곳에서 북쪽 해안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날은 안개가 5.5km의 간격을 빽빽이 채운 까닭에 그 거리를 어림잡기가 어려웠다. 800년 나이의 은행나무는 본래 한 쌍으로 북쪽 연안에 있던 두 나무 중 수나무가 홍수로 떠내려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전한다. 지금 북한 연안군 호남중학교 마당에 있는 암나무는 조선천연기념물 165호로 지정되어있다. 800년이라면 분단 한반도를 상상조차 하지 못할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개회 예배에서 총회장 강연홍 목사가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어려서 들은 볼음도의 역사를 헤아리며 한마디로 아픔의 땅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남북 사이 경계가 촘촘하지 않아 썰물 때에 갯벌 끝까지 조개를 주우러 나갔다가 북쪽 군인들에게 붙잡혀 가는 일이 왕왕 있었다고 한다. 훗날 그들에게 덧씌운 간첩 혐의 때문에 패가망신한 일가족은 섬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바다 안개처럼 뿌연 암울한 시대상이었다.
강 목사는 볼음감리교회 주일학교 출신이라고 하였다. 덕분에 순례단은 볼음교회의 환대를 받았다. 그곳 장로 여러분이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웃 교단의 총회장이 되어 귀환한 어릴 적 주일학교 친구를 몹시 반겨 하였다. 정성스레 준비한 김밥과 과일 세트는 얼마나 세련되었던지, 또 강단을 장식한 꽃꽂이며 최신형 엘리베이터까지, 단정한 예배당 안팎의 모습 때문에 감리교 목사로서 내가 으쓱할 정도였다.
평화순례에는 제주도와 전남 해남 우수영, 울산과 광주 곳곳에서 함께 하였다. 열흘 동안 꾸준히 걸을 10여 명이 앞장 서고, 매일 합류하고 흩어지며 평균 30명 남짓이 꾸준히 줄을 이을 것이라고 하였다. 감리교 목사인 내 경우 시작과 끝에 함께 함으로써 기장 순례단을 에큐메니칼 순례단으로 격상 시킨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만만치 않은 순례단의 위상이 부러워서 하는 흰소리였다. 꽃게와 소라의 수확이 점점 줄어든다는 볼음도는 284명의 주민마저 대체로 고령이어서 마침내 2019년 2월 28일에 서도중학교 볼음분교와 서도초등학교 볼음분교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열흘 후에 동쪽 끝 고성에서 만난 평화순례단은 다시 만나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젠 감리교회가 평화운동에 나서야겠어요. 강화도에서 철원을 거쳐 고성까지 오는 동안 온통 감리교회더구만요.” 그들은 DMZ 일대의 동네를 가로지르며 많은 감리교회를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멀리 보이는 해금강에도 봄볕이 깃들어 있었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부터 다시 시작한 평화순례는 동해바다를 끼고 걷는 해안 길이다. 제진역을 지나며 파도 소리보다 더 낮게 울리던 기적(汽笛)을 환청으로 들었다. 이곳부터 금강산청년역까지 2007년에 이은 동해선 철길은 지금 점점 녹이 짙어 가고 있다. 합의 이후 무려 7년 만에 개통되어 시범운행까지 마쳤으나 몇 차례 화물열차만 왕복하던 끝에 남북관계 악화로 그만 중단되고 말았다.
평화순례단은 통일전망대 예배당에서 마침예배를 드리면서 두 주간의 여정을 끝냈다. 층층이 놓인 장의자에 앉으니 예배당 전면 유리창으로 남과 북의 바다가 모두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대형 스크린으로도 저리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해금강을 바라보면서 성찬을 받던 그 감동을 두고두고 마음에 담았다. 누구 말대로 “분단의 세월이 참 천연덕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