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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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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마포에서 마포가기/ 김영림
은하수 추천 0 조회 8 12.11.12 17: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마포에서 마포가기/ 김영림


길 없는 길, 마포에서 마포가기는

가령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덕오거리가기

또는 서부요양원에서 서부요양원가기?

어느 겨울 자원봉사로 서부요양원을 찾은 내게

할당된 일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의 휠체어를

밀어주기. 별로 힘 안 드는 가벼운 일인데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서부요양원 있는 곳은 마포인데

그 할머니가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는 곳이

마포. "마포갈래요" 하는 할머니와

제법 큰 요양원 3층 복도와 식당을 한바퀴

뱅뱅 돌아 제 자리에 와도 또 다시

"마포갈래요" 하는 할머니. 빙그레 웃음 지으며

"여기가 마포예요" 맥없는 대답밖에 못하고

'왜 마포에 가시려구요' '마포 어디 가고 싶으세요'

'자제 분이 마포에 사시는 가요' 

'삶이란 때로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건가요'

수없는 물음표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창 밖에 짓다 놓친 철조물 위로 횅하니 지나가는

바람을 따라 흩어진다.


- 계간 <詩하늘> 2008년 여름호 -

.................................................

 

 남의 일을 대신해 주고 그 대가를 받는 대행업이 있다. 내가 그 일을 하는데 기울이는 수고와 시간보다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그 일은 남에게 맡기고 나는 그보다 훨씬 실속 있는 다른 일을 하거나 귀찮은 일을 덜고 싶은 사람을 위한 사업이다. 물론 전문성과 편의성을 이용한 청소, 심부름, 가사 등의 전통적 종목에서 시작되었으나, 근년엔 시장 봐주기, 줄서기, 결혼식 하객 대행, 벌초, 일기와 독후감 쓰기 등의 방학 숙제, 함께 여행을 떠날 애인 역할, 치매 노인을 둔 자식을 대신한 자녀 대행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며 돈만 좀 쓰면 우리 삶에서 내가 할 일의 거의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성향이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진 현대 도시인에게 대행업의 긍정적 측면도 없진 않겠으나, 모든 게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물질만능의식의 팽배와 인간성 고갈의 문제점을 더 많이 안고 있는 것이 일부 부정적 대행업의 현주소다.

 

 시인이 자원봉사로 간 요양병원에서 휠체어를 밀면서 한 할머니로 부터 연속해서 듣는 '마포갈래요'란 말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수없는 물음표들이 시공을 함께 맴돌다 바람에 흩어지고 마는데 그 사이에서 짙은 비애가 느껴진다. 할머니의 가족이 한 동네에 살면서 할머니를 찾고 수발하는 일 대신에 누리고 획득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요즘은 꽤 짭짤한 실버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도시 외곽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게 노인요양원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 노인들은 늙으면 다 요양원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되어있다. 요양원에 가면 아예 죽어야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가족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그 무엇으로도 이 분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로움과 자유롭지 못함이다. 버림받아 홀로 남겨진,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로 부터 버려졌다는 그 배신감. 알고도 모른 척 입 다물고 살다 가시지만 그 분들은 그 사실을 뼛속 깊이 묻는다. 그리고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하다가 가신다. 입속에서 "마포갈래요"란 소리만 뱅뱅 굴리다가 가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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