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넘치는 교회
시136:1-9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늘 “건강한 신앙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건강한 신앙은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아마도 다양한 생각을 말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성령, 방언 등등 “믿음이 좋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건강한 신앙의 척도는 “감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벤츄라교회의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신앙이 주는 새로운 삶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다면, 이제 새로운 삶이 표현되기를 원합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그동안 사람들을 회피하며, 숨어지내던 여인이 당당하게 사람들을 찾아 가,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 마음의 신앙이 생기자 표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는 자는 표현합니다. 표현의 첫째가 감사입니다. 감사가 표현되는 성도, 감사가 표현되는 교회, 그래서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교회,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오늘 감사에 대한 몇 가지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감사는 바다와 같습니다.
캘리포니아에는 로키산맥에서 시작되어 5개의 주,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를 지나며, 유명한 그랜드캐년을 지나 태평양 코르테스해까지 1,456마일을 흐르는 강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강입니다. 이 강의 좌우로는 14개의 작은 강물들이 합쳐지고, 그밖에도 수도 없이 많은 지류가 합쳐져서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고, 이렇게 많은 강과 지류가 합쳐져서는 결국에 태평양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가 바다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시편 136편은 좀 특이합니다. 작자 미상입니다. 배경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6절 전체에서 무려 26번을 반복적으로 감사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 해와 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등등 하나님의 모든 면을 감사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든 강과 지류가 바다로 모이듯이, 136편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감사하라는 명령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자비와 인자하심이, 기적과 은총이 합쳐지면,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감사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제가 돌아온 탕자, 그 후라는 제목으로 6번에 걸쳐 시리즈 설교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환대를 받고,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으로 말씀이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돌아온 탕자가 그 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묵상하면서 그의 마음에 나타난 변화들을 단어로 정리해보고,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때 돌아온 탕자의
마음에 나타난 변화, 마음의 상태들을 기록한 표입니다.
진중함 | 자족 | 믿음 | 분별 | 희생 |
미래 비전 | 만족 | 신뢰 | 기쁨 | 열정 |
부모공경 | 사랑 | 감사 | 회개 | 형제 우애 |
넉넉함 | 자비 | 인내 | 순종 | 나눔 |
돌아봄 | 경청 | 겸손 | 행복 | 성실 |
표에는 30개의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후 마음과 삶의 태도가 분명히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합쳐지면 탕자는 모든 것이 감사였을 것입니다.
자신을 받아준 아버지도 감사, 먹는 것 하나하나, 입는 것 하나하나, 잠자리 등등 감사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 그 후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 믿게 하신 것이 감사합니다. 미국의 넓고 넓은 땅 중에 이렇게 날씨 좋은 곳에 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의 많고 많은 교회 중에 벤츄라 교회를 통하여 서로를 만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섬기게 하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핍박으로, 경제적 이유로 신앙생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우리는 편안한 곳에서 예배드리게 하시니 이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 간에 고백합시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서로 고백합시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이, 기도가, 찬양이, 예배가 합쳐서, 감사의 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감사로 신앙의 본질이 회복됩니다.
요즘 사사기를 읽다보면, 사사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요즘 말로 하자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왼손잡이 사사라 하는 에훗은 오른손에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당시의 관점으로 사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여자였습니다. 기드온은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입다는 사생아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의심 많은 기드온에게는 300명의 용사만 남기셔서 135,000명의 미디안의 연합군과 싸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은 역사를 하실 때에 전하시는 메시지와 교훈이 무엇입니까?
본질이 무엇인지 말씀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전쟁의 본질적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버렸던 것이 원인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군사나, 무기나, 전략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질의 회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유혹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야 부흥한다. 저렇게 해야 부흥한다며 훈수두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부분 방법론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흥보다 중요한 것이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교회되기를 원합니다. 벤츄라 교회의 본질이자 출발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아멘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예배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은혜 받은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존재가 해야 할 첫번째가 무엇입니까? 감사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
“감사함으로...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1)
시편 136편은 이름도 모르고, 배경도 모르는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제사 때에 성가대의 찬양으로 불리던 시라고 합니다. 감사하라가 반복적으로 불리던 후렴구입니다.
감사가 절로 터져나오는 예배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라기의 말씀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라기에는 하나님과 유다 백성간의 논쟁과 하나님의 솔직한 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제사도 드렸고, 제물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라고 하십니다. “차라리 하지마라”라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형식적인 제사, 인위적인 감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의 유익이 있습니다.
셋째, 감사드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대하20:20-26)
감사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1차원적인 감사는 조건부(if)적 감사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거나 더 많이 갖게 되면 하는 감사입니다.
2차원적인 감사는 받았기 때문에(Because)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돈이나 집, 뭐가 생기면 감사하는 것입니다.
3차원적인 감사는 불행해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절망 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하는 감사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감사함은 벽에다 던지는 공과도 같아서 언제나 자기에게도 돌아와 자신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구체적으로 감사하면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감사할 때 기적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4대 왕의 이름은 여호사밧입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과 더불어 남유다 위대한 3명의 왕중의 한분입니다.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사법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세 나라가 연합군을 조성해서 쳐들어왔습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세 나라가 쳐들어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다보면 문제가 터질 때 한꺼번에 터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여호사밧도 엄청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21)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 왕은 성가대를 세워 거룩한 옷을 입혀 군대 앞에 세우고 찬양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위기 중에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데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에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위기 앞에 감사하니까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적군들이 피차 살육합니다. 남유다백성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즐거움과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로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