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화엄사(華嚴寺) 순례 #1
2023.3.13(월) 아내의 우리들병원 진료차 오전 6시경 동해(자택)를 출발하여 9시 부터 12시까지 진료후
2박 3일의 여정으로 전남 구례 산수유 축제 및 오산 사성암, 전북 장수 100대 명산 장안산과
백두대간 남부구간의 영취산 산행에 나선다.
12시경 서울을 출발하여 첫번째 명소인 구례 화엄사를 찾는다.
서울 청담동에서 전남 구례 화엄사까지는 약 4시간 30분 소요
화엄사는 화엄 10찰 중 하나로 백제 성왕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고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다.
화엄사는 두가지로 유명한 사찰인데 하나는 원래는 장육전 이었지만 지금은 각황전이고
또 하나는 인도의 스님인 연기조사의 효심을 나타내는 사사자석탑 이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배치가 되어있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을 중심으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각황전은 원래 장육전으로 3층으로 되어 있고 맨위에 3층은 부처님의 신체 크기와 가장 유사하게 만든 불상을 모셨고
그 사방 둘레를 청석으로 둘렀는데 그 청석에 화엄경을 사경했다고 한다.
정유재란때 8원 81암자가 모두 전소되면서 일부 석경파편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돌에다가 화엄경 전체를 사경했다. 각황전 외부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통층구조 건물이다.
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좌우협시는 문수보현 보살이다.
화엄사찰의 주불이 비로자나 부처님인데 선교양종 사찰로 선종지향적인 영향이라고 한다.
화엄사 중창불사 이후 조선 숙종이 직접 각황전 편액을 내렸다.
각황전 바로 앞의 왼쪽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고 오른쪽은 원통전 사자탑이다.
16:40 대화엄성지 표시석
16:43 화엄사 매표소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성인 4,000원(경로 70세 이상 적용) 입장료 2인 경로 포함하여 6,000원
매표소에서 화엄사 주차장까지는 자동차로 1km 더 올라가야 하야 한다.
지리산 대화엄사 일주문
제3회 화엄사 홍매화 축제(3.11~3.26) 현수막
시의 동산
16:48 화엄사 주차장
화장실 옆 계단을 통해 화엄사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 노고산, 성삼재 및 지리산 종주코스인 천왕봉(32.5km)으로 가는 들머리이다.
화엄사의 창건과 역사를 기록한 선교양종지리산대화엄사사적비
사적비 앞에서 바라 본 방장교
방장교(方丈橋)
화엄사 일주문과 축대위에 건축된 화엄원(좌측)
화엄사는 규모가 웅대하고 우아하여 사적 제505호로 지정(2009년) 되어 있고,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리산 화엄사 현판
선조의 네 번째 부인의 아들인 왕자 의창군 글씨, 皇明崇禎九年嵗舍丙子仲秋義昌君珖書. 인조 14년(1636년)
1985.10.26~27. 백무동-천왕봉-화엄사 구간 지리산 종주산행시 화엄사 일주문에서
38년 만에 다시 찾는 화엄사이다.
화엄사 종합 안내도
화임사는 백제시대 (성왕 2년 544 )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다.
절 이름은 화임 경에서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하였으며
자장 법사와 원효 성사, 의상 대사. 도선 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이 중창하여
조선 세종 8(1424)에는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정유재란 뒤에는 대가라인 8원 81 암자가 모두 타 버렸다.
이때에 주지 설흥대사가 승병 153명과 하께 석주진을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8년(1630년)에 벽암 각성 대사가 동.서 오층석탑을 중창하고 중수하였다.
이후 계파당 성능대사가 숙종 25년(1699)에 각황전 중건을 시작하여
숙종 29년(1703)에 중건 볼사를 회향하자 선교 양종 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화엄사 샛문
화엄사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나쁜 것들을 보지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물시물청물언)' 를 상징하는 불상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하지도 마라>
논어, 안연편.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차일혁 경무관의 추모비와 돌항아리 전각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
돌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