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50년 대에 어른이 된 저자가 젊은 세대를 걱정하면서 쓴 글이다.
그 시대의 걱정을 노인이 된 지금의 우리가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세상이 끝날 둣이 걱정하는 일도 70-80년 후는 어떠할까요.
박현숙의 ‘요즘 생각하는 일들’
눈을 뜨면 머리맡에 놓인 배포지를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나의 첫 일과가 시작되는 셈이다. 어느 선배님의 회갑연 또는 친구 아들의 결혼식 등 거의 봄, 가을이면 마치 찾아다니기 바쁜 나날들이다. 하루 2, 3건의 인사치레가 끝나면 점심조차 잊고 허둥대기가 일쑤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머리를 가눌 수 없이 피곤해진다. 하루의 일과, 이것이 살아가며 서로를 돕는 인정이라고 기꺼이 뛰어다니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자기자신의 일(글쓰는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나의 20대에 시간은 너무나 지루했었다. 물론 그 시대엔 오락기구란 별로 없는 시기였고 다방은 서울 시내의 몇 군데뿐 학생들의 신분으로 들어갈 엄도도 못내었다. 그래서 덕택에 일찍, 기껏 문학서적 등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오락처럼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왜 그리도 시간이 지루하게 시간이 가지 않는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대학생들을 보면 다방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길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부모와 대화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어쩌다 말이라도 붙이고 싶어 방으로 들어가면, TV와 마주 앉아 용건만 말하라는 식으로 몰아낸다.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는 양식이다. 라고 말꼬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알고 있어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래요.’라고 하고는 말문을 막아버린다. 20대, 이때야말로 탐구하는 자세로 남의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고 사색의 시간에 젖어들어야 할 때이다.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진 자기자신을 완성시킬려면 정신적인 양식을 쌓아올려야 할 시기에 허무한 시간낭비의 요소들이 그들 주변에 너무 많이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술, 담배, 퇴폐오락 기구 등 도처에 흩어져 있는 유혹들이 교태를 부리며 꼬리를 친다.
언제인가. 모 다방에 약속이 있어서 약 한 시간 머무를 시간을 가졌다. 제법 넓은 홀 안에는 젊은이들로 꽉 차 있었고,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참기도 힘든 고역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20대 남녀가 같이 담배를 피우고 앉아 있었다. 담배란 근심, 걱정이 많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피우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내가 무색해졌다. 그런데 요즘 여자 대학생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피워대는 풍조란 정말 봐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내 돈 내고 내가 피우는데 어른 앞이면 어떻고 선생 앞이면 어떠냐 하는 식으로 당당한 태도이다. 나는 아무리 세월이 변하여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지라도 과연 이런 여자를 며느리감으로 선택해 들일 수 있겠는가를 반문해 보며 다방 문을 나셨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었고, 8. 15 해방 후에 곧 대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황금같은 젊은 시절을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웃도 구멍난 옷을 꿰메 입고 다니면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요사히 젊은이들은 그때보다야 얼마나 좋아진 환경인가. 세계적으로 기름과 식량 난 등으로 떠들어대지만 그런데로 아직까지는 큰 여파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나태한 풍조가 활개를 치는지.
살아가기 힘들수록 우리는 매사에 절약하고 자기 전공에 열심히 연구하는 자세여야 할 터인데------. 어째서 이웃 나라들에게서 보기 흉한 풍조만 그토록 빨리 받아들여 오는지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물론 어찌 생각하면 나의 젊은 시절은 춥고 배고픈 나날이었기에 그들을 시기하는 것일까도 반문해 본다. 인생 완성기인 20대에서 30대까지의 시간을 아낄 줄 알아야 노년기에 편안히 살 수 있다는 원리원칙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사회란 자기 자신의 노력의 결실만큼 댓가를 요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없이 댓가만 큰 것을 바란다면 이는 감나무 밑에 누워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그러 어리석은 우자(愚者)로서 인생을 마칠 것으로 안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아무 것도 해 놓은 것 없이 노년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내 아들, 딸들 그리고 모든 젊은 후배들께 시간의 중요성을 당부하고 싶을 뿐이다. 30세가 지나면 기어가던 세월은 뛰기 시작한다. 뛰어가면서 20년, 아이들 치다꺼리가 거의 끝날 무렵이면 50세가 넘어간다. 아이들을 기르고 나면 그땐 한가한 시간이 허락되겠지 하고 계산했던 나의 예측은 빗나간 오산이었고,그때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합산해서 자기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일거리가 많아지고 봄은 윤기가 마르고 동작이 둔해지니 마음만 더욱 부산해진다. 때문에 젊은 날 좀 더 열심히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뉘우칠 뿐이다.
며칠 전 대학 동창인 L여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아무도 50세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고운 얼굴과 아름다운 마음씨------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라고 말았다.
지나간 긴 세월에 얽히고설킨 사연들, 다정한 음성, 소녀같은 웃음 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며칠을 보낸 셈이다. 그녀처럼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기도 힘든 일이다. 남편이 직장에서 조금만 늦어도 문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을 위해서 늘 더운 도시락을 싸들고 교문 앞으로 가야 했던 그 아름다운 여인이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다 버리고 유언도 없이 떠나간 것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 엄숙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사연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며 반성해 본다.
모든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했고, 건너편에서 돌을 던지면 재빨리 그 돌을 받아 마주 던져야 했던 이러석은 시간들이 뉘우쳐질 뿐이다. 이제 인생의 마무리에 선 지점에서 옷깃을 여미며 정리해본다. 인생이란 그리 긴 것이 아니라고, 모두 자기가 만든 굴레 속에 살며 발버둥치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이기에 알찬 시간을 보내야 하고, 마지막이 더 화려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박현숙 —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된 극작가이다.
희곡집에 ‘女人’ ‘가면 무도히’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