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을 힘써 알자”입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인데 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사역했습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타락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지적하시는데 호세아에게 윤락가 여성인 고멜을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아이를 낳자 아내가 호세아를 떠나가고 그럴 때마다 가서 찾아오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가지만 하나님은 계속 찾고 계심을,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고 합니다.
자녀가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 배 아프다고 해보세요. 엄마가 많이 먹지 말라고 말했는데 엄마 말 안 듣다 잘 됐다며 매를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모 마음은 빨리 낫기를 바라지, 너 계속 배 아파라고 할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도 우리 죄로 인하여 징계하고 채찍을 드셨어도 그것은 본심이 아니고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틀 후,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킨다는 것은 속히 일으키신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내 백성들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하십니다. 지식에는 그냥 들어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경험하고 체험하여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같은 지식이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34:8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음식을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하나님도 경험을 통해 알라는 것입니다. 요즘 k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음식이 소개가 되어 외국인들이 찾아옵니다. cnn방송에서 한국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의 순위를 정해 발표했는데 라면, 순대, 삼겹살, 김밥, 떡복이 등이 모두 순위에 올랐습니다. 3위가 순두부찌개, 2위가 김치, 1위는 콩나물 해장국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음식들이 외국인들에겐 얼마나 특별한 음식이고 비범한 감사인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경험하고 먹어보고 아는 것과 단지 드라마를 보고 아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그가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지, 그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지 경험해보고 알라는 것입니다.
'알다'는 히브리어의 '야다'인데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알다'는 뜻입니다.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뒷모습만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보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네 남편은 안 그런 것 같애.." "아이고 살아보고 그런 소리해라? 완전 딴 사람이야.."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말씀합니다. 호2:19에서 "은총과 공변됨과 의와 긍휼로 내가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와 아가에서는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맞이한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단어가 헵시바,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너는 나의 기쁨’이란 뜻이고 뿔라는 ‘너는 나의 신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헵시바, 뿔라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에서는 내가 너에게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네가 나를 알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알길 원하십니다. 호6:6에도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할 때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돌아가셨다고 아는 것은 단지 그의 일생을 아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단순히 입술로 믿습니다, 나 위해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하는 정도는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그렇게 돌아가셨구나, 나 때문에 돌아가셨구나, 하여 철저히 죄를 뉘우치는 회개가 일어나고, 그래서 용서받은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정말 만났다고, 체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그분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종교 하나 정하듯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여 그분의 능력과 역사를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주님을 아는 것이고 신앙생활이며 그 결과는 영생입니다. 요17:3에 "영생은 이것이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함을 믿고 경험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우리는 늘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알되 제대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결코 성경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지닌 절대가치입니다. 우리는 단지 성경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책망 받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15:3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6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들은 사람의 교훈과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섰기 때문에 책망 받았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내 생각대로, 상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교리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있게 됩니다.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내가 만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고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항상 먼저 예비하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 땅으로 가서 그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라고 해서 길을 갈 때, 그 길을 평탄하게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마침 리브가가 물을 길러 옵니다. 종이 고백합니다. ‘과연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길을 인도하셨도다.’라며 그도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출15: 22이하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마라라는 지역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우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먹질 못합니다. 그때 백성들은 또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에 물이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데려와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 쓴물을 우리가 어찌 먹을 수 있겠느냐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그 나무를 잘라 물에 던지게 합니다. 그랬더니 그 물이 달게 되어 백성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26절에 약속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호와 라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라파, 치료하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치료를 맛보았습니다.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산에 올라 기도할 때 그가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결국 아론과 훌이 모세를 바위에 앉게 하고 양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함께 들어주어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닛시’ 곧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타국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름이 '슬픔'이란 뜻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며느리, 이방 여인 룻을 데리고 와서 정착을 합니다. 하루는 룻이 일을 하러 나갔는데 마침 보아스의 밭이고 보아스를 만납니다. 보아스가 룻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지라 벌써 특별히 이삭을 많이 주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여러분,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된 것,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난 것, 보아스로부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 우연입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신 필연입니까? "마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히네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한 말은 "기가 막히게"입니다. 나오미가 만난 하나님은 히네이 하나님, 기막힌 하나님, 우연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돌비를 세우며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은 여기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곧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만나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방법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따르려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호4:6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버리고 잊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니 하나님은 그에게 반드시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렘33:3에 "너희는 환란 날에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삼손의 눈을 열어 물을 찾게 해 주었습니다. 삼손은 그 샘을 가리켜 '엔학고레'라 하였습니다. 곧 "부르짖는 자의 샘", ‘부르짖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엔학고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시145:18에서는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쉬지 않고 일하시고 그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능력을 맛보길 원하십니다. 우리도 성경을 통해, 순종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