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군명장로 (경기 마석수동 감리교회)
님은 1920년대 경기도 양주군 면 수동리에서 나시고 거기서 청년기를 맞이하셨습니다.
님의 생활은 마을 사람들의 본이 못됐읍니다.
술을 아주 많이 하신 모양입니다.
님이 어느해 이른 봄 서울정동(貞洞) 재판소자리 근처 술집에서 술이 만취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정동 감리교회 양주삼 목사님댁 사모님이 보시고 사택에 데리고 가셔서
새옷으로 갈아 입히시고 아침식사 대접을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모님이 그 자리에서 예수믿고 구원 받으라고 전도하셨습니다.
님이 그때 예수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주일이 되면 아주 이른 새벽에 수동리 에서 서울 정동 예배당까지 100리길을
도보로 걸어 오전 10시 30분까지 도착하셨답니다.
조끼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큰감자 두 개가 들어있습니다.
마석고개 넘으실 때에 하나 꺼내 잡수시고 망우고개 넘으실 때에 하나 꺼내 잡수시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년동안 성수주일(聖守主日) 하셨습니다.
그후 님은 모범 기독청년이 되었습니다. 님은 근면절약했습니다.
살림도 유족하게 됐습니다.
선교사가 소문을 들으시고 오셔서 함석예배당을 지어주셨습니다.
님께서 집사님이 되시고 후에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지나가는 길손들은 누구나 최장로님댁 사랑채에 몇일이고 유숙했습니다.
길손들은 식사대접도 거져 받았습니다.
어려운 형제들을 열심히 구제했습니다.
믿음좋고 인심좋은 최장로님의 덕망이 사방에 퍼져갔습니다.
설교노트가 많습니다. 80세가 되셨습니다.
님은 교회 대지 2400평을 교회에 봉헌하셨습니다.
기와집 23간을 목사사택으로 교회에 봉헌하셨습니다.
교회묘지 6000평을 교회에 봉헌하셨습니다.
임야 6만평을 교회에 봉헌하셨습니다.
최장로님은 아들이 없으셨습니다.
충남 홍성 감리교회에 다니는 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찬송 성경 설교집을 책보에 싸서 지팡이에 꿰매어 등에 메시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니시면서 순회전도인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우리 홍성감리교회 목사님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목사님입니다.”
라고 늘 자랑하시면서 다니셨다고 합니다.
속회(구역)인도도 제일 열심히 많이 하셨습니다.
기도도 제일 열심히 하셨습니다.
전도도 제일 열심히 하셨습니다.
구제도 제일 열심히 하셨습니다.
봉사도 제일 열심히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재산도 아낌없이 전부 바치셨습니다.
90세 되시던 해 어느 날 마지막으로 교회에 나가셔서 마지막 기도를 하셨습니다.
댁으로 돌아오셔서는 고요히 눈을 감으신 채 주님의 따뜻한 품안에 안기셨다고 합니다.
훌륭하게 믿고 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멋있게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아! 한국초대교회 신앙의 거목(巨木) 최군명장로님!
그 이름 빛나도다!
님의 그윽한 믿음의 향기여!
오늘 우리 믿음의 후손들이 길이 님의 신앙의 뿌리와 맥과 전통을 계승계대하리이다!
노송우거진 수동감리교회 정문안에 들어서면 님의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崔君明長老功勞紀念碑”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 : 24)
첫댓글 본 받을 장로님의 생애입니다. 이런 장로님들 더 많이 계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샬롬~
장로의 귀감이신 분이시군요~ 부끄러울 뿐 입니다`
하나님은 예전에도 살아 계셨고 지금도 살아 계시며....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넘어서 고귀한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찬양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성령님 도와주세요.
많은 믿는자들이 살아야할 모범을 보이신 장로님이시군요....나도 장로님처럼 살다가 주앞에 갈수만 있다면.... 그 보다 복된 삶은 없을텐데...주여`~~그리되기를 원하나이다....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