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역사관, 왕조의 성쇠(盛衰)와 문명의 순환
사마천이 역사를 쓸 때 늘 모범으로 의식했던 것은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春秋)]였다.
[춘추]는 공자의 고국 노나라의 연대기에 바탕을 둔 텍스트로, 역사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미묘하면서도
간결한 필치로 보여준다. 사마천 당시에는 공양학파의 [춘추] 해석이 가장 유력했는데, 공양학파의 대표적 인물
동중서(董仲舒)에게 배운 사마천은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사상을 담으려 했다. 이에 따라 [사기]는
단순히 역사 사실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엄정한 현실
비판을 통해 사마천은 자신의 이상(理想)을 드러내려 했다.
사마천은 각 왕조의 역사를 최전성기에서 쇠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중도에 일시적인 중흥기가 있기는
하지만 성(盛)에서 쇠(衰)로 하강선을 그린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탁월하고 영웅적인 인물이 나라를 세우고,
우둔하고 무능력한 황제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걷다가 폭군에 의해 멸망하는 패턴이 하(夏), 은(殷), 주(周), 이른바
삼대(三代) 왕조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왕조 성쇠의 요인이 황제 한 사람의 도덕적 기질과
능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사마천은 하, 은, 주의 정치와 문화의 특질을 각각 충(忠), 경(敬), 문(文)으로 파악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퇴락하면서 그 각각이 야(野. 조야함), 귀(鬼. 미신), 시(僿. 경박함, 허식) 등으로 변했다고 판단했다.
요컨대 하는 충에서 야로, 은은 경에서 귀로, 주는 문에서 시로 변화한 역사라는 점에서 그 내용은 달라도 패턴은 같다고
본 것이다. 결국 전(前) 왕조의 퇴락하고 부패하는 정치와 문화 상황을 다른 이념으로 대체시킴으로써 극도의 쇠락에서
극도의 번성으로 극적 전환을 이루는 것이 왕조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에 따른다면 왕조의 교체는 단순한
왕가(王家)의 교체로만 볼 수는 없으며 정치와 문명의 양식과 본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역사적 요청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이 된다. 사마천은 삼대(三代) 순환설과 함께 문질(文質) 교대설도 언급했다. 문(문화적 꾸밈, 세련됨)과
질(조야함, 질박함)이라는 상반되는 특질이 교대로 출현한다는 것으로, 문명의 전체적 특성 전환을 말한다는 점에서
삼대 순환설과 궤를 같이한다. 역사를 문명적 순환으로 파악하는 이러한 역사관은 이후 중국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늘의 도(天道)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 유교적 세계관과 질서에 대한 의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는 것을 만류하는 간언을 하다가 용납되지 않자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먹다가 굶어죽었다는 백이와 숙제의 일을 기록한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의 심경과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