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대설주의보』(민음사, 1983)
원숭이 나라에 몽구스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있는데 원숭이의 왕이 백성들에게 한 약속과 다른 말을 할 때마다 혀가 갈라지는 형벌을 내리곤 했다. 그리하여 약속을 얼마나 안 지켰는지 왕에 오른 지 채 일 년도 못 되어서 원숭이의 왕이 연설을 할 때마다 갈래갈래 찢어진 혓바닥이 입에서 나와 턱 밑으로 늘어졌고 백성들은 불길한 징조로 여기며 그 혀가 꿈틀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그 너절하게 갈라진 혀의 모양이 낙지 발과 흡사하여 원숭이의 왕에게 낙지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되었다.
-우화집 <<눈사람 살인 사건>>중「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