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다보니 이래저래 병원에 갈 일도 잦아집니다. 작년 11월에 목(경추)이 아파서 한달간 한방치료를 받았었는데 시침을 하던 한의사가 갑판장의 후덕한(?) 턱선을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볼 것을 권하더군요. 말씀을 듣고보니 갑판장의 양턱선이 요상해 보이긴 합니다. 그간은 단순히 살이 쪄서 얼굴형이 넙대대해진 줄로만 알았었는데 말입니다. 암튼 평소에 다니던 (큰)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전 날 밤부터(솔직히 고백하면 당일 새벽부터) 물 한 모금 못마시고 금식을 했더니만 뱃가죽이 등허리에 가서 붙었습니다. 허기만 면하자면야 구내식당으로 직행하면 되겠지만 한 끼니라도 허투루 낭비를 안 하고픈 갑판장입니다. 이왕지사 시내로 진출을 했으니 맛난 것을 챙겨 먹어야겠는데 이제 오전 10시를 막 지난 시각이라 마땅히 갈 만한 식당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근처에 도가니탕으로 유명짜한 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매 번 먹기도 그렇고, 또 얼마 전에 스지를 구해다 집에서 스지를 잔뜩 넣은 오뎅탕도 해먹고 스지수육도 해먹었더니만 한동안은 도가니(혹은 스지) 쯤은 안 먹어도 전혀 아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딱 먹고 싶은 것은 추어탕인데 인근의 유명짜한 추어탕집이 영업을 개시할려면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은 상황이니 그 것도 안 되겠고...해서 궁리해 낸 것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유명짜한 해장국집으로 가되 중간에 지나게 되는 돈까스백반집이 문을 열었으면 그리로 가기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돈까스집 앞에 이르러 창문을 통해 가게 안을 살펴보니 청춘남녀 한 쌍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단언컨데 갑판장이 그 날 그 식당에 세 번째로 입장을 한 손님입니다. 식당 안으로는 무혈입성을 했습니다만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꽤 많은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처 준비를 다 마치기 전에 갑판장이 서둘러 입장을 한 것이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냉수라도 받아 마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돈까스백반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연발로 터지는 꼬르륵 소리에 귀청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갔다가 되려 없던 병을 얻어 올 뻔 했습니다. 가뜩이나 청력도 노화됐는지 예전보다 희미해져서 손님의 호출을 종종 놓치곤 하는데 말입니다.
1식11찬 중 해초무침과 단무지에만 손을 안 댔고 나머지 반찬은 싹 비웠습니다. 돈까스와 밥을 포함해서 부족한 것은 다시 채워준다는 식당이지만 대개의 인류는 기왕에 차려진 것만 깨끗히 먹어도 충분하지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흑미를 섞은 밥이 나왔네요. 백반(白飯)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아래와 같은데 말입니다.(메뉴명이 돈까스백반이었거든요.)

(출처 : 다음 국어사전)
예전의 곤궁했던 시절에는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갑판장도 어렸을 적엔 보릿고개니 혼식장려니 하는 말들을 흔하게 들으며 자랐고 심지어 점심시간 때 선생님이 아이들의 도시락 검사를 해서 잡곡을 30%이상 섞지 않은 밥을 싸온 학생들을 체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까지 했었습니다. 그 땐 그랬었습니다.
백반(白飯)이라는 메뉴는 전후의 곤궁했던 시절에 탄생했답니다. 이밥(입쌀밥)에 고깃국까지 더하지는 못하더라도 집에서 해 먹는 반찬을 더해 팔며 이밥임을 강조하기 위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등의 주메뉴명 뒤에 백반을 붙인 것이 시발이랍니다. 요즘은 백반이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흑미(섞은)밥을 내주면서 콕 찝어서 백반(白飯)을 붙이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암튼 성질머리 고약하고 깐깐한 갑판장은 그렇다는 주장입니다. 하기사 白飯을 쓰기는 커녕 읽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콩이니 팥이니 따져봐야 다 뭔 소용이겠습니다. 식당에서 돼지갈비를 주문해도 목살이나 잡부위를 내주는 일이 허다하고,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살래도 (더 싼)등살까지 길게 붙어있는 덩어리를 (더 비싼)삼겹살값을 치루고 사야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요즘은 잡곡이 백미보다 훨씬 비쌉니다. 흑미도 당연히 비쌉니다. 그러니 식당에서 흑미를 사용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추가비용이 당연히 원가에 반영이 될테니 당연히 수지타산에 손해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요즘같이 자영업자들에게 혹독한 시절에, 음식점은 창업 후 3년도 안돼 휴.폐업을 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고, 5년 이상 생존율이 20%정도 밖에 안 된다는데 많은 식당의 쥔장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밥에 흑미를 섞을까요? 손님의 입맛과 건강을 생각해서 그리 할까요? 물론 그런 분들도 꽤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가지신 분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갖 지은 밥이 맛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쌀밥 좀 먹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을 하실겁니다. 뜨거운 밥에 간장만 뿌려서 비벼 먹거나...날계란이나 버터를 더해서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습니다. 구수하면서도 단내가 풍기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괴니 아예 맨밥만 먹어도 맛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끼니 때마다 새로 밥을 짓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라 갑판장이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식당이라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항시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 입장이라 늘 모자르지 않을 만큼의 밥을 미리 해두었다 (성질머리 급한)손님들이 오시자마자 바로 상을 차려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밥을 미리 넉넉하게 짓게 되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여분의 밥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장사를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허구헛날을 밥을 남기게 되면 큰 손해입니다. 그래서 묵은 밥을 티 안나게 잘 보관하는 기술(?)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 중 한 방법이 흑미신공입니다. 보라색을 띄는 밥의 색깔로 묵은 밥의 누런기를 가릴 수 있고, 흑미 특유의 냄새로 묵은내를 감출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쯤되면 백미도 그 전보다 좀 더 싼 것을 써도 거의 표가 안 납니다.

에궁...당최 뭔 말을 하는지...두서도 없고 피아식별도 못 하는 갑판장입니다.
다시 돈까스백반집으로 돌아 가야겠습니다. 얍!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갑판장은 그 날 음식점이 미처 준비를 마치기도 전부터 입장을 한 (성가신)손님이었고 또 몹시 허기진 상태였습니다. 식당측에서 부지런히 준비를 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흑미밥에서 잡내(묵은내)가 솔방솔방 풍기더군요. 갑판장이 밥그릇을 절반 쯤 비웠을 무렵에 새로 지은 밥을 밥솥에서 밥그릇에 옮겨 담는 작업을 하더군요. 새로 지은 밥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지만 이미 차려진 것만도 충분하기에 그 확인은 다음 기회로 미뤘습니다.
밥맛은 그저 그랬지만 돈까스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특이하게도 소스에 두부를 으깨어 넣었는데 맛이 순할 뿐더러 많이 먹어도 전혀 물릴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솥뚜껑만한 넓이를 뽐내지만 종잇장처럼 얇디 얇은 돈까스보다는 이 집의 존재감 있게 씹히는 돈까스가 갑판장의 기호에는 더 맞습니다. 돈까스가 먹고 싶을 땐 이 집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다만 평소에는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이라니 선뜻 또 방문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친구한테서 점심을 함께 먹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장소가 방이동이랍니다. 지도검색을 해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도로 100분, 왕복 200분이 소요 되는 곳입니다. 한 시간 가량 밥을 먹는다 치고, 30분 가량 커피를 마신다 쳐도 이동시간인 3시간 20분보다는 훨씬 짧습니다. 저녁영업 전에 복귀해야 할 갑판장에게는 딴 세상이야기입니다.
첫댓글 중국산 찐쌀로 밥을 하는 경우 흑미를 넣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디 그런 나쁜 예가 아니셨길...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일랍니다. ㅎ
오자와 맞춤법 틀린게 수두룩한데 컴퓨터로 작성한 글이라 스맛폰으로는 아예 수정을 할 수 없네요. 탈고하는 재미도 제법 솔솔한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