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과 화장품 상점으로 북적이는 서울 명동 한복판. 여기에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리를 지키며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켜본 건물이 있다. ‘유네스코길’ 명동예술극장 바로 건너편에 자리 잡은 ‘유네스코 회관’이다. 회관에 들어서면 한국 60년사와 함께 해온 흔적이 느껴지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UNESCO HOUSE, 이하 한위) 현판이 보인다. 로비에 들어섰다. 후원인들의 이름이 적힌 전광판과 한편에 마련된 월간 ‘유네스코 뉴스’를 비롯한 전단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네스코 한위가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014년, 창립 60주년을 기점으로 유네스코 한위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분주한 명동 한복판에서 ‘잠자고 있던’ 유네스코 한위가 역동적이고 국민과 함께 하는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한가운데에는 올해로 취임 5년차를 맞은 민동석(64)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있다.
“취임 후 이 조직을 잠에서 깨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조직은 생존이 불가능해요.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고민했죠. 이를 위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처음으로 비전을 선포했어요. 3대 쟁점이 있는데, 바로 저개발국 교육나눔, 글로벌 인재양성,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도모입니다. 100명 남짓한 이 작은 조직에서 과학, 문화, 교육 전반에 걸친 모든 영역을 다 소화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성을 높여 감당해 나가겠다고 생각했죠. 이것이 유네스코의 존재 이유고 소명이라 생각해요.”
국민과 함께 하는 유네스코. 민 사무총장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는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후원개발’에 힘써오고 있다. 그 성과는 매우 놀라웠다. 2014년 1월 처음 ‘후원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당시만해도 정기후원자는 5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만에 40배가 증가해 후원자 수가 2천3백명에 이르렀다. ‘후원개발’ 이야기가 나오자 민 사무총장의 눈이 반짝인다.
“짧은 기간동안 후원자 수가 폭증했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방향성에 대해 확신하기 때문에 후원자 수는 더욱 늘 것이라고 봐요. 사실 사업을 하기 위해선 재원(財源)이 필요한데, 예산에 한계가 있고 정부지원은 10%정도밖에 안돼요. 또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면 ‘우리 사업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제는 한위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첫 시작이 바로 ‘후원개발’이었죠. 물론 어려움도 있었어요. 한위가 한번도 걸어가지 않은 길이었거든요. ‘후원모금기구’로 등록하기 위해, 여러 법적인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있었어요. 우리 조직 구성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이제 유네스코 후원자들 모두 연말정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웃음)”
인터뷰 도중 기자의 눈에 ‘어항’이 들어왔다. 어항속엔 커다란 금붕어 2마리와 수십마리 조그마한 붉은색 금붕어가 오밀조밀 들어있었다. 이 많은 붕어를 한 곳에 넣어놓기엔 비좁아 보이는데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니, 유네스코회관 옥상 생태공원 ‘작은누리’에서 데려온 귀한 생명들이었다. 이 ‘붕어 가족’들은 민 사무총장 사무실에서 ‘월동’을 하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 자연생태가 조성돼 있어요. 습지도 있고 곤충·식물 등 200여종이 넘는 생명이 서식하고 있죠. 그곳에 금붕어 몇 마리를 풀어놨더니 짝짓기를 해서 새끼 35마리를 낳은 거에요. 명동 한복판에서 가족을 이뤄 새끼를 낳은 것 자체가 유네스코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붕어 가족’을 이곳에 잠시 넣어둔 거예요. 저는 직원들에게 잡초 하나라도 뽑지 말라고 해요. 시골에선 잡초겠지만 서울 도심에선 귀하디귀한 ‘금초’(金草)거든요. 놀라운 것이 방아깨비, 사마귀도 있어요. 도대체 어디서 온 애들인지 모르겠어요.(웃음) 봄·여름이 되면 옥상 위쪽에서 양봉도 해요.”
유네스코회관 옥상엔 민 사무총장의 또다른 야심작이 있다. 냉난방 집기를 쌓아놓았던 곳을 ‘도심 속 자그마한 쉼터’로 탈바꿈한 ‘배롱나무 카페’다. 호객행위와 관광객으로 부대끼는 명동에서 ‘조용하게’, 그것도 단돈 ‘2500원’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최고급 원두로 바리스타가 내리는 배롱나무 카페 커피맛은 훌륭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든 커피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쓰인다. 좋은 분위기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부도 하는 셈이다.
“원래 이곳은 냉난방 시설이 있던 곳이었어요. 정말 어둡고 지저분한 공간이었죠. 직원들한테 조금 예산에 무리가 되더라도 카페를 하나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되돌려주자고 제안했어요. 이 회관은 국민들이 후원해서 만들어준 것이거든요. 부대끼는 도심 한복판에 이 곳 국민들이 쉴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여기서 전시도 해요. 대관료는 없어요. 대신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면 수익 30%를 아프리카 교육지원금으로 기부해요. 이런 방법으로 국민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죠. 세계적인 모델 미란다 커가 방한했을 당시 이곳에서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최근엔 이 카페를 찾는 단골손님이 많아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