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의 수행정진(修行精進)
임병식 rbs1144@daum.net.
날씨 화창한 가을날, 인접 고을 선암사를 찾았다. 사찰로 접어드니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선 돌감나무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주렁주렁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어 기분을 돋우었다. 그 광경을 보노라니 얼마 전까지 지겹게 내리쬐던 무더위와 열대야가 마침내 물러나는가 싶은 실감이 났다. 대번에 기분이 달떴다.
동행은 모두 3명. 다른 이들은 우리를 삼총사라 부른다. 나이도 같거나 한 살 터울의 자치동갑이어서 허물이 없는 사이다. 글쓰기의 취향도 같고 공무원으로 봉사하다 정년퇴임을 했다. 80을 앞두고 노후를 즐긴다.
벗 중에는 마침 차를 소유한 사람이 있어 신세를 진다. 함께 다니면 기름값이라도 보조해야겠지만 그는 어차피 사진을 찍느라 천지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하나 올린다는 기분으로 부담감 없이 이용한다. 그는 유명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날도 그가 ‘아직 꽃무릇이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안내를 했다.
우선 사찰 경내를 돌아보았다.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600년 된 노거수 매화나무가 반기고 역시 오래된 은목서 금목서가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반겼다. 기대하고 간 꽃무릇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절정의 시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폰에 담았다.
이곳은 실로 오랜만에 온 것이다. 그간 몇 차례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주차장이 있는 절 입구쯤에서 머물다 돌아왔다. 그런데 이날은 사진작가인 벗이 사찰 관계자를 잘 알아 차량을 제지받지 않고 경내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절에서는 모처럼 진기한 장면도 목격됐다. 행자 신분을 막 벗어난 승복을 입은 40여 명의 승려를 만난 것이다. 선원에서 합동 강습을 받다 공양 시간이 되니 밖으로 나오는 발길이었다. 그들을 보니 인생사 희로애락을 겪고 난 나머지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졌다.
나이는 대중없이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살면서 무슨 곡절과 사연이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스님이 되기로 한 이유는 마음속에 안고 살아 늘 체증처럼 엉겨 붙은 고뇌와 번민을 털어내지 못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그 가운데는 가끔 세속의 삶에 실망하거나, 사랑에 실패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참 진리를 탐구해 보려고 찾아온 발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는 각기 다른 얼굴만큼이나 가슴 속에 여러 사연이 새겨져 있는 듯 보였다. 목에는 한결같이 ‘묵언(默言)이라고 쓰인 표찰을 걸고 있었다. 모름지기 수행이란 말 없는 가운데 깨우쳐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머리를 일색으로 깎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옛날 학생 잡지에서 보았던 어떤 ‘난센스’ 말이 떠올랐다. ‘스님이 머리를 깎은 이유는 무엇이게?’ 하는 질문에, ‘긴 머리카락은 안테나 구실을 하여 잡다한 생각이 한꺼번에 들어옴으로 그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답 글이 달렸다. 그것이 압권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어릴 적 그것을 보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미승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삭발 이유가 그러한 발상에서 생겨났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러나 합리적인 생각은 머리 깎고 머리 감는 시간을 줄여서 수행에 용맹정진하라는 뜻이 더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 사진작가가 기막힌 한 컷을 건졌다. 김 선생이 스님들 앞에서 손을 들어 올린 모습이 찍혔는데 제목을 그렇듯 하게 달렸다. ‘스님 교육 중’ 그런데 그것은 실은 다른 행동이 포착된 것이다.
기둥 주련 글씨에 ‘巍’자가 적혔는데 한자가 생각나지 않아 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작품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로 그러하기도 한 것이다.
명화로 널리 알려진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도 표정이 보는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고 해석이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과연 찍은 사진에 제목을 그렇게 다니 멋지게 보였다. 지적하여 물으니 스님 중 한 분이 말했다. “이 한자는 높을 ‘외’자입니다.” 그래서 배울 것 많은 세상에서 또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한자는 어렵다. 같은 글자도 음을 달리하고 거기에 변이 추가되면 전혀 다른 글자가 된다.
이 글자는 성씨 위(魏) 위에 뫼 산(山)이 붙었는데, 글자가 달라졌다. 이 글자는 빼어난 외로도 읽히는데, 거기다가 산(山)을 추가하니 높다는 것을 강조하여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일이겠다.
그로 보아 공부하는 선원에서 높고 높은 불법을 배워 수양하고 대중을 깨우치라는 뜻이 담긴 것이 아닌가 한다. 한데 높은 것을 뜻하는 글자가 있으면 반대로 낮은 글자도 있게 마련이다, 철(凸)이 있으면 요(凹)가 있듯이 낮은 것을 뜻하는 글자로는 또 다른 글자 예(穢)가 있다. 이 글자는 깊고 넓은 외, 물 많은 회, 흐릴 예, 그물 던진 소리 활 등으로 읽힌다.
이날 나는 여러 가지를 구경했다. 낙안읍성을 들러 백중놀이 한마당인 농악놀이와, 성 쌓기 시연, 그리고 인근에 있는 한창기 선생의 생활사박물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과거의 일을 재현하고, 과거에 쓰던 물건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절집에서 만난 공부하는 사미승은 현재를 살아가는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어서 인상에 많이 남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어떻게 살고,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그것을 떠올리니 공부하는 사미승들의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뚝 잘라서 한마디로 탐진치(貪瞋癡)로 이해한다. 무엇을 욕심내어 탐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며, 어리석게 살지 말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렇게만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경박하고 공허한 것인가. 채워지는 내용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더라도 더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깨달아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들이 목에 걸고 있는 묵언 글씨가 여간 무겁게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발길이 그래서 돌아올 때는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려서 수계를 받은 스님이 화두 하나씩을 간직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받고 돌아보는 기분이었다. (2024)
첫댓글 '사미승의 수행정진' 선암사를 찾아가는 날 새로 승려가 되려는 사미승·니 수계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의 실상을 언급하시며 '여러 사연, 이유로 고뇌 끝에 스님이 되기로 작정'하심을 간파함은 혜안입니다.
종교에 일생을 빠져 세속과 단절함은 여러 사연과 고뇌의 결과라 생각이 듭니다.
청춘을 '불 살사르고' 의 일엽스님이나, 나라를 구하고자 기행을 일삼은 큰 스님 원효대사가 생각남니다.
임진난의 서산대사나 사명당은 얼마나 훌륭한 애국자였습니까!
그날 수계 광경을 보던 중 주련에 쓰여진 '巍'자를 물었는데 저의 광경 사진을 촬영하고
巍자와 穢자의 의미를 새겨주시니 巍와 穢의 의미가 새로워집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해석도 기가막힙니다. 감히 어느 누가 모나리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겠습니까!
모나리자 그림이 최고 가격이란 것만 알지 말입니다.
청석님의 탁월한 수필 맥은 어느 누구도 따르기 힘들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암사 나들이는 즐거웠습니다. 좀체 보기어려운 교육받는 스님들을 집단으로 볼 수 가 있어 귀한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연령층아 다양한데 무슨사연으로 스님이 되려고 할까 하는 생각에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여행을 하면 반드시 보고 얻어듣는 것이 있는데 이날은 뜻밖에도 한자 巍를 알게된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변함없는 우정으로 노후를 즐겁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의 가을
세 분의 따뜻한 우정이 나날이 돈독해져가는군요 6백년 매화나무와 붉은 석산과
스님들의 구도 정경에 유명 사진작가의 순간포착이 이색적인 모습을 빚어내기도 했군요 사미승들의 구도 정경을 마음에 담아오셨군요 태고종 스님들은 결혼도 할 수 있어 대처승이 되기도 하니 그나마 숨통이 트여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절에서 결혼식을 하고 나중에는 수계도 받고 법명도 받았는데 지금은 교회에 나가고 있는 제 자신의 옛 일을 가만히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군요
이선생의 과거전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태고종의 스님들은 대처승이 되기도 한다니 새롭게 아는 정보입니다.
암튼, 새로이 스님이 되기 위해 교육받는 현장을 목격하니 모처럼의 사찰 방문의
뜻을 더했습니다.
이주 토요일 또한 나들이가 기대됩니다.
2024여수문학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