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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수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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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 충무공의 어록(語錄)
청석 임병식 추천 0 조회 28 25.07.29 06:56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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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7.29 12:11

    첫댓글 공이 보성과 인연을 맺은 건 아무래도 장인 방진이 한때 보성군수를 역임한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이순신은 장가를 잘 들어 성공한 케이스 같기도 합니다 장인 방진은 무인으로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는 데 뒷받침이 되었고 특히 방씨부인은 무예에 뛰어나 직접 낭군을 지도했다고 하지요 더구나 방씨가문은 대부호였는데 방씨부인이 무남독녀였기에 전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공의 전도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생사의 고비에 처하기도 했지만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전공을 거두었는바 구국충절의 표상입니다 장군의 명언 사즉생 샹즉사는 2천년 전 예수님의 말씀이었으니 참으로 기이합니다 배설이 도망치는 바람에 12척의 전함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기이하다 싶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빠져듭니다

  • 작성자 25.07.29 15:33

    보성은 이순신장군과 실로 인연이 깊습니다. 이곳에서 군량미와 병사와 병장기를 모아서 명량대첩을 이끌 수 있었지요.
    장인 방진(1515년생)이 보성군수를 지내기는 1558년, 32세에 난 딸 수진의 나이 12세 때임. 이준경의 중매로 결혼한 때는 19세에 했으니 한참 후 보성군수를 마친 뒤였지요.
    장군이 나중 보성고을에 들러 장인의 발자취를 느끼기는 했겠으나, 다른 것을 연결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장군은 열선루에서 '금신전선..'장계를 올렸는데 그것이 폐허가 되어 그간 정확한 장소조차 모르고 있었지요.
    나중에 주춧돌을 찾아낸 것을 계기로 누각을 복원했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이 누각은 앞으로 보성을 찾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25.07.29 14:56

    임선생님이 충무공이순신장군의 일생일대와, 사는 동안의 天秋에 빛날 말들을 다 정리하셨습니다.
    충무공이순신 장군은 세계 성인이라 일컫는 공자, 석가, 예수보다도 나라 사랑과 충절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即死生生即死, 죽으면서까지 나라 사랑하는 마음 戰方急愼勿言我死,
    호남 지방을 예찬하는 ‘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을 제외한 타지역민들은 이말을 명심해야합니다.
    세 번의 파직과 두 차례의 백의종군 이는 선조와 같은 무능하고 미련한 놈이 통치했기에
    충무공공이순신장군은 더 위대한 역사의 師標로 남은 것입니다.

    보성 열선루는 진주의 촉석루와 밀양의 영남루를 아우르는 누각이니 한 번 가 볼만 하겠습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의 정신과 위대한 삶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25.07.29 15:39

    이순신장군의 위대한 업적은 만고에 빛날것입니다.
    보성고을에서 명량대첩을 이끌 기반 (병력, 군량비, 장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보성은 장군과는 떼여야 떨 수 없는 인연이 있다 하겠습니다.
    " 今臣戰船尙有十二"
    실로 그 장계는 열선루에서 작성이 되었으니 복원작업은 늦었지만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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