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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증도면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1층에 전시된 십자가와 문준경 전도사 동상.
“씨암탉.”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은 문준경(1891~1950) 전도사를 그렇게 낮잡아 불렀다. 공산주의를 위협하는 기독교 신앙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믿음의 씨앗을 뿌린다는 이유에서다. 문 전도사는 한 달에 한 켤레씩 고무신을 바꿔야 할 정도로 신안군 일대의 섬을 두 발로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런 노력으로 대초리교회 증동리교회 진리교회 방축리기도처 등 10여개의 교회와 기도원이 생겨났다.
1950년 10월 5일 새벽 전남 신안의 섬 증도에 머물던 공산군은 결국 문 전도사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을 증동리교회에서 600m 떨어진 터진목 백사장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당시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어가던 문 전도사는 이렇게 외쳤다고 전해진다.
“나를 죽여도 좋으니 우리 성도들은 살려 주시오. 나는 죽지만, 당신들도 예수님 믿고 천국에서 만나기를 바라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공산군의 ‘씨암탉’ 호칭은 정확했다. 문 전도사의 순교 정신은 이후 이인재 김준곤 정태기 목사 등 이 지역에서 수많은 제자 목회자를 길러내는 자양분이 됐다.
국민일보는 24일까지 사흘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총회장 장종현 목사)과 함께 전남 지역의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나섰다. 목포 영광 신안 여수 순천을 탐방했다.
1948년 10월 22일 순천 매산등 당산나무 부근에서 집단 학살이 발생했다. 국군 12연대 일부 병력에 의해 주민 25명이 무고하게 총살당한 것이다. 당시 여수와 순천 지역에서 발생한 여순사건의 여파다. 1921년 내한해 호남지방 선교의 터를 닦은 엘머 보이어(한국이름 보이열) 선교사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페니실린 병에 이름을 적고 인근 남장로교 선교부 터에 이들을 묻어줬다.
군대가 무서워 시신을 보고만 있던 상황에서 보이어 선교사는 용기를 냈다.
순천 지역에서 의료와 교육 선교를 펼친 파란 눈의 선교사들의 헌신은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이다. ‘순천의 작은 예수’라 불린 제임스 로저스 선교사는 1917년 내한해 부인의 질병과 장모의 사망으로 곤란을 겪으면서도 헌신적인 인술을 펼쳤다. ‘순천의 검정 고무신’ 휴 린튼 선교사는 고무신을 신고 농어촌과 섬마을을 돌며 200여곳 교회를 세웠다. 그가 교통사고로 숨진 것을 계기로 한국 최초의 구급차가 생겨났다.
1913년 순천선교부에 부임해 44년간 한국선교에 몸 바친 플로렌스 H 크레인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야생화 도감을 펴냈다. 그의 책 일명 ‘한국의 들꽃과 전설’에는 순천 지역 들꽃에 관한 풍부한 민담이 담겨 있어 의미가 더 크다.
손양원(1902~1950) 목사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지금처럼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바꾼 주요 인물이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기를 향해 절하는 풍습이 우상숭배라고 본 손 목사는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통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진행하는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바로잡자고 요청했다.
전남 목포 사회복지시설 공생원 앞에 지난 23일 윤치호(왼쪽)
윤학자 부부의 흉상이 들어서 있다. 가운데는 이들 부부를 기리는 헌시.
빈민과 고아들을 품어 ‘거지대장’이라 불린 윤치호 양동교회 전도사와 그의 부인이자 일본 고위층 자제로서 평생 고아를 품어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린 다우치 지즈코(한국명 윤학자) 여사의 이야기에서 한·일 양국의 미래를 생각한다. 이들 부부는 1928년 목포에서 7명의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공생원을 시작해 윤학자 여사가 소천할 때까지 3000명 넘는 고아를 길러냈다. 이후 공생원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생(共生), 고아와 사회의 공생을 넘어 이제는 한·일 간 공생의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 여사의 어머니는 결혼을 앞둔 윤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나라와 나라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구별 없이 모두 형제자매다.”
신안·순천·목포=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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