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朝鮮 繪畫의 변천過程
조선시대에는 안견(安堅), 정선(鄭歚), 김홍도(金弘道), 장승업(張承業) 등의 걸출한 화가가 배출됐다. 이들을 가리켜 조선의 4대 화가라 일컫고 있다.
(1) 初期(1392∼1550)
세종 연간을 중심으로 이미 안견(安堅)·강희안(姜希顔) 등의 거장들이 배출됐다. 이 시기는 후대 한국회화 발전의 토대를 이룬다. 중국에서 전래된 화풍을 토대로 중국 회화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16세기에 이르러 단선점준 등의 한국적 준법이 이뤄졌다.
(2) 中期(1550∼1700)
초기의 화풍들을 계승, 지속적으로 발전되는 한편 영모(翎毛)·화조 부분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와 조선시대의 정취를 짙게 풍기는 화풍이 등장했다. 묵화(墨畵)의 발전과 함께 문인화가들이 배출됐고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가 전래되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했다.
(3) 後期(1700∼1850)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 자아의식이 짙은 화풍이 풍미했던 시기이다. 영조·정조 연간에 대두된 실학(實學) 발전과 그 영향으로 새로운 경향의 회화기법과 사상이 수용되면서 절파계(浙派系)의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문인화가 성행했고, 독특한 화풍의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정선(鄭敾)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또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은 당시 생활과 애환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風俗畵)를 그렸으며, 청(淸)나라로부터 서양화법이 전래돼 일부의 화가들에게 의해 수용되기도 했다.
(4) 末期(1850∼1910)
이전시대에 성행하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허유(許維) 등의 남종문인화가 세력을 떨친 시기이다. 남종화법의 토착화는 한국 근·현대의 수묵화가 남종화로 치우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한국화의 전통은 국내 정치적 상황의 격동에 의해 위축되어 갔으며 장승업(張承業)을 고비로 침체되기 시작했다.
(5) 近代와 現代
1910년 국권피탈을 계기로 한 일제의 문화말살정책 등으로 한국화는 더욱 위축되어갔다. 그러나 그해 11월 서화미술협회(書畵美術協會)를 창설한 안중식(安中植)과·조석진(趙錫晉) 등이 장승업의 화풍을 이어받자며 노력한 결과 그 문하생인 이상범(李象範)·김은호(金殷鎬)·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 등에 의해 어렵게나마 맥락을 이어왔다.
문인화 전통이 강한 이희수(李喜秀) 맥의 이응로(李應禿) 등과 전통적인 남종산수화를 정착시킨 허유(許維) 맥의 허영(許瑩)·허백련(許百鍊)·허건(許楗) 등이 근대화단을 풍요롭게 했다. 오늘날의 한국화는 민족미술의 원래 얼굴을 되찾아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성·고유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비약이 모색되고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그나마 가장 좋아 보입니다.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화폭에 담는 진솔한 작업이라고 여깁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네요. 예술같은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장산갤러리에 전시된 위용환 화백의 그림입니다.
이름만 보아도 알만한 화가분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그분들의 그림들이 모조품이나 복사본인지는 모르지만 그림도 상당히 많이 보았고요.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