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17>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
시장에서 날마다 열리는 공연…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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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영국 런던의 코벤트가든 광장에서 구운 빵을 팔고 있는 상인들 사이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이랑주 씨 제공 |
영국의 겨울은 춥고 습하다.
365일 축제가 열린다는 '코벤트 가든'을 가고 싶은데 너무 추워 외출이 꺼려졌다.
결국 고양이 세수로 잠을 깬 뒤 털모자와 두꺼운 외투를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다.
길을 따라 걷는데 극장 앞에 긴 줄이 보였다.
아침부터 오페라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 것이다.
참 대단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넓지 않은 길 양쪽에는
특이한 복장을 한 행위 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둥근 프라이팬을 닮은 악기로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 공연을 이리저리 구경하다 코벤트가든에 도착했다.
하지만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가든 앞의 광장 때문이었다.
광장에는 군사 퍼레이드 같은 행사가 열렸다.
광장 중앙에 거대한 비행기가 여러 대 전시됐고
무대 한쪽에서는 공군 복장을 한 사람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수도원 부설 야채시장에서 유래
이들에게 빼앗긴 시선을 겨우 거둬들여 코벤트가든 안으로 들어갔다.
양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창고처럼 늘어섰는데, 가장 넓은 것이 야채시장처럼 보였다.
중앙 홀은 커다란 열차역이나 맥주홀, 공연장처럼 느껴졌다.
코벤트가든은 수도원(Covent) 부설 야채시장에서 유래했다.
1970년 야채시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그 자리에 술집과 상점이 들어섰다.
코벤트가든이 유명해진 것은 미국 영화배우인 오드리 햅번 때문이었다.
그가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다.
지금도 시장은 서고 있지만 예전의 야채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벤트가든은 크게 애플마켓과 주빌리마켓으로 구분된다.
그중 애플마켓은 수제 양복과 액세서리를 주로 팔고,
주빌리마켓은 의류, 수공예품, 오래된 가구 등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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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매달린 장식이 눈길을 끄는 코벤트가든 실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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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적 제품과 경쟁하는 시장 제품
애플마켓 양쪽으로 규격화된 상점들이 늘어섰다.
중앙에는 각종 수공예품 가게가 있었는데 제품이 상당히 독창적이고 수준이 높았다.
그중에는 대형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다국적 명품 브랜드도 많았다.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중앙 매대에는 수제 향수와 비누 등이 배치돼 있었다.
세계적인 브랜드와 당당히, 아니 더 좋은 자리에서 경쟁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가격도 셌다.
다국적 브랜드에 기가 죽지 않는 시장 제품?
과연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국내 시장을 여행하면서 당뇨를 잡은 떡을 개발한 시장 상인도 만났고,
시장에서 시작해 나중에 백화점에 입성한 제품도 보았다.
국내에도 좋은 시장 제품이 많다는 얘기다.
다만, 이들 상품을 제대로 알릴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통 대기업과 인근 재래시장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던데,
이처럼 시장의 경쟁력 있는 상품을 유통 대기업이 홍보해주는 상생 정책을 펼치면 어떨까.
상생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에 달렸다.
■ 시장에서 듣는 클래식 공연 '흐뭇'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식당 앞 미니 홀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5명의 신사들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으레 음향시설이 좋은 대형 공연장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달랐던 것이다.
그 모습이 좋았던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연주자들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연주자는 시간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나름의 연주 순서와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았다.
한 팀의 연주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또다른 팀이 와서 대기했다.
공연이 끊이지 않으니 사람들도 많이 찾고 오래 머물렀다.
고객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매출은 당연히 올라간다.
■ 시장은 삶의 공연장이 돼야 한다
시장은 필요한 물건만 달랑 사서 돌아오는 곳이 아니다.
그럴 요량이라면 가까운 마트를 찾으면 된다.
대형 유통기업에 맞서 재래시장의 힘을 기르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벤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코벤트가든처럼 수시로 공연을 열면 어떨까?
물론 365일 상설 공연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특히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과 상생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예술도 살고,
시장도 사는 상생 정책이 될 것 같다.
상상이 현실이 되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테다.
우리 부부도 코벤트가든에서 물건을 사기보다 다양한 공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무려 8시간 동안이나...
그럼에도 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행복했다.
쉼의 공간으로서 시장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