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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한
‘제대로’가 인생의 화두
서로 의지해 있는 세상에서
일상 속 수행 아닌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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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3분의2 이상을 무대 위, 관객 앞에서 보냈다. 지난해 그 세월이 햇수로 꼭 50년이 됐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배우의 길을 걷는 자녀들과 사위까지 뜻을 모아 기념 연극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자신의 연기 인생 50년을 무대 위에서 돌아봤다. 천생 배우다. 1941년 뱀띠 생인 연극배우 전무송씨. 우리나라 현대 연극사의 산 증인이자 연극계의 원로배우며 무대를 꿈꾸는 청춘들의 스승이다. 하지만 “자랑할 만한 게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배역에 대한, 작품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별로 해 놓은 게 없어요. 그저 해온 것이지. 작품에 출연하고 한 작품 한 작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빨리 스타가 되고 싶어 해. ‘누구처럼’ 되고 싶어 해. 누구처럼 예뻐지고, 누구처럼 유명해지고, 누구처럼 살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 개개인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에요. 얼마나 신비로워? 그 신비로운 자신을 갈고 닦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빛나는 존재가 될 텐데. 그런데 그걸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니까 누구처럼 되고 싶은 거야. 제대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누구처럼 되고 싶어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제대로란 무엇일까. 그에게는 잊히지 않는 가르침이 있다. 동랑 유치진 선생이 드라마센터 소장으로 계실 때였다.
“제대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음 연극 주연을 맡았는데 실력이 모자라 그만 잘렸어요. 화도 나고 실망도 크고 뭐, 말할 수가 없었지. 그런데 동랑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배우가 무대 위에 제대로 서려면 10년의 세월이 필요하고, 대사를 제대로 하려면 또 10년이 필요하다’시며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제대로 하는 거. 인간이 되는 거. 사실 그 공부를 아직도 하고 있는 셈이야. 지금 학생들을 볼 때 마다 꼭 해주는 말도 그 가르침이에요.”
제대로는 힘들다. 제대로와 제대로 아닌 것이 섞여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배우고 빠뜨리지 않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제대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 과정 하나하나를 배우고 행하지 않고 좋은 맛이 나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 과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제대로다. 하나의 과정만 놓쳐도 제대로가 되질 않는다.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연기죠. 그게 제대로 안 되서 내가 명배우가 못 되는 거예요. 인간이 되려면 제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아직 인간이 안 된 거야.”
이쯤되면 욕심이 아닐까 싶다. 연극판에선 말할 것도 없고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실력을 인정받지 않았는가. 간혹 ‘엄살떤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니냐’ ‘욕심이 지나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인지 아닌지는 나만 아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영화 만다라(임권택 감독. 1981년.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제대로의 맛을 처음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만다라의 대본을 받아든 순간 막막했다. 처음 들여다보는 수행자의 세계. 하지만 문득 한 생각이 바뀌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10년 세월 만행을 하는 대본 속 지산 스님이나, 제대로 된 ‘내 것’을 찾겠다며 10년 세월 연극판을 뛰어다니던 내 모습. 서로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로 했지. 그렇게 지산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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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에서 전무송씨는 그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지산을 탄생시켜다. 1962년 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 전신) 1기생으로 연극판에 처음 발을 딛고 10년, 그리고 ‘제대로’ 하기 위해 또 다시 뛰어다닌 10년 세월을 보내고서야 만난 ‘제대로 된 나만의 것’은 세상 어느 곳도 아닌 내 안에 있었다. 제대로인지 아닌지 또한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당시 경국사를 자주 찾았다. 무명이나 다를 바 없던 70년대 말 우연히 알게 된 한 스님의 소개로 경국사 객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글쟁이, 환쟁이, 딴따라 등 꿈과 열정만 대단할 뿐 남들 보기에는 대단할 것 없는 문화계 주변인들, 그야말로 ‘백수’들이 꾸역꾸역 모여 있었다. 하는 일이라야 차 한 잔 놓고 밤새워 예술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는 것 뿐이었다. 이런 백수들을 당시 경국사에 계시던 고 지관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께서는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영화 만다라를 보시고 나서는 “우리 절에 있는 스님들보다 무송씨가 더 스님 같다”며 농담도 하셨다. 그 후 TV드라마 원효대사(1986)에 출연하자 “우리 절에 원효대사님 오셨다”며 반갑게 맞아 주시기도 했다. ‘제대로’ 되어가는 그를 알아봐 주신 것이리라. 지금도 한 없이 고맙고 그립다. 경국사에 모여들었던 ‘백수’들은 ‘영산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이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작가, 화가, 사업가, 판검사, 교수, 의사, 국회의원 등등 이름을 얻었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 모여도 처음 마음 그대로다. 그래서 더 좋다.
“제대로 하며 과정을 밟다 보면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고 연계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내 삶의 방향을 돌려놓기도 하죠.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모든 것들이 관계 맺고 의지하는 연기(緣起) 속에 있었던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 혼자 온 것이 아니에요.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고 그러니 세상이 곧 수행처인데 무슨 수행이 따로 있겠어요.”
사람들은 그를 일러 ‘스님 전문 배우’ ‘스님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도 한다. 하지만 스님 역할에 연연해 본 적은 없다. 그에게 세상은 그대로 도량이고 연기는 소리 없는 수행이다. 그러니 새해에도 다만 기다릴 뿐이다. 그 속에서 제대로 태어날 누군가를. 그렇게 잉태하고 탄생될 다음 배역을 기다리는 전무송씨에게 연극은 끝없는 구도(求道)의 길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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