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성전과 예수님
예루살렘 구도시의 중심에는 제1성전과 제2성전이 봉헌되었던 성전산이 자리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신 뒤 광야에서 사십 일간 단식하실 때, 사탄은 예수님을 “거룩한 도성” 곧 예루살렘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유혹하였습니다(마태 4,5-6).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그때의 성전은 없고 현재는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지만, 옛 성전을 지지하던 바깥벽이 어느 정도 남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곳에 성전을 최초로 봉헌한 이는 기원전 10세기의 솔로몬 왕입니다. 2역대 3,1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주님의 집을 지었습니다. 모리야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곳이지요(창세 22,2). 그런데 솔로몬의 제1성전은 기원전 6세기 초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즈루빠벨이라는 지도자의 주도로 제2성전을 봉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기원전 1세기에 일명 ‘건축왕’이라 일컬어지는 헤로데가 개축하고요. 이때, 그가 행한 공사 규모가 굉장했던 것 같습니다. 성전에 쓰인 돌 대부분이 각각 2-3톤 정도였고, 가장 큰 돌은 무게 570톤, 길이 13미터에 달했습니다. 이 돌들은 모리야 산의 북쪽을 채석하여 마련했다고 합니다. 헤로데는 자기 건축물에 독특한 문양을 새기게 하였으므로,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묻힌 헤브론의 막펠라 동굴에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어 헤로데가 재건한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헤로데가 개축한 성전에서 활동하십니다. 하지만 세속 시장처럼 변질된 타락상을 꾸짖으며 환전꾼과 상인들을 양과 소와 함께 몰아내십니다(마태 21,12-13; 요한 2,16). 즈카 14,21에 따르면, 성전에는 신약 시대 이전부터 장사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을 성전에서 몰아내신 건 동물 제사의 폐기를 예고하시려는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희생 제사가 완성되면, 죄 사함을 위한 제물이 더는 필요 없을 터였기 때문입니다(히브 7,27).
유다인들의 기쁨이자 자랑이던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마태 23,38) 파괴됩니다. 기원후 70년, 열혈당원들의 봉기를 진압하던 로마 장군 티투스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려 그 자리에 성전과 관련된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기원후 7세기부터는 이슬람의 예언자 모하메드의 승천을 기념하는 사원이 순금의 위용을 뽐내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곧 예수님의 몸이고(요한 2,21), 주님께서 완성하신 단 한 번의 제사로 우리 또한 성령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으므로(1코린 3,16), 당신의 거처를 백성 사이에 두시겠다던 하느님의 약속(에제 37,28)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전산은 이제 흔적만 남았지만, 예부터 이어져온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조근조근 들려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10월 20일(나해)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