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결혼식
일황은 사귀는 낭자와 다음 달 보름날, 결혼식을 올리기로 날을 잡았다.
그러자 민들레가 잽싸게 끼어들어 합동결혼식을 하자며 일황에게 부탁한다.
일황과 결혼할 낭자 쪽에서도 기꺼이 승락하였다.
고아로 자란 가마우지는 고향인 사로국 근오지에는 가까운 친인척도 별로 없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강과 바닷가에서 물 잠박질로 하루해를 보냈다.
늘 물에서 살다시피 하니 헤엄도 잘 치고, 해변가에서 하는 해루질 솜씨가 특출나게 뛰어났다. 해삼이나 문어 등 해산물이나 물고기를 맨손으로도 잘 잡았다. 바닷물과 햇볕에 종일 거슬러 얼굴이나 신체도 새까맣다.
그러니 별명이 ‘가마우지’가 된 것이다.
이곳보다 더 많고, 더 친한 좋은 하객들을 만날 수가 없다.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진다.
합동 결혼식 날. 우문청아는 자신의 제자가 결혼식을 올리니 기쁘다.
예식장은 이태 동안 수련을 하며, 많은 위험과 온갖 고생을 다 겪은 사정 수련원이다.
단정한 예복 차림새를 갖춘 우문청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하객 賀客들을 맞이한다.
새신랑보다 더 젊은 박지형도 이중부와 같이 우문청아 옆에서 혼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박지형은 사정 수련원의 대표자 자격으로 일황과 가마우지의 혼주역을 맡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혼주가 새신랑보다 더 젊어 보이니, 박지형을 처음 보는 하객들은 신랑 측의 동생이나 그 집안의 심부름꾼으로 착각한다.
하객 대부분은 일황의 신부측 친인척이거나 지인들이다.
미혼 未婚이지만 청아는 신랑 일황의 사부 자격으로 혼주 婚主 역할을 대행하여, 하객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으며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속마음은 착잡 錯雜하다.
‘저 자리에, 아니 저 옆자리라도 상관없으니 나도 중부와 같이 서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축하객들이 모여든다.
설건우 천부장 막사에서도 대표로 동방향기 군사와 백 부장 한준이 참석하였다.
결혼식이 진행되자, 예식 주인공들을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향기와 한준은 예물로 암컷 양 한 마리 씩을 설걸우 천부장 명의로 각각 부조 扶助해 주고는 바로 이중부를 찾아갔다.
새신랑 가마우지 옆에서 박지형과 함께 혼주 역할을 하며 하객들을 영접하던
이중부는 오랜만에 보는 동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특히, 향기와는 헤어진 지 이 년 반이 넘었다.
반갑게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 년 반 만에 중부의 크고 두터운 손을 잡아보니 향기는 가슴이 저러온다.
이태 반 동안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중부를 만난 향기다.
반갑기는 한데 여기까지는 어릴 때부터 몇 해 동안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자란,
친구 간의 반가움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성 異性 간의 감정을 표출하고 싶으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런 속마음을 내비치기가 쉽지 않다.
서누리의 안내로 조선하 박달촌 수련원 출신들은 하객석 한쪽에 마련된 긴 통나무 의자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중부는 향기에게는 수태차를 권하고 한준과는 술잔을 마주치고 있다
그런데 한준이 호위무사처럼 잠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향기의 옆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한 준, 부장님”
“응, 왜?”
“너희들은 술을 마시니 모르겠지만, 나는 저기 예식상 위에 진열된 녹색 동그란 과자 菓子가 먹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그~래, 알았어” 한준은 시원스럽게 대답한다.
그런데, 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중간에 앉아 있던 향기의 등 뒤쪽으로 얼굴을 돌려
향기 왼쪽에 앉아 있는 중부를 보고 큰 소리로 말한다.
“중부야, 향기 말 들었지?, 오늘은 네가 혼주 역할 하니까, 어떻게 해봐?”
그러니까, 향기는 자신의 오른편에 있는 한준에게 부탁을 한 것인데,
한준은 먼저 말을 한 향기를 오히려 건너뛰어,
향기의 왼쪽에 있는 중부에게 도리어 부탁하는 묘한 광경이다.
“으~응, 조금만 기다려 보자, 곧 예식이 끝날 거야.”
그런데,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찰라적 刹那的이지만 중부는 한준의 어투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다.
분명 이태 전과는 다른 말투다.
한준은 북해 봉래 포구에서 중부에게 패한 뒤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중부에게 만큼은 항상 한걸음 양보하고, 그 이후부터는 모든 일을 중부의 눈치를 보면서 결정을 내리고 진행하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상대와의 대화 내용이 대등한 어투고, 태도는 당당한 모습이다.
오히려 중부에게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동무지간에 이러한 말투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어투나 태도를 본 적이 없었다.
중부는 속으로 ‘나이가 들고, 수련생들 조교 담당을 하더니 자신감이 많이 생겼군, 하긴 젊은 사람이 자신감 없이 어찌 인생을 살겠어?’하고 가볍게 여기고 무심코 넘겨 버렸다.
그때.
우문청아가 과자와 과일을 각각 담은 함지박을 양손에 들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중부의 왼편에 앉아있던 서누리가 일어나, 함지박 한 개를 받아 들고 우문청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서누리에게는 우문청아가 첫 사부나 다름없다.
“문주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 괜찮은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문청아는 서누리가 권하는 자리인 중부의 곁에 자연스럽게 앉으면서, 서누리의 오른팔을 당겨 자신의 옆에 앉힌다.
처음 좌석 배치는 왼쪽부터 서누리, 이중부, 동방향기, 한준 이러한 순서로 앉아있었는데, 누리와 중부 사이에 우문청아가 끼어든 상황이 된 것이다.
제자의 혼주 대행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도중에도, 청아의 눈길은 늘 중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특히, 이중부 옆에 자리한 동방향기의 일거수 일투족 一擧手 一投足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다 시피하고 있었다.
청아가 들고 온 나무로 깎아 다듬은 두 손바닥 크기의 두 개의 함지박 중 한 개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과자와 다른 함지박에는 블루베리, 산딸기 등의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향기가 꼭 집어서 말한 그 동그란 녹색 과자도 서너 개 보인다.
멀리서 혼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향기가 중부와 한준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지 이미 눈치로 꿰차고 있었다.
그래서 갖가지 과자를 골고루 담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향기는 앞에 놓인 함지박 속의 과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향기도 벌써 청아의 속셈을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미 식욕이 사라진 터였다.
물론 먹고 싶은 식욕 보다는 다른 생각이 있어 한준에게 특별히 주문했지만...
한준은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방향기의 계획은 이것저것 모두 불발 不發로 그치고 말았다.
하여튼 젊은 여자들의 촉감은 무섭다.
함지박 속의 녹색 과자를 발견하고는 한준이 얼른 녹색 원형 과자를 오른손으로 집어서 향기에게 권하였다.
“자~ 향기 군사님, 여기 맛있는 과자가 있네요”
그런데, 향기의 반응이 차갑다.
“으응, 됐어”
시큰둥한 향기의 대답에 뻘쭘해진 한준, 혼주가 가까이 있으니 주위에 보는 눈들이 많다.
함지박에서 집어 든 과자를 도로 함지박에 넣을 수는 없다.
하는 수 없이 향기에게 거절당한, 손에 든 과자를 제 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낙타젖을 오랜 시간 공들여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 녹색 과자는 달고 부드러워 영양가 높은 귀한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한준에게는 아니었다.
입 안에 과자를 넣는 그 순간 모래를 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자를 억지로 씹어 목 안쪽으로 욱여넣었다.
침마저 나오지 않아, 과자 부스러기가 목젖에 걸리면서 기도 氣道를 자극하여 재채기가 터져 나온다. 마유주를 서너 모금 마셔가며 겨우 삼켰다.
한준은 태어나서 이토록 맛없는 음식은 처음이다.
입에 한 숟가락 퍼 넣으면 입속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까칠한 노란 조밥이나, 찰기 없는 텁텁한 보리밥이 먹기에 훨씬 낫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자고이래 自古以來로
음식이란 먼저 눈으로 보고 식욕을 돋구어, 코로 음식의 향취를 느끼며, 입속에서 치아와 혀를 놀려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먹는 것인데,
식욕이 생기기 전에 의무적으로 억지로 입속에 집어넣으면, 맛이고 향이고 느낄 수가 없다.
입안과 목에 오히려 고통을 주는 위험한 이물질 異物質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인간의 입에 맞는 찰진 곡식은 무엇인가?
동양인에게는 최고의 음식이 영양가 높은 완전식품 ‘쌀’이다.
밀과 보리는 기름기가 적어 씹으면 텁텁한 질감을 주는 음식재료이다.
그러니 생선이나 육류가 가미 加味 되지 않으면 먹기에 거칠고 맛이 없다, 더구나 근기 根氣도 없다.
기름기가 없으니 빨리 소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야외 활동량이 많은 고대의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은 음식 재료들이다.
쌀에 비하여 맛이나 영양가나 가성비 可成比가 상당히 낮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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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