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아파트는 한국에서만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나 역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거주하는 아파트가 무슨 장단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아파트에 대한 논문과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참고문헌에 소개된 169편의 논문과 27편의 보고서 저자들이 아파트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일조와 조망)
한국인의 뿌리 깊은 남향 선호는 아파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는 남향이다. 남향은 난방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 거주민들은 낮에 밖에서 활동한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동향이 좋을 수 있고,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늦게까지 해가 들어오는 서향이 좋을 수도 있다.
한편, 아파트 조망권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대법원에서 인공물에 의해 생기는 조망은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망 좋은 아파트 앞에 새로운 건물이 생기더라도 항의해봐야 소용이 없다.
(실내공기)
실내공기는 바깥공기보다 오염도가 2~5배 높다. 실내공기는 가구나 원목바닥의 재료, 벽지나 장판의 곰팡이, 욕실 세척제, 카펫과 소파의 곰팡이와 먼지, 음식물 조리 등에 의해 발생한다. 실내공기 오염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후드를 사용하고 환기를 자주 시켜주는 것이 좋다.
신축 아파트의 새집 증후군은 아파트를 지을 때 생기는 유해한 화학제품 등이 강화된 단열기준에 의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새집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파트 신축 또는 리모델링 후 환기(플러시 아웃)를 시켜주거나 보일러를 틀어서 집을 뜨겁게 만드는 것(베이크 아웃)이 좋다. 건설사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플러시 아웃을 선호한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베이크 아웃을 3회 반복해 주는 것이 새집 증후군 제거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층간소음)
아파트 층간소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선, 건설사들이 비용 문제 때문에 층간 두께를 얇게 만들기 때문이다. 층간 두께를 30mm만 늘려도 층간소음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요즘에는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흡음재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 흡음재 사용도 층간소음 완화에 도움이 된다.
비용절감을 위한 벽식 구조 설계도 아파트 소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벽식 구조는 (액자 모양의) 보 없이 벽이 천장을 떠받치는 형태의 건축 구조다. 우리나라의 90% 가량이 벽식 구조라고 한다. 벽식 구조는 이웃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벽을 통해 잘 전달된다.
소음 전달이 가장 안 되는 아파트는 라멘(기둥)식 구조다. 라멘 구조는 수직으로 세운 기둥이 액자처럼 생긴 보를 지탱하는 구조다. 라멘 구조 아파트는 벽식 구조에 비해 비용이 22% 정도 더 든다고 한다. 하지만 리모델링이 쉬워 벽식구조보다 수명이 훨씬 길다. 한국에 라멘 구조 아파트는 거의 없다.
무량판 구조는 라멘 구조와 비슷하지만 액자처럼 생긴 보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무량판 아파트도 소음이 잘 전달되지 않고 리모델링이 비교적 쉽다. 벽식 구조보다 5% 정도 공사비가 높지만 라멘 구조보다는 비용이 덜 든다. 한국 아파트의 10% 정도가 무량판 아파트라고 한다. 가끔 무량판 아파트가 부실 공사의 원인인 것처럼 뉴스에 나오지만, 오해다. 철근 콘크리트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건축재료다. 철근만 제대로 사용하고 하중을 규정대로 유지한다면 어느 구조의 아파트건 간에 안전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특히 198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만든 아파트들은 내진 설계가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지진이 나더라도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붕괴될 위험은 없다.
(난방)
뜨거운 공기는 위로 가고 차가운 공기는 가라앉는다. 이런 이치로 1층의 난방 에너지는 평균보다 50% 가량 에너지를 더 사용하고 최상층은 평균보다 20% 정도 에너지를 더 사용하는 반면, 중층 이상은 20% 덜 사용한다. 중층 이하의 에너지 비용은 평균과 비슷하다.
아파트는 이웃과 에너지를 공유한다. 난방을 하지 않아도 인접 세대가 20도라면 우리 집 온도는 15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전에 ‘난방열사’ 김부선이 아파트 관리비 문제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을 때 많은 세대가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적이 있다. 이는 다른 집의 에너지를 공짜로 가져다 쓴 행위로서 이웃 간에 지켜야 할 도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혁신적인 부엌, 상하수도, 재건축/리모델링 등 과감히 생략)
(추신)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아파트 속 과학)에 나와 있습니다. 책만큼 꼼꼼하게 강의를 해 주신 것 같은데, 이 짧은 글로 강의 내용을 다 옮기기는 어렵겠네요. 어쨌든 아파트는 우리의 삶을 좀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발명된 매우 효율적인 건축물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고팔기 위한 아파트보다는 살기 위한 아파트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파트는 앞으로도 더욱 큰 발전을 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첫댓글 강의를 열심히 해주신 강사님 덕분에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매번 심사숙고해서 강사님초빙에 애써주신 노진호 부회장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