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世孫인 이청소는 高麗時代에 平章事를 지냈고, 李應松(이응송)은 判樞密院事(판추밀원사)를 지냈으며 李延壽(이연)는 1216年右承宣(우승선),1221年判吏部事(판리부사),이듬해 守太保柱國(수태보주국)을 거쳐 門下侍中이 되었다.
朝鮮時代의 李舒(이서)는 1357年文科에 及弟하여 1392年 朝鮮開國功臣 3等으로 安平君에 封해지고 太宗 卽位 後 右政丞으로 府院君에 進封(진봉)되고 誥命使(고명사)로 明나라에 다녀온 뒤 領議政에 올라 耆老所(기로소)에 들어갔다. 宣祖때의 李宗張(이종장)은 1569年武科重試에 及弟 1592年 壬辰倭亂 때 忠州牧使로서 都元帥 申砬의 助防將(조방장)이 되어 參戰, 殉節하므로써 兵曺判書에 追贈되었고, 洪平君에 封해졌다. 李希建(이희건)은 武科에 及弟하여 1624年 龍川府使(용천부사)로서 李适의亂을 討平한 功으로 振武功臣(진무공신) 2等으로 洪陽君에 封해졌다.그는 1627年 丁卯胡亂 때 戰死, 左贊成에 追贈되었고 龍川의 忠烈祠와 安州의 忠愍祠에 祭享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