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탑리리 오층석탑 /국보
조문국 유적지
2026년 5월 18일
조문국 유적지
-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2년 (185)조에는
“파진찬(波珍飡) 구도(仇道)와 일길찬(一吉飡)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소문국을 공벌(攻伐)했다.”고 기록.
『삼국사기』 지리지에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소문국(召文國)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고 지금의 의성부(義城府)이니 소속 현은 네 곳이다.”라고 기록.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도 의성에는 소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소문국의 옛 터가 경북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라 기록.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내용을 가지고 옴)
召...부를 소/조, 지명에는 원음 '조'로 쓴다.(현대활용옥편/동아출판사, 1993년 1월 7쇄 발행본)
조문국 유적지는 처음은 아니지만 박물관에 들으고 유적지를 걷기는 처음이다.
새벽 안개가 낀 유적지 작약밭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했다.
탑리리에 있는 오층석탑을 또 보고 박물관(금성면 초전리)이 9시에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유물을 보았다.
박물관 옆에 민속박물관이 있다. 안개가 걷힌 유적지를 다시 걸었다.
(사진은 폰카와 디카)
1호 고분 /전(傳) 경덕왕릉
경덕왕(景德王, 출생 미상~765년/경덕왕 24년), 신라 제35대 왕.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헌영(憲英). 효성왕이 자식이 없어 739년에 태자로 책봉, 742년 왕위에 오름.
강대해진 귀족세력을 견제하고 전제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정치개혁을 시도, 성공하지 못하고 귀족세력과 정치적 타협을 함.
불교중흥으로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이름.
경덕왕대에 영흥사·굴불사·불국사 등 많은 절을 세웠으며 석굴암도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조문국 박물관
야외
횡혈식 석실분과 고인돌(북방식)
개방 수장고(열린 수장고)
일양 박찬 변호사(1925년~2021년)는 평생 모운 유물 1253점을 조문국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분은 의성 금성면 출신이다.
의성군 여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지역별로 분류하여 보여준다.
긴목 항아리, 다른 지역에 있는 것보다 목이 길다.
열린 수장고와 상시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여러 지역에서 출토한 유물을 열린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대체로 수장고는 닫혀 있지만, 이곳은 열고 모든 것을 보여주니 좋다.
붉은 간토기
칼, 손잡이 문양은 세 잎이다.
금동관(복제, 원물은 국립대구박물관), 금성면 탑리 고분에서 출토
대부주자(주전자)
탑리리 오층석탑 /국보.
높이 9.6m
모전석탑으로 전탑을 모방한 형태이다.
1층 옥신(몸탑) 우주(모서리기둥)와 탱주(버팀기둥)의 배흘림, 주두 위의 좌두, 추녀의 반전 등은 백제계 석탑에 많이 나타나는
목조건축 양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탑은 우리나라 초기 석탑 양식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