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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남는 한 · 미 원자력협정 개정 / 한 · 미 원자력협정 타결 주요 내용 / 한국 42년 만에 우라늄 저농축 빗장 열렸다 · 2015.04.23
"한국, 5년 내 수십 개 핵폭탄 제조 가능" |
미국의 비확산 진영에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 비확산론자인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주변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비확산진영의 비공개회의에서 보고됐다.
퍼거슨 회장은 이전에도 한국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비확산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라 현실성은 낮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한ㆍ미 원자력협정이 타결됨에 따라 양국 국내에서 핵주권론과 비확산론이 충돌하는 상황이라 보고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고서는 원자력협정에서 허용한 한ㆍ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처리) 공동연구가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동북아 정세 변화 속에서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에 직면할 경우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고 밝히고 있다. 북한 핵 고도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억지력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을 경우, 일본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경우 한국이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이 치명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미ㆍ중을 움직이기 위해 한국이 핵무기를 ‘외교적 폭탄’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대응을 명분으로 핵물질을 확보하고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강화하며 미ㆍ중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핵무기에 대한 억지력은 보복공격이 가능한 핵무기만이 가질 수 있기에 국내에서도 북핵에 대한 대응으로 핵보유를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이 있다.
한국은 이미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과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미사일 등 운반체계 기술도 충분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무기 제조 잠재력을 세계 10위권으로 평가하고 있다. 퍼거슨 보고서도 한국이 월성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통해 5년 이내 수십 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98년 비밀 해제된 미국의 외교전문을 보면 70년대 중반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5년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핵우산을 철수한다면 핵무기를 포함해 우리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고 밝혔었다.
보고서는 우경화 하고 있는 일본도 변수로 꼽았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이 핵개발에 나설 경우 군비경쟁이 심화되며 한국도 핵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과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과 공동으로 핵개발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이 반발하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묵인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재정압박을 받는 미국이 북한과 중국의 핵능력 진전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핵개발을 묵인했듯 한ㆍ일의 핵개발을 묵인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최근 개정된 미ㆍ일 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에서도 밝혔듯 미국의 핵우산 제공과 비확산 정책이 공고하기에 보고서의 내용은 '동북아 최악의 핵 군비경쟁 시나리오'로 봐야 한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
- 중앙일보 / 정원엽 기자 2015-05-04 |
한 · 미 원자력협정이 타결됐다. 협상을 2년 연장하며 어렵게 타결한 결과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내용을 챙겨야 할 것인가.
핵심적 내용은 다섯 가지다. 첫째는 협정 유효 기간이 이전(1973~2016년)의 42년에서 향후 20년으로 단축된 것이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원자력 산업의 환경이 급속히 발전한 나라는 없다. 이젠 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협정 기간이 길면 급변하는 원자력 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둘째는 안정적인 우라늄 공급의 길을 확보한 것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상용원자로의 연료로 쓰이는 저농축 우라늄의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이 돕겠다는 보증을 한 셈이다. 또한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 하고자 할 때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양국의 합의 아래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진행할 수 있는 추진 경로도 마련됐다. 한국이 당장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않지만 장래에 필요하면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그 다음에 눈여겨볼 대목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고 폐기물의 부피를 줄일 수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의 한 · 미 간 공동연구를 계속 진행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2016년이면 원자로시설 내에 임시 보관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 용량이 한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 양을 수십 분의 일로 줄여야 하는데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이 완성되면 가능할 것으로 과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직접 뽑지 않고 혼합물질로 추출하는 게 파이로 프로세싱 연구의 목표다. 개발에 성공하면 폐기물 양을 감축하면서 독성도 줄이고, 나중에 고속로가 개발되면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미국 일각에서 비록 혼합물질로 추출한다고 해도 미래에 또 다른 기술이 발전되면 혼합물에서 플루토늄만을 따로 추출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반대가 없지 않았다. 이로 인한 진통으로 협상이 2년을 더 끌었으며, 결국 미국은 한국과 파이로 프로세싱 연구를 계속 수행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번 협정 타결이 가능했던 배경은 한국이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또 장래에 파이로 프로세싱의 실증시설을 건설할 때 약 2조원이 드는데, 한국이 그 절반을 부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 미국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국도 폐기물 양이 많아 부피를 줄여야 하는 처지인데 한국은 기술력도 있고 인재도 있고 돈도 낼 수 있는 나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된 것이다. 한국이 그만큼 국력이 커졌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지 못살던 시절이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넷째는 한국의 원자력 수출이 보다 자유롭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한 나라다. 이전의 협정에 의하면 미국산 원전 부품이 들어갈 경우 건별로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이번에 일괄 동의 방식으로 처리해 수출 절차가 크게 간소화됐고 시간도 단축하게 됐다. 최근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한 아리랑 인공위성 3A호에도 미국산 부품이 들어가 있었다. 이로 인해 중국 로켓을 빌려 발사하면 돈도 적게 들지만 미국이 원치 않기 때문에 러시아 로켓을 빌려 우리의 위성을 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처럼 원자력이나 우주 분야는 군사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민감한 규제로 얽혀 있는 게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의 원자력 플랜트 해외 수출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동의한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적 실익도 적지 않다. 미국은 79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 이후 지금까지 단 1기의 상용 원자로를 건설하지 않은 나라다. 이 때문에 사실은 원자력 산업 전반이 정체돼 있는 국가다. 한국의 역동적 원자력 산업 인력과 기술력은 미국으로서도 매력적인 원자력 산업 파트너인 셈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국력과 역량이 커져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비감한 국제 정치의 현실이 또 한 번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다섯째는 상설 고위급위원회를 신설한 점이다. 한국의 외교부 차관과 미국의 에너지부 부장관이 공동의장이 되어 매년 정례회의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등 원자력 협력의 이행 과정을 점검하고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한 · 미 원자력협정의 미국 측 협상 파트너였던 아인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가장 큰 쟁점이었던 파이로 프로세싱 공동연구에 유보적이었다. 파이로 프로세싱 공동연구가 플루토늄을 직접 추출하지 않고 혼합물로 추출하니 핵무기 비확산에 가장 알맞다는 우리 측 주장에 대해 그는 “미국의 매파 격인 핵 과학자들은 혼합물질도 분리해 플루토늄을 몰래 추출할 수 있다는 입장” 이라며 선을 그었다. 따라서 이번 협정 타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부에서 언제든지 딴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한 · 미 원자력협정은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미국이 엉뚱하게 딴지를 걸지 않도록 우리 정부도 협정 이행 사항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 중앙일보 / 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 2015-04-24 | [사설] 아쉬움 남는 한 · 미 원자력협정 개정 |
1973년 체결된 한 · 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새 협정으로 한국은 원자력 연구와 수출에서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 미국의 동의하에 저농축 우라늄을 개발할 길이 열렸고, 까다로웠던 수출입 인허가도 간소화돼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해소됐다. 연구개발 차원이긴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 (건식재처리)의 전 단계인 전해환원 권한을 확보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선 체면치레 이상의 진전을 얻어 내지 못했다. 새 협정에서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빠졌지만 한국의 농축 · 재처리는 미국과 고위급 협정을 통해 합의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원자력 이용 규모가 세계 5위인 한국이 여전히 독자적인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점에서 새 협정은 한계가 분명하다. ‘새 협정은 선진적이고 호혜적’ 이란 정부의 자랑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버리면 폐기물이고, 재처리하면 연료다. 재처리 길만 터주면 핵연료를 얻을 수 있는데도 우라늄을 사서 쓰는 건 불합리하다. 현재 세계 농축 우라늄 시장은 공급 초과이지만 시장 상황이 급변해 우리가 우라늄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현재 국내 원전에는 폐연료봉 1500만 개가 쌓였고, 매년 700t이 추가 발생하고 있다. 고리원전의 폐연료봉은 연말에 포화상태가 된다. 미국이 핵폐기물 관리기술을 이전해 주기로 했다지만 코앞에 닥친 핵폐기물 대란 우려를 해소하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기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이를 의식해 너무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은 88년 전범국가 일본에 농축과 재처리를 모두 허용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거부하고 핵무장을 강행한 인도에도 포괄적으로 허용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미국의 이런 이중잣대를 집요하게 지적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할지 모른다’ 는 근거 없는 우려를 불식시켰어야 했다.
한국은 73년 원자력협정 체결 당시 원전은커녕 초보적 기술도 없었다. 지금은 23기의 원전으로 전력의 3분의 1을 충당한다. 원전 7기를 건설 중이며 중동에 수출까지 하는 원자력 강국이다. 또한 91년 남북 비핵화선언 이후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원칙을 지켜왔다. 따라서 미국이 핵 이용 모범국이자 동맹국인 한국에 농축 · 재처리 포괄 금지방침을 고수한 건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다행히 새 협정은 한 · 미 간에 고위급 협의체를 신설해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기로 했다. 그동안 농축과 재처리에 대해 발언 기회조차 봉쇄돼 온 우리가 미국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 만큼 새 협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는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농축 · 재처리를 포함한 우리의 ‘핵 국익’ 확보를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 중앙일보 / [사설] 2015-04-23 | 박 대통령 강조한 '핵연료 재처리’ 권한은 못 얻었다 |
|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오른쪽)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에 가서명했다. 1973년 후 42년 만에 마련된 새 협정에서는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명시됐다. [김상선 기자] |
한국 42년 만에 우라늄 저농축 빗장 열렸다
농축 · 재처리 분야 … 미국, 비핵화 내세워 재처리 막아핵무기 원료 플루토늄 추출 우려 … 제3국 위탁 재처리 길은 열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길을 실낱같이 열어뒀다. 하지만 빗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한 · 미 양국은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앞으로 ‘합의할’ 사항으로 남겨놨다. 그래서 미국의 동의가 없을 경우 농축과 재처리는 불가능하다. 다만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 조항’ 은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농축과 재처리는 정부가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 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미 하원의원단을 만나 “새 정부의 현안들 중 하나가 한 · 미 원자력 협정” 이라며 “핵폐기물 처리가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 라고 했다.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달라는 의미였다. 농축은 전량 수입하고 있는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고 재처리는 쌓여가는 핵폐기물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선 일본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은 1988년 맺은 미 · 일 원자력 협정에 따라 포괄적 동의를 얻어 20% 미만 저농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핵 비확산 정책이 최우선 고려 사항인 미국은 끝내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신성호 교수는 “한국에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해주면 다른 국가에도 이를 허용해줘야 하고 결국 핵 확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이번 원자력 협정에선 양국 합의하에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선에서 농축 문제를 절충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고농축과 저농축의 기준을 20%로 잡고 있다. 그런 만큼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 설치될 한 · 미 고위급 위원회에서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여전히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 제3국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내 재처리하는 방법은 허용됐다. 원전부지 내 수조에 쌓여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간접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마련된 셈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연구개발 분야에선 다소 빗장이 열렸다.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남은 핵연료를 이용한 조사후시험(照射後試驗)의 경우 정해진 시설에서 자율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연구를 할 때마다 건건이 승인을 받거나 1~5년 단위로 동의를 구해야 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에서는 전해환원(電解還元) 기술 개발을 허용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이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재처리(reprocessing)는 사용한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 다시 원전 연료로 쓰는 기술이다. 하지만 발전용 우라늄과 달리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은 이 때문에 핵 후발국들이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막아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재처리와 달리 순수한 플루토늄을 뽑아내지 않는다. 미국이 전해환원까지만 기술 개발을 허용한 건 이런 점이 반영됐다. 전해환원은 전체 공정(전처리-전해환원-전해정련-전해제련-폐기물 처리)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한다.
- 중앙일보 / 글=김한별·안효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2015-04-23 | |
한 · 미 원자력협정 타결 주요 내용
미국과 합의 땐 할 수 있어 … 핵연료 재활용 연구 가능농축 · 재처리는 사실상 금지 한 · 미 원자력협정 협상이 22일 타결됐다. 1973년 이후 42년 만에 마련된 새 협정에는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명시됐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는 이날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에 가서명했다. 협정 유효기간은 20년으로 단축됐다. 핵심 쟁점이었던 농축과 재처리의 명시적 금지,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농축과 재처리를 하기 위해선 미국과 고위급 협의를 통해 합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독자 농축이나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을 막은 셈이다. 다만 새 협정은 향후 한 · 미가 합의할 경우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 협정에는 농축 관련 내용이 없었다.
사용후 핵연료의 연구 분야에선 자율성을 일부 확보했다. 전해환원(사용후 핵연료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들을 제거하는 과정) 등 형상 · 내용 변경을 할 때 한국이 현재 보유한 시설에서 미국의 별도 동의 없이 연구개발할 수 있게 규정했다.
농축 및 재처리와 관련된 협의를 위해 양측은 고위급 위원회를 신설, 매년 정례회의를 열기로 했다. 한국에선 외교부 차관, 미국에선 에너지부 부장관이 참여하는 차관급 협의체다.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와 부품 등을 제3국으로 수출할 때도 건건이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포괄적 장기 동의를 받는 것으로 절차를 간소화했다.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40여 년 전에 체결된 현행 협정을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협정으로 대체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고 민경욱 대변인이 전했다.
- 중앙일보 / 유지혜·안효성 기자 2015-04-23
암 진단용 방사성물질 국내서도 생산 가능
원자력 산업 분야 … 비상시 원전 연료 상호 지원키로 한국의 원전 수출 과정이 간소화되고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22일 한 · 미 양국이 가서명한 원자력협정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새 협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들여온 원자력 장비 · 부품을 한국 업체가 가공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경우 미국의 별도 동의가 필요 없다. 제3국이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상호 체결한 경우에 한해서다. 지금까지는 원전 수출을 할 모든 경우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건건이 받아야 했다. 새 협정은 한 · 미 양국이 서로 수출입과 관련한 인허가를 신속히 발급하도록 하는 규정도 적시했다. 협상에 관여한 정부 당국자는 “획기적” 이라며 “수출 상대국의 신뢰를 받고 안정적이라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게 돼 원전 수출의 큰 애로가 없어졌다” 고 말했다.
원전 수출 증진을 위해 한 · 미 양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선 한국 원자력 수출업체가 미국 측 동의 없이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물품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또 핵물질이나 장비·부품·기술 등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원전 수출을 위한 투자와 합작회사 설립을 촉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연료 수급 비상상황에 대비해 한·미가 서로 연료 공급 지원을 협의할 수 있는 길도 마련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고자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 노력한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고 말했다. 핵물질의 ▶저장 ▶수송 ▶처분 등에 대한 기술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핵폐기물 처리기술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미국 측의 기술을 이전받을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원전 연료의 수급이 불안해질 경우 상호 지원도 명문화했다.
특히 미국산 우라늄을 사용해 암 진단에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인 몰리브덴 99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현재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한 몰리브덴 99를 국내에서 생산할 경우 진단비용이 낮아지고 공급 안정성이 높아진다. 정부 당국자는 “(몰리브덴 99를) 국내에서 전량 생산해 수급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도 수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고 설명했다.
- 중앙일보 / 전수진 기자 2015-04-23 | "핵연료 연구 큰 그림 그리게 돼 … 원전 수주도 호재" |
"핵연료 연구 큰 그림 그리게 돼 … 원전 수주도 호재"
어떤 성과 얻었나 … 한국형 원전 수출 때 절차 간소화“핵연료 직접 깨서 만져보게 돼 … 세계 선도할 수 있는 기회 얻어”
뼈대는 잘 만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디에, 얼마나 살을 더 붙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42년 만에 개정된 새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에 더 큰 외교 과제를 남겼다. 22일 타결된 새 원자력협정에서 정부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주권과 권리의 확보다. 서문에 ‘한 · 미 양국은 평화적 목적으로 원자력을 연구 · 생산 · 이용함에 있어 빼앗을 수 없는(inalienable) 권리를 갖는다’ ‘양국 간 원자력 협력 확대에 있어 주권의 침해가 없어야 한다’ 고 규정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이 원자력협정을 맺은 나라들 중 처음으로 연례 고위급위원회를 한국과 가동하기로 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저농축과 재처리 연구 가능성 등을 협의 · 합의하기로 했다는 부분도 과거와 같은 일방적 협정이 아님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농축에 있어선 미래에 대비해 새로운 경로를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협의’ 가 아니라 ‘합의’ 라는 점이다. 미국이 동의해주지 않는 한 한국이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와 농축을 추진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농축 ·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 규정을 넣지 않는 것으로 한국의 체면은 살렸지만, 미국이 단계마다 제동을 걸 수 있는 새로운 제약 구조도 동시에 명문화한 것이다.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지금이야 논의한 뒤 실제로 우리의 권리를 이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합의라는 단어를 쓴 것일 수 있지만, 20년의 기간 동안 외교적 상황 등이 변하면 양측이 각기 다른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 고 지적했다.
최소 30년의 유효기간을 요구해왔던 미국으로부터 20년이라는 양보를 받아낸 건 성과다. 한국의 기술 발전 정도를 상대적으로 단기간 안에 협정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 미가 아이오와에서 공동으로 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모든 과정을 거쳐도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은 나오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 것도 비확산 원칙을 주장하는 미국을 상대로 기간 단축을 설득하는 데 주효했다고 한다.
새 협정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소 핵연료주기기술개발 본부장은 “그간은 ‘공동 결정(joint determination)’ 조항에 묶여 5년간 무엇을 할지 미리 동의를 받고 그 범위 안에서만 연구할 수 있었다” 며 “새 협정으로 앞으로는 해보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고 말했다. 임만성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이번 협정이 국내 원자력 정책의 ‘전환점’ 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은 다 말뿐이었지, 미국과의 협정에 가로막혀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연구가 합법화돼 진짜 ‘큰 그림’ 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손도 못 대게 하던 사용후 핵연료를 깨서 만져볼 수 있게 한 게 중요하다” 고 말했다. “한번 깨보면 관련 기술을 알 수 있고 노하우도 얻을 수 있다. 다음 단계(전해정련) 기술은 미국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이라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일본과 같이 핵연료를 재처리(플루토늄 추출)하거나 파이로프로세싱 개발의 전체 과정을 보장받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을 예로 들며 ‘우리한테만 편파적이지 않으냐’ 고 하는 것은 국제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다” 고 했다.
산업계도 까다로웠던 원전 수출 절차가 대폭 생략된 것을 환영하고 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미국산 원자력 장비 · 부품이 제3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공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고 말했다.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 직 · 간접 수출 효과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할 당시 직접적인 수출 효과로 약 200억 달러, 향후 60년간 원전 연료비 · 운영 · 정비 등에 추가로 약 200억 달러를 수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중형차 200만 대 수출 효과와 맞먹는 금액이다. 채규남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수출진흥과장은 “제3국에 수출할 때 건건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앞으로는 포괄적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를 의미한다. 재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섞여 있다. 원전용 우라늄과 달리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도 쓸 수 있다.
◆파이로프로세싱 = 사용후 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해 소듐냉각고속로(SFR)에서 ‘재활용’ 가능한 핵연료 물질을 뽑아내는 기술. 습식 재처리와 달리 순수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어 핵무기를 만들기 어렵다. 실용화되면 사용후 핵연료를 직접 처분하는 것에 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 =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원칙을 가리킨다. 미국은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 2013년 대만과의 원자력 협정에 ‘골드 스탠더드’를 명시했다. 한국과의 새 협정에는 그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 중앙일보 / 김한별·유지혜·박유미 기자 2015-04-23 | 이르면 내달 협정문 정식 서명 … 국회 동의 필요한지 논란 예상 |
이르면 내달 협정문 정식 서명
남은 절차 · 변수는 … 미국은 상 · 하원서 비준 받아야공화당 강경파 반응이 관건 … 정부 “내년 3월 전에 발효될 것” 4년 6개월간 한 · 미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협정이 발효되려면 정식 서명을 해야 하고, 한 · 미 양국이 의회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협정에 가서명 했을 뿐이다. 정식 서명은 가서명 이후 일반적으로 1∼2개월 뒤에 이뤄진다. 정부는 가서명 이후 한글 번역본을 만들고 법제처의 검토를 거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협정문에 대해 국회의 동의나 비준이 필요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야당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협정문이 발효되기 전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한지 여부는 법제처 등 관계 부처의 법적 검토 결과에 따라 정해질 예정” 이라며 “정부는 비준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식 서명으로 협정문 정본이 최종 확정되는 시점에 국회에 상세하게 설명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법제처 검토에 이어 차관회의를 열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대통령 재가를 받아 국내 절차는 마무리된다.
미국 측 절차는 한국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서명 이후 미 국무부와 에너지부 장관의 검토 서한 발송, 핵확산 평가보고서(NPAS) 작성,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메모 송부,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행정부 내부의 이런 절차를 통과한 협정문은 의회에 전달된다. 미국의 경우 원자력 협정문은 의회 비준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상 · 하원의 비준을 받으려면 ‘연속 회기 90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의회가 열리는 날짜를 기준으로 연속 90일간 의회에서 반대 또는 불승인 결의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데 통상 반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서명한 협정안에 대해 상 ·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인 공화당의 강경파 의원들이 ‘20% 미만 우라늄 농축’ 등을 트집 잡을 수도 있다.
양국이 국내 절차를 마치면 각서를 교환하고 협정이 공식 발효된다. 정부 당국자는 “기존 협정의 유효기간인 내년 3월 이전에 새 협정이 발효될 것” 이라고 말했다.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협정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한 · 미 양국이 행정약정 체결 과정도 거쳐야 한다. 40여 쪽 분량인 협정문은 정식 서명 때까지 양국의 사전 양해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 협정문 전문은 한 · 미 원자력협력의 틀과 원칙을 규정했고, 본문은 21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 중앙일보 / 장세정 기자 2015-0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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