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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행복해지는 비결”에 대한 조건으로 아홉 가지를 보았습니다.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좋은 날”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둘째,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는다. 셋째,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어라. 비실비실 걷지 마라. 넷째,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 다섯째,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서 행운의 꽃이 핀다. 여섯째,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도 나를 향해 축복해준다. 일곱째,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이 밝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여덟째, 힘들다고 고민하지 마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와 그 행하신 모든 일을 높임으로 영광돌리는 것이 찬양입니다. 또한, 찬송은 성도된 우리에게 삶 속에서의 용기와 희망,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위로가 됩니다. 본문 시 150편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찬송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선포하는 겁니다. 시 150편은 여섯 절에 불과한 매우 짧은 시편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벅차오르는 감격 속에서, 일관되게 환희의 찬양을 드리며, 우주와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환희와 열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토록 촉구하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그러기에, 본 시편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구를 찬양하며, 어디서 찬양해야 하는지, 왜 그리고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 지를 제시하되, 간결한 명령형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피조물된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호흡이 있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그 호흡이 다하도록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시편을 시작하는 제 1편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제 1편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늘 율법을 묵상하며, 말씀에 순종할 것을 잔잔히 그러나 엄숙히 가르친다면, 본시는 우주적인 하나님 찬양 속에서, 환희의 축제로 끝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활 속에서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점점 뒤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소리가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에 황색등이 켜졌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조만간 적색등이 켜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제껏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돌아보며, 우리가 살아온 삶의 자리 속에서 하나님의 자취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 회복을 위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은혜가 임하고 신앙이 회복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 - 2절을 보시면,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 150편에는 “찬양”이라는 단어가 11번 나옵니다. 본문의 시작을 보시면,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되, 성소에서 하라고 합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 거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광야에서는 성막을 건설케 하셨고,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을 건축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곧, 세상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유일신”이 아닌 “범신”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범신론”입니다. 성전의 성소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케 하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찬양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에서 찬양하라는 것으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로 받아야 합니다. 또, 시인은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는, 세상의 어떤 공간이든지, 모든 공간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때문에 찬양”하며,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성도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위대하고 광대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자리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안목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역사에 감탄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이었습니다. 그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파랬고, 신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존 글렌”은 달랐습니다. 그는, “우주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가가린은 1934년생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34세였던 1968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존 글렌은 1921년생이었지만, 77세이던 1998년 10월 29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를 타고 다시 한 번, 우주로 올라가 세계 최고령 우주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95세였던 2016년에 사망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시 113: 3을 보시면,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교회뿐 아니라,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거리에서도, 침실에서도,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를 구별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그 찬양을 들으시는 곳이 바로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찬양을 받지 않으신다면, 그곳은 진정한 의미의 예배당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면, 거기는 성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관 하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사람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특별하고 선한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었다 할지라도,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고 스스로를 추켜세울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신은 단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종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며, 열정을 다해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 - 5절을 보시면,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인은 본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는, 찬양하는 자들의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해 제한이 없는 최상의 방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의 위대성을 온전히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모든 노력을 다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성에 걸맞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세속적인 음악에서도 모든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포함되어야 그 섬세함과 웅장함이 드러나는 데 하물며,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적 은사로 만들어 낸 세상의 모든 악기가 다 동원되고 포함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본문에서, 단순히 찬양에 필요한 악기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찬양을 드리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자의 자세를 보면, 우리에게 만 입이 있다면 그 입을 다 동원해서라도 찬양해야 하는 옳은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통치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을 송축하며 높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흥도, 아무런 감격도, 기쁨도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예배를 드린다면, 그만큼 우리 안에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열정과 기쁨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 51: 10 - 12을 보시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고백하는 다윗과 같이, 우리의 신앙을 재점검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세우며, 언제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오자 자신의 바지가 벗겨지는 것도 모른 체,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힘껏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악기만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누리는 모든 지위와 체면을 버리고, 오직 마음 가득한 기쁨으로 춤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도, 날마다 꺼지지 않는 찬양과 찬미의 열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큰 소리 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처럼 최고의 찬양, 온 세상을 뒤덮을 최상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면, 세속적인 악기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고, 최고로 찬양을 드려도 하나님을 찬양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한 이런 찬양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6절을 보시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호흡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호흡이 있는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또, 모든 생명체에게 호흡이 필수이듯, 찬양도 필수이고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할 때만 부르는 찬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인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무시간적이어서 영원하기에 시공간의 제한 없이 무한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위대성을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본문에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호흡을 주신 분 즉, 생명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 43: 21을 보시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호흡이 있는 사람이나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람 뿐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도 땅에 기어 다니는 짐승까지도 호흡이 있는 존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본문은 마치 결론과 같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치며 찬양을 마무리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임과 동시에,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온 땅의 민족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절대이심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듯이, 우리도 오직 찬송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선포하며 예배자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은 성도의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시 146: 2을 보시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순간마다, 우리의 호흡이 계속되는 모든 날 속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뜨거운 열정과 환희로 높이고 송축하는 성도로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