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 4,17(12).17(14)-17(16).17(23)-17(25); 마태 7,7-12
+ 찬미 예수님
오늘 제1독서에서 에스테르기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에스테르기의 배경은 유다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기원전 5세기인데요, 유다인 ‘에스테르’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라는 이름의 재상이 유다인을 몰살시키려 계획을 세우자, 에스테르가 이를 알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마침내 유다인들이 하만의 계략을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오늘 독서는 하만의 계략으로 유다인들이 몰살될 처지에 놓였을 때 에스테르가 바친 기도의 일부입니다. 이 기도의 특징은 첫째, 하느님을 계속해서 ‘주님’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에스테르가 자신과 자기 민족을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사순 특강 때에 우리가 하느님을 ‘주님’이라 부를 때, 우리가 주님의 것, 주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로써 에스테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주님의 것임을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셋째, 에스테르는 자신이 철저히 혼자이고, 하느님 말고는 도울 분이 계시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에스테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이 기도에 세 가지 특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맺습니다.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에스테르의 기도 안에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 말씀에 희망을 걸고 열심히 청해 본 결과, 과연 기도가 이루어진 때도 있고,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낙담한 때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청하면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가 아니라 “누구든지”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이처럼 간절히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처럼 간절히 원해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우심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 말씀은 엊그제 주님의 기도에 대한 말씀과 연결된다 하겠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것이나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기도의 내용이고, 진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와 마찬가지로 청원 기도도 하느님께 대한 응답인데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잘 모르시는 것을 우리가 가르쳐 드리는 게 기도라고 착각하고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께 간절히 청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우리 자신도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청원 기도는 또한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에스테르가 간절히 기도드린 후에 그것을 실천했듯, 우리는 주님의 기도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한 후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아버지의 의로우심이 승리하시도록,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우리는 이해를, 관용을, 존중을, 충실함을, 공감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남에게 이해와 관용과 존중과 충실함과 공감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남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법과 진실마저 왜곡하는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의로우심이 이루어지는 나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희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 3세기 경, 두라-에우로포스 회당, 시리아
출처: Esther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