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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산성이 있어서 산성마을이 되었다.
주변 산줄기가 성벽처럼 마을을 둘러싸서 산성마을이 되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현재 자료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근거 ② 군현 경계의 전략적 위치
이곳은 예천·상주·의성의 경계에 가까우며, 옛 용궁현·다인현·상주 지역이 맞닿던 곳입니다. 예천군 자료에서는 이 일대를 견아상입(犬牙相入) 지역이라고 설명합니다.
견(犬): 개 견
아(牙): 어금니 아
상(相): 서로 상
입(入): 들 입
곧 ‘개 이빨처럼 행정구역이 서로 맞물려 들어간 곳’이라는 뜻입니다.
풍신리 남쪽 산지는 낙동강 유역의 풍양평야와 상주·의성 방면을 함께 살필 수 있는 경계 지대입니다. 따라서 감시·방어 목적의 소규모 보루(堡壘)나 산성이 들어설 만한 입지입니다.
보(堡): 작은 성 보
루(壘): 진 루
속뜻: 적을 감시하거나 길목을 지키기 위해 만든 비교적 작은 방어시설
다만 이것은 지형과 위치를 근거로 한 추측입니다. 실제 성벽의 축조 방식과 유물이 확인되어야 군사시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항
풍신리 산성터에 관해서는 다음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성벽이 흙으로 된 토성(土城)인지 돌로 된 석성(石城)인지
성벽의 둘레와 높이
문지(門址)·건물지·우물터 등의 내부시설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가운데 어느 시기에 축성되었는지
출토된 토기나 기와가 있는지
정식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는지
특정한 전투나 인물과 관련되는지
2005년 예천군과 대구대학교박물관이 제작한 《예천군 문화유적분포지도(文化遺蹟分布地圖)》가 풍양면의 비지정 유적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입니다. 다만 공개 검색자료에서는 풍신리 산성의 세부 도면·좌표·성벽 조사내용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예천군 문화유적분포지도》 발간정보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풍신리 산성마을 뒤편에 산성터가 전한다’고 표현해야 하며, ‘삼국시대에 축성된 산성’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4. 풍양면과 가까우나 풍양면 소속이 아닌 원산성
풍양면 삼강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유명한 원산성(圓山城) 또는 **비룡산성(飛龍山城)**이 있습니다.
원(圓): 둥글 원
산(山): 뫼 산
성(城): 재 성
속뜻: 둥근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
그러나 원산성의 행정구역은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비룡산 일대입니다. 풍양면 삼강리에서 접근하는 등산로와 탐방로가 있어 풍양면 산성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엄밀하게는 풍양면 소재 산성이 아닙니다.
원산성은 내성천·낙동강의 합류지와 회룡포 일대를 조망하는 산성으로, 봉수대와 성벽 흔적이 알려져 있습니다. 풍양면 삼강나루와 낙동강 교통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한 인접 방어시설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분해야 정확합니다.
유적행정구역풍양면과의 관계
| 풍신리 산성터 | 풍양면 풍신2리 | 풍양면 내부의 산성 관련 지명·전승 |
| 원산성·비룡산성 | 용궁면 대은리 | 삼강리와 가깝지만 풍양면 밖의 산성 |
역사적 해석
풍양면은 낙동강과 내성천·금천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남쪽으로는 상주·의성, 북서쪽으로는 용궁·문경, 북동쪽으로는 예천·안동 방면으로 연결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어체계를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서북쪽: 용궁면 원산성·비룡산성
낙동강 합류부: 삼강나루
남쪽 산지: 풍신리 산성터
주요 기능: 나루·평야·육상 교통로 감시
이와 같은 배치가 하나의 연계 방어망이었다는 해석은 지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문헌이나 발굴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추측입니다.
요점 정리
풍양면 안에서 산성과 직접 관련된 곳은 풍양면 풍신2리 산성마을입니다.
위치는 풍양면 남쪽, 건지산·황금산 줄기의 산 중턱이며 마을 뒤에 산성터가 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예천군 자료에도 ‘산성마을’과 ‘마을 뒤 산성’이 기록되어 있어, 단순한 현대 명칭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벽 구조·둘레·축성 시기·출토유물이 공개된 발굴자료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산성터 전승이 있는 유력 후보지’라고 해야 하며, 삼국시대 산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삼강리와 가까운 원산성·비룡산성은 중요한 인접 산성이지만, 행정구역상 풍양면이 아니라 용궁면 대은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