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칠백일흔한 번째
미운 정, 고운 정
어느 유명 연예인에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겠냐.”라고 물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 그러더랍니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연예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처럼 까다로운 여자를 만나 남편이 고생할까 봐 그분을 위해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만약 남편이 원한다면 기꺼이 다시 하겠다고 했답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일 겁니다. 요양병원 돌봄의 최전선에서 16년을 일한 간병 팀장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한 달의 절반을 병원에서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라고 합니다. 긴 시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환자는 더 이상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 되더랍니다. 그 순간 떠오르는 말이 나태주 시인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돌보는 환자의 삶이 또한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돌본 환자가 가족처럼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싶지만, 단순히 직업적으로 환자를 대해서는 그리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말처럼 “간병은 단순히 돌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녀의 마음에 자비심慈悲心이 있었기에 그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자비심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을 직면하게 만드는 일을 겪으며 우러나는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말 가운데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그런 뜻일 겁니다. 부부 사이에는 어쩌면 미운 정이 더 많았을지 모르지만, 자비심으로 바라보았기에 미운 정도 고운 정이 되었겠지요. 아마 내 아내 역시 내가 불쌍해서 자비를 베풀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