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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큰 군대더라 말씀/에스겔 37:1-14 요절/ 에스겔 37:10 | 2024. 4. 7 | |
봄수양회 제 2 강 |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몇 해 전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이정구 상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해병대사령부 특수수색대 소속으로 26년 동안 무려 5만 명 이상의 해병대 훈련병을 교육하였습니다. 그의 별명은 로보캅입니다. 그의 훈련을 받으면 개성 강한 남자 연애인들도 귀신 잡는 해병대가 됩니다. 하지만 이정구 상사도 사람을 훈련해서 강한 군인으로 만듭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마른 뼈를 극히 큰 군대로 만드십니다. 마른 뼈를 큰 군대로 만드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말씀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만나 생명과 소망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2차로 침공(BC 598) 했을 때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습니다. 그후 그의 나이 삼십 세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아 22년 동안 바벨론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가 말씀을 전한 때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절망적인 때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나님은 권능으로 에스겔과 함께 하시고 그의 영으로 에스겔을 골짜기 가운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봄꽃이 피는 설악산 골짜기 같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갈비뼈, 등뼈, 통뼈, 해골뼈, 각종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였습니다. 게다가 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공포스럽고 참담하여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 뼈 사방으로 지나다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처참한 모습을 보게 하셨을까요? 이는 현재의 이스라엘의 형편이 영적으로 얼마나 절망적인가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잡혀온지 많은 시간이 지났고 바벨론 생활에 많이 적응했을 때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완전히 이방화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이런 그들은 죽어 오래된 마른 뼈들 같았습니다. 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은 다 멸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포로 가운데 두신 것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로 하나님을 떠난 그들을 훈련하셔서 다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소망을 완전히 상실한 체 바벨론의 노예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본 에스겔은 마음은 참담하였을 것입니다. 마른 뼈 같이 된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3a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질문 속에는 마른 뼈들을 다시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에스겔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3b절을 보십시오.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이 뼈들의 상태를 좀 보셔요. 어떻게 말라버린 뼈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치도 않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에스겔이 그렇게 대답했다면 “너는 선지자가 아니더냐, 참으로 믿음이 없구나” 뼈 때리는 책망을 듣고 뼈다귀로 한 대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에스겔은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다 가능하다고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대답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뛰어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겸손한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시각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때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되지도 않고 믿음 없는 현실주의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미 해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때 8년 동안 포로 잡혀 있었고 절반의 기간을 가로 90㎝, 세로 275㎝ 독방에 갇혀 지냈지만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수용소의 다른 포로들은 부활절이 되면, 추수감사절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되면 곧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심하고 절망하여 자살을 하거나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톡데일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동시에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때 그는 끝까지 인내하며 건강을 지키고 때가 되어 자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캠퍼스의 영적 상황은 어떻습니까? 캠퍼스 학생들을 보면 전혀 마른 뼈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키도 크고 옷도 잘 입고 다들 바쁘게 잘 돌아다닙니다. 이런 양들 앞에 서면 어떨 때는 우리들이 초라해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구원 받기 전의 인간의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OECD 국가 1위입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취업절벽, 이성문제, 인간관계문제, 가정문제 등으로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 게임, SNS, 미디어 심지어 마약에 중독되어 마른 뼈 같이 된 청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파릇 파릇한 새내기들은 희망으로 생기가 넘칠 것 같은데 조금만 대화해 보면 학교문제, 적성문제, 경제문제, 친구관계, 장래염려 등으로 벌써 마르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보입니다. 몇 주 전 캠퍼스 식당에서 만난 학생은 동아리 홍보 때 목자님들과 만나 관계성을 맺은 새내기 형제였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아는 척을 하였는데 그는 눈 인사만 살짝 하고 제 옆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밥만 먹고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마른 뼈가 옆에서 있다가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캠퍼스 양은 고사하고 자녀들 조차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복음역사에 대한 희망과 심정이 아주 말라버리기 쉽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십자가는 많고 캠퍼스 상황은 변함없이 차가운 겨울 같아 목자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아주 마를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춘천 5개대 마른 뼈들이 능히 살아나겠느냐?”, “엘리야야, 영적 소원이 말라버린 자녀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의 대답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에게 무슨 명령을 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도 없는 해골바가지를 앞에 두고 말씀을 전하라니요! 예전에 목자님들 중에는 일대일 양이 없으면 믿음과 심정을 덧입고자 꽃이 핀 화분을 앞에 두고 말씀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는 아름다운 꽃을 보는 즐거움이라도 있습니다. 마른 뼈는 흉측하고 무표정, 무반응, 무감동입니다. 초중생들의 무관심의 표현인 ‘어쩔TV, 저쩔TV’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입만 아프고 맥이 빠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순종하여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에스겔이 대언할 여호와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렇게 대언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 저기서 ‘부스럭, 부스럭’,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인체의 206개의 뼈들이 자기 위치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뼈 저뼈가 들어맞고 연결되었습니다. 에스겔은 계속 대언했습니다.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을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하니 그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수많은 마른 뼈들이 사람의 모양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왜 하나님은 ‘너희 마른 뼈들아 살아나라’ 직접 뼈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에스겔에게 대언하게 하실까요? 이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체험케 하기 위함입니다. 직접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통해 그대로 대언 된 말씀도 동일한 능력이 있음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무덤을 열고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12-14). 그런데 나라를 빼앗긴지 오래 되었고 바벨론 문화에 젖어든 그들은 이런 소망을 가지기 힘듭니다. “에스겔 목자님, 저 강성한 바벨론을 보세요. 우리는 아무 힘이 없는 포로 백성입니다. 더 이상 희망고문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언 된 말씀대로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을 본 에스겔은 확신 있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독립운동이나 무장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대언 된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포로생활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귀환하고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우고 나라를 회복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대언 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말씀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가십니다. 우리는 메세지로 성경공부로 대언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시대에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목자의 심정과 믿음이 있는 종들이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른 뼈 같은 영혼들을 살리십니다. 의술이 탁월한 정형외과 의사가 부러진 뼈는 고칠 수 있어도 죄로 인해 마른 뼈 같이 된 영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믿고 대언하는 자는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학생 리더들이 신앙경륜이 짧을 지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담대히 캠퍼스 영혼들에게 말씀을 대언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학사사모 목자님들도 양들과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말씀을 대언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른 뼈가 사람의 형상과 골격을 갖추었으나 생기가 없었습니다. 생기가 없음으로 여전히 생명이 없는 죽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생기는 생명의 기운으로 바람, 호흡, 숨, 영 등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루아흐(רוּחַ)ַ)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때 비로소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야 살아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생명의 원천인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임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이 대언하자마자 죽음의 기운만 가득했던 골짜기에 신기하게 생기가 사방에서부터 와서 죽어있는 자들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 전신에 피가 돌고, 얼굴의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서 ‘좌우로 정열’ 하며 오와 열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창조주시오 부활의 하나님을 향하여 경례! 충성!”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형상 속에 생기가 들어갔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 사람 안에 들어가면 죄로 인해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일어나 큰 군대가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영적으로 무지한 자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요 영적으로 죽은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살아나게 됩니다. 또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시면 열악한 환경이나 시대 상황을 탓하기보다 도전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은 두려움 많고 누가 크냐 경쟁하는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자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담대하고 영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으며 세우신 리더십을 중심으로 겸손히 합심 동역하는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든 죄를 진실 되게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또 성령님이 거하시려면 성령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모셔들여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한 에베소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존재를 깨우쳐 주고 안수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들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고 마술책이 불태워지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충만히 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요즘 우리 모임 가운데 성령님이 임하시고 살아 일어나 하나님의 군대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년학생부대는 매일 저녁 9시 양식기도모임을 하고 캠퍼스 전도와 일대일 전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성령이 임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자 끈질기게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님, 성령의 바람이 죽어 있는 캠퍼스 영혼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열등감과 정욕과 이기심과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적으로 마른 뼈 같았습니다. 저는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서 대학 1,2학년 때 여러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내면이 허무하고 공허했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공허함 속에서 군대에 갔는데 군에서 사건이 터저 본의 아니게 악질 죄수들만 들어가는 독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절망하여 살 소망이 없는 마른 뼈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UBF목자님을 보내 주셔서 일대일로 대언 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 대언 된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죽은 영혼을 살리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고 캠퍼스 목자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열심히 학생목자 생활을 하였지만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하였을 때 늘 피곤하고 지치고 한계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학생 때 훈련명이 ‘스피릿’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죄를 멀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살아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었습니다. 풀타임 목자로 캠퍼스를 누비며 믿음 있고 사랑스러운 김한나 목자님과 결혼도 하고 두 자녀를 낳고 키우며 양들을 돌보는 힘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적으로 저는 자녀와 양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데서 한계에 부딪쳐 있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대언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말씀 연구하고 대언하는 데 힘쓸 뿐 아니라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마른 뼈를 큰 군대로 일으키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삶,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춘천 5개 캠퍼스와 세계 캠퍼스 가운데 하나님의 큰 군대로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