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 새마음, 새 계명이라고 할 때 그 “새로운”의 의미는 관계의 새로움과 태도와 방향이 달라짐을 뜻한다. 사울이 새사람이 되었다. 사울의 몸이 바뀐 것이 아니라 같은 사울 안에 새 영이 임한 것이다.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삼상 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사울이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거듭났다는 것이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거듭남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출발은 멋지고 기대되는 출발이었다.
(삼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삼상 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삼상 10: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진 사울은 선지자들의 무리에 섞여서 예언도 하면서 선지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처럼 그도 선지자의 대열에 들어가는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기회들을 잘 활용하고 선한 마음으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름다운 용모와 늘씬한 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 사울,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세상을 미혹하는 영은 택한 사람이라도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엿보면서 타락의 길로 이끌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경고했다.
(히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어떤 땅은 하늘의 비와 이슬을 맞고 합당한 채소를 내고 어떤 땅은 쓸데없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듯이 그 밭의 상태에 따라서 그 열매가 달라진다. 사울은 다윗처럼 새마음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그의 영혼의 밭에는 미움과 질투, 원망과 복수라는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났다. 그리고 그런 잡초들이 자랄 때 쉬지 않고 잡초들을 제거해야 했건만 사울은 그것들을 방치했고 그의 온 영혼의 밭을 다 덮을 때까지 그것들을 키우게 되었다.
한때 거듭났던 사람, 한때 새사람이 되었던 사람, 한때 구원받았던 사람, 그러나 마지막 날에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사울의 말로가 비참하듯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선언을 들을 때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만큼 믿음으로 구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받은 은혜를 등한히 여기지 않도록 날마다 새로운 영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한때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거듭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