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의 기억에 덧붙여서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이제 ‘보신탕’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 같습니다. 보신탕 금지법이 생겼다고요. 제 어린 시절의 서글픈 추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 늘 나를 반겨주던 강아지 ‘록키’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가 몸이 약한 한 교인에게 보신(?)하라고 주신 겁니다. 한동안 빈 개집을 지나갈 때마다 슬펐던 것 같습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보신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 환경이 그걸 먹을 기회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이 어느 날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보신탕은 안 먹는다고 말하기에는, 그분을 당황하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너무 튀는 것처럼 보여서 따라가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극찬(?)에 비해서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굳이 보신탕을 그후에도 먹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분이 꺼림직했던 것도 있었겠지요. 사실 사람들은 보신탕이 영양이 많아서 먹는다고 하지만 그건 옛날 이야기 같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영양가 많은 고기를 일반 서민이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죠. 그때는 명절이나 되어야 이밥에 소고기국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에 비해 개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양 많은 음식이 너무 많은데 굳이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사랑을 주고 받는 개를 먹을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이걸 좋게 보느니 나쁘게 보느니, 이와는 상관 없이 말입니다. 저는 보신탕이 이제 금지된 시대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마음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신탕을 먹었던 과거의 풍습까지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라는 입장은 좋지 않습니다.
옛날에 보신탕을 먹었던 시절까지, 그때 사람들까지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요. 그때는 보신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형편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옳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는 틀렸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고 과거까지 소급해서 사람들을 비난하면 좋지 않습니다. 또 ‘그때는 맞았으니 지금도 맞다’고 우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라는 태도가 좋습니다. 항상 시대의 변화를 읽고 오류를 인정하지만 과거도 포용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변화하는 용기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인 듯합니다☺
(2024년 1월 21일 주일 주보에서)
▲ 군대 제대한 후에 길렀던 복순이
첫댓글
눈빛이 선하고 귀여운 이름 '복순이' 참으로 복스럽게 생겼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목사님께서 특별히 애정을 갖고 키우셨으니 사진을 보시면서 더욱 진한
그림움으로 떠올려지는 그때 그시절이 아니실까요ㅎㅎ
예전엔 공동주택보다는 단독주택이라 가정마다 복순이들이 많아서 빈집의 수호천사로 말벗도 되어주고 사랑도
독차지 했었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식같은 반열에 올라서 귀히 모시는 애견들이지요
복순이가 누굴 기다리는 눈빛 같은데 카메라가 낯설어서 일까요 ㅎㅎ
복순이 사진까지 갖고 계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복순이가 참 이쁘네요.
털옷도 고급스러워 보이구요ㅎ
아마도 나는 그 때 길음동을 떠나 있을 때였는지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리워지네요. 그 시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