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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안전장치
히브리서 5:1~10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제가 잘 알고 지냈던 분의 남편이 평시에는 무척 건강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슥거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더니 담도암 말기에 이르렀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앞이 캄캄한 사건입니까?
그런데 다행히 실비보험을 들어 놓은 것이 있어, 모든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고 남편이 사망 후에는 사망에 따른 보험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은 반드시 들어 놓아야 한다고 하였을 뿐 아니라 아예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고와 사건을 대비해 각종 보험은 들어 놓으면서 정작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안전장치를 해놓지 않고 살고 있다면 이는 무척 어리석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아주 가까지 지낸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어린 3남매를 남기고 중한 질병을 앓다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런 황망한 사실 앞에 목사님과 더불어 기도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시어머니 권사님과 여러 성도가 힘을 모아 함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모님이 다시 살아나셨는데 그 후 그때의 상황을 말씀하신 것을 오늘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러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갈 때 어떤 비단보다 더한 부드럽고 미끄러운 옷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날 때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볍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영혼 상태에서도 듣고 보고 느끼는 감각은 육체로 있을 때 보다 더 선명하더랍니다.
사모님의 영혼이 흑암이 드리워진 터널을 지나게 되고 터널 끝에는 어둠과 광명한 빛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었는데 그 부분에 도달하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지길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사모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어 말하자면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부모와 모든 일가친척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슬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망과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큰 슬픔이 엄습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 절망과 슬픔을 안고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갈 때 사모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지고, 마치도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1분에 수백 명이 죽고, 1시간에 수만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수십만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동안의 모든 것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드러나는 날이 바로 심판대입니다. 여기서 어느 사람도 자신을 변명할 수 없습니다. 불꽃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우리의 악함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악하고 불의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옳게 여기고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행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습니다. 내 평생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노라고 큰소리치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재판장 되어 죄라고 판정하시고 불의라고 말씀하시면 영원한 저주의 구렁텅이인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날을 대비해서 생명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이 안전장치는 아무 흠이 없으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살 때 대제사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여 년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광야로 나왔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어야 했던 환경은 매우 가혹하고 힘든 조건이었습니다. 광야는 낮에는 매우 뜨겁고 밤에는 급격히 낮아지는 기온 차가 큽니다. 낮 기온은 40도 이상까지 올라가며,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서 서늘하거나 심지어 차가운 날씨가 지속합니다. 광야에서는 물과 음식이 매우 귀했습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고, 바위를 쳐서 물을 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족한 자원에 대해 불평하며 갈등을 겪었습니다. 광야에는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존재했습니다. 광야의 땅은 거칠고 바위가 많았으며, 특히 뱀, 전갈 등의 위험한 동물들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예기치 못한 폭풍이나 모래 폭풍도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못지않은 주위 여러 나라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노예 문화가 대부분의 나라에 정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변의 약한 나라를 침범해서 백성을 끌어다가 강제적으로 노역을 시켜 국가의 경제를 끌어 올리고 건축을 주도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백성은 이런 내외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40년의 광야 생활을 잘 견디고 마침내 이기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 배후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의 안전장치는 그들의 진이 머무는 성막과 하나님께 드려지는 매일의 제사를 통하여 가능하였습니다. 민 2:17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의 역할에 대하여
히 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이므로.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선택받은 자라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백성들의 입장과 처지를 잘 이해하고 그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중재하는 중보자(中保者)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중보자적 역할을 이루기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는 대속죄일과 연관된 것으로서, 대제사장은 1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 자신을 포함한 온 백성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히 5: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타인의 무지와 미혹을 용납할 수 있는 자입니다. ‘무식하고’의 헬라어 ‘아그노우신’은 ‘알지 못하다’ 혹은 ‘모르고 죄를 짓다’라는 의미이며, ‘미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라노메노이스’은 ‘잘못 인도되다’라는 의미입니다. 히 5: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했으며, 또한 일반 제사장들보다 더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었으나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죄지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대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제도가 속죄일입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일반 회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직계 권속을 위하여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행하는 제사 중에 드리는 기도는 세 가지입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죄를 위하여, 아론 계통 제사장들의 죄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렇게 대제사장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쉼 없이 하나님께 자신과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내므로 척박하기 그지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철저한 돌 보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비록 창과 칼이 없었지만, 주의 어떤 나라에 의하여 침범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대제사장을 이 땅에서 살 때만 하나님께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영혼 육의 안전장치가 되셔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죄 아래 있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양과 염소와 소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가 계속해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분으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는 것으로 제물을 대신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더는 제사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히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하였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레위 지파가 뽑혔고 제사장은 아론의 혈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그 가운데 뽑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낳았다’는 본체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그분은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존귀함으로 가지고 이 땅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당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십자가에서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피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 사랑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사망을 가져왔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에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죄의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출산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고통을 예수님이 감당하신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뚫고 태어난 아이를 잊을 수 없고 그 아이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다 하더라도 아까워하지 않는 모성애처럼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쏟으신 아픔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 사랑에서 우리는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히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멜기세댁이란 ‘의로운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거룩에는 어떤 누구도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도 행복도 앗아갈 수 없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영혼은 절대 보호를 받게 되어 그 어떤 안전장치 보다 우리의 생명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은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근거로 우리의 죄를 전혀 찾을 수 없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피가 없으면 심판대 앞에서 나를 변호할 수 있는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오직 우주 만물 가운데 나 홀로 두렵고 떨리는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영원한 생명의 안전장치가 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분은 이땅에 살 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원까지 우리의 안전장치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