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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이황(1501-1570),
퇴계어머니 춘천박씨는 1470.3.18 생(춘천박씨 중시조 박항의 7세손). 퇴계어머니의 고조할아버지(박항의 손자,박광정)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회룡포로 유명한 동네,내성천이 있는 곳 ) 대죽리로 이사. 퇴계어머니의 고조부는 춘천박씨 중시조 박항(1227-1281))의 두명의 아들중 판사파 박원비(춘천 북산면 청평골에 묘가 있다고 함)의 후손으로 , 퇴계는 박항의 6세손 사정공 박치의 외손자다. 굳이 따지자면 퇴계는 외가로 박항의 8세손인 셈이다. 그리고 퇴계의 외할아버지는 춘천박씨 평해(경북 울진부근)파임
즉 박항(1227년생) - 박원비- 박광정-박농(현감출신)-박효전-박치-춘천박씨(1470년생)-퇴계 이황(1501년생)의 계보로 이어진다.(출처 : 춘천박씨 족보 인터넷 판)
주) 박항탄생부터 퇴계탄생까지 270년의 차이가 난다. 1세대를 30년 잡고, 8세손이면 대략 240년, 역사속에 나타난
탄생년도를 믿어야 할지, 족보를 믿어야 할지. 일단 믿고 추적해보기로함
퇴계가 태어나기 6세대 이전 200년전(대략 1300년 초반?경, 고려 말기) 부터 이미 춘천하고는 관계가 없는 경북 내륙지역에서 살았음. 그리고 그 후손들이 평해파등 경북지역에 주로 있음
그리고 서애 유성룔이 찬(대개 풀어 쓴 글을 의미)한 퇴계년보(퇴계 일대기), 퇴계선생이 지은 정경부인 박씨묘갈
(퇴계선생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묘비문임)에는 어머니 박씨가 춘천박씨로 나옴. 그런데 퇴계가 지은 묘비문 원문에는
어머니 관향(성씨본관을 의미함)이 춘천이라고 나온다고 함 . 관향에서 관을 빼고 , 향을 놓고 고향이 춘천이다 라고 해놓으니 옜날부터 옮기고, 연구하는 사람이 그대로 옮기고, 어떤 이에 의해 인터넷에 퍼지고 하여, 퇴계동이 퇴계이황과 관련있다고 퍼지게 된 것이라 생각함. 더우기 다산 정약용 춘천여행기에서 퇴계이황과 고향을 춘천이라고 이야기 해놓았으니 더욱 그럴싸하게 퍼진 듯함 . 실제 무덤의 묘비, 묘갈에는 본관 성씨(예 춘천박씨), 즉 관향을 적지 고향을 적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유성룡이 찬한 퇴계 년보를 보면 서울, 여주, 단양 정도가 퇴계가 지역적으로 위로 올라간 지역인 듯함. . 따라서 퇴계가 어릴 때 어머니 고향에 왔다는 둥, 청평사에 갔다가 들렸다는 둥, 어머니 고향집이 퇴계동에 있었다는 둥, 공지천이 퇴계가 먹던 전설의 물고기(공지) 가 있던 냇물이라는 등등은 전설 혹은 구전, 아님 문암서원에 퇴계 이황을
배향하니까 춘천박씨와 퍼져서 퍼진 전설인지는 모르겠음.
그리고 퇴계어머니는 계실로 결혼하여 전실소생 2형제중 1명도 죽고, 남편이 별로 일을 하지 않아, 고생하며 자녀를 키웠다고 함. 마치 우리 시대의 어머니 들처럼 농사, 양잠등을 하여 자식을 키웠다고 함. 그래서 퇴계를 낳고 춘천이라고 하는 첩첩산골을 왔다갔다 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고 생각됨. 즉 6대조 할아버지가 춘천을 떠나 경북지역으로 갔는 데 난데없이 퇴계 어머니가 퇴계동에 있었다는 가설이 됨.
참고로 춘천박씨 중시조묘(신북), 평장사파 (인제)듣등의 묘가 우연찮게도 2군단 본부, 3군단 본부와 연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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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족보 조사를 하셨네요! 퇴계의 경우 지금은 연월일시까지 평생의 연보가 아주 상세하게 학술적으로 조사되어 있지요. 생애 딱 한 번 서둘러 지나가며 소양정과 청평사 앞을 지나갔을 뿐, 퇴계동엔 간 적이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조사를하셨네요...잘 읽었습니다....참고로 적은 글은 아마도 군단 사령부의 위치를 잡을 때 흔히 음택과 양택이 같다는 의미에서보면 좋은 자리에 군단터를 잡은게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보통 군사적으로는 산을 배후로 두고 자리를 잡고 그것도 남향을 잡는다고 하니(우리나라가 남북이 대치중인것과 연관)흔히 명당의 조건과 군부대의 조건이 일치한다고 보아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