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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연마하고 있는가? (시2-64)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찬양 : 주가 일하시네
본문 : 시64:1-10절
☞ https://youtu.be/mZid23GAOwc?si=huBh8mRCUa4Ic97I
어제 주일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직도 사람의 반응에 마음을 빼앗기는 나를 보면서 주님께 죄송했다. 이제는 진정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데 주님의 시선보다 사람의 시선에 마음을 빼앗기는 나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오늘은 중보기도 팀 부흥회가 있는 날이다.
중보기도 세미나를 받으신 분들 중에 사모하고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 모여서 부흥회를 한다. 이 자리는 모두가 공감하는 자리이기에 뜨겁게 기도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 내게 힘이 된다.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으로 모두가 뜨거운 영적 전사로 다시금 일어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시편 64편은 다윗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다윗이 근심하는 핵심은 언어적 폭력이었다. 3-4절
‘그들이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
<연마하며 – 겨누고 – 쏘고 –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숫돌 삼아 내 혀의 날을 세우는 행위다.
다윗이 느낀 고통은 단순히 욕설을 듣는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지적으로, 체계적으로' 언어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공포였다.
흥미롭게도 이 <연마하며>란 단어의 히브리어 '샤난'이라는 단어는 신명기 6장 7절에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할 때도 사용되었다.
동일한 단어가 한 곳에서는 <생명의 샤난>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의 마음 판에 '새기기 위해' 반복해서 가르치는 행위가 된 것이고,
오늘 본문에서는 <사망의 샤난>이 되어
타인을 죽이기 위해 혀를 칼처럼 '연마하는' 행위가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이 부분이 큰 울림을 내게 준다.
같은 <샤난>이란 단어로 <열심과 반복>을 하며 연마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로 나뉠수 있음을 말이다.
다윗의 대적들은 하나님이 주신 '반복의 열정'을 파괴적인 곳에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칼날 같은 연마된 언어로 사람을 넘어뜨리고 죽이는 데 쓰려고 서로를 격려하며 남몰래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5절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이들의 격려와 깊은 논의와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악한 이들의 의리가 의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 세상이 아닐까?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선포한다. 7-8절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악인들이 갑자기 쏜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도 갑자기 그들을 쏘신다.
그들의 치밀한 모의, 완벽해 보인 묘책이
한 순간 하나님의 개입으로 무력하게 넘어진다.
놀랍게도 그들이 연마한 그 혀를 심판의 도구로 말이다.
그리고 다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10절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즐거워하며 – 피하리니 – 자랑하리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영적 전쟁의 승리는 원수를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원수의 공격 속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에 있음을 배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지막 단어는 '찬양(자랑)'이 될 것이다.
오늘 중보기도 부흥회와 내일 있을 중보기도 세미나 준비가 있는 날,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삶은 유람선이 아니라 전쟁터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칼을 연마하며 우리를 전혀 예측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사실은 오늘도 그분을 즐거워하며 그분에게 피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피한다는 것은 세상의 악을 악으로 상대하지 않으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연마한 독한 말로 우리를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길을 떠나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공격에 다윗처럼 겸손히 피하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또 십자가에서 묵묵히 걸으신 예수님처럼 나아가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나는 ‘사망의 사난’을 연마하는가? ‘생명의 사난’을 부지런히 가르치는가?
주님, 이 하루 종으로서 사망의 사난이 아닌 생명의 사난이 되는 하루로 살기를 고백합니다. 오늘도 영적 전쟁터를 살아가는 자로 분별력을 주셔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 품에 안겨 생명의 사난이 되는 삶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원수의 화살을 꺾는 유일한 방법은, 내 화살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는 것이다.>
적용 질문 :
나는 '사망의 화살'을 갈고 있습니까, 아니면 '생명의 날'을 갈고 있습니까?
2. 세상이 나를 공격할 때, "하나님이 쏘시리라"는 공의를 신뢰하며 잠잠히 주님께 피하고 있습니까?
3. 원수의 독한 말과 두려움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피하신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