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인문학 강의]美서 10만부 팔린 책 국내서 200만부나 팔린 이유는?
국민들 올바른 사회질서 `정의'에 폭발적 관심 갖기 시작 철학은 물질적 부(富)를 풍요로운 삶(生)으로 만들어줘 지금까지의 삶과 다른 `또 다른 삶'을 항상 끼고 있어야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인문학은 행복을 추구한다. 인문학은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세상에서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알려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회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좋은 삶이라 했다. 이에 강원일보사는 좋은 삶을 위한 의미 있는 통찰과 자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아침을 여는 인문학 강의'를 연중 싣는다.
2010년 5월 출판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1년도 안 돼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독자들이 우선 놀랐겠지만, 한국 사람들 가운데 정말 놀랐던 이들은 우리나라 철학 교수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는 이는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 자신이었다. 본토에서 겨우(?) 10만부 팔렸는데, 별 관심 없었던 한국에서 2015년 1월 현재까지 누적 판매부수가 200만부나 된다?!
# 한국서 200만부 판매 `정의'란
샌델 교수가 책에서 언급한 정의의 이론들 가운데 한국 대학의 윤리학 강의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 이 책이 나오기 몇 년 전 샌델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강연하고 토론회를 가졌었는데, 대중적으로나 공적으로 거의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었다.
그런 이가 강연했던 일종의 사회윤리학 개론서가 본토보다 스무 배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다니,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폭풍 인기의 원인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인류 문명에서 철학이 행해진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철학 주제들 중 하나인 올바른 사회질서 즉 `정의'의 문제에 대해 200만 이상의 대한민국 시민들이 철학적 차원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이런 관심은 이 책 출간 2년 전에 출범했던 MB 정권의 `국민 성공 시대'라는 구호의 방향과는 전혀 배치된 것이었다. 17대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이 구호는 국민 누구나 돈을 벌어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주식과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있던 참여정부 말기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그런 민심의 초점이 2년도 안 돼 돈에서 정의로 반전하였다. 그리고 그 뒤 시장,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에서 인문학 강의가 유행이 되었다. 번역 철학서 한 권을 보고 국민적 관심이 아예 경제적 문제에서 철학과 인문학으로 이동했다는 식으로 단정하면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경제이든 아니면 철학이나 인문학이든 국민적 관심의 기본 동기는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이다.
# 경제개발 시대 `돈=잘 사는 삶'
1960년대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그 노력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던 박정희 정권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벌 수 있는 돈은 모두 벌어들이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한국인의 마음에 각인시켰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온 국민에게 국가적으로 확신시켰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중심으로 이 사회의 모든 가치와 질서를 짜 맞추었다.
1960년대에 아동기를 보내고 1970~198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가 중년 말을 보내는 2010년대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국가에 모인 돈의 총액은 우리가 인생을 출발했던 50년 전보다 수백 배가 늘었고, 국가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의 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잘 살아보세!”라는 1960년대 노래 가사에 대해 “잘 살게 됐네!”라는 가사로 화답할 수 있는가?
# `좋은 삶'에 대한 고민 부족
“좋은 삶(Good life) 또는 잘 사는 삶(Well-living)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큼이나 오래된 전형적인 `철학적' 물음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이 물음을 철학적으로 물어볼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고, 어느 면에서는 철학적으로 묻는 것 자체를 냉소하거나 터부시해 왔다.
어떤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묻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과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전부'인가를 되물으면서, `우리가 좀 더 가질 만한 것(가치·價値)'을 그 밑바닥까지 곰곰이 깊이 살펴(성찰·省察) 새로이 찾아내는 것(탐색·探索)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항상, `지금 있는 그 이상의' 존재이다. 현재 있는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살아갈 경우, 인간은 그 신분의 높낮이나 소유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억눌린 존재이다.
#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철학'
그래서 인간이 지금의 삶에 만족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또 하나의 삶을 항상 끼고 있어야 한다.
철학은 지금의 삶과는 다른 나의 또 다른 삶을 깨닫도록 한다.
이 점에서 철학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만든다. 그리고 철학을 하면 우리는 같은 삶이라도 한 번 더 살게 된다. 따라서 철학은 물질적 부(富)를 풍요로운 삶(生)으로 만들어준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오직 돈 벌어 부자 되는 데만 신경 쓰며 살아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돈 버는 것의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지 않고 사는 것, 즉 철학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철학 없는 삶의 상황은 지금 어떤가? 빈곤하다. 그것도 많은 돈을 쌓아놓고도 빈곤하다.
우리는 우선 그렇게 많이 벌어놓은 돈이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도 돈이 들게 만들어 기본적인 생계조차 더 힘들게 되었다.
자, 이제 이 나라가 계속 더 발전하기 위해 철학할 때가 왔다. 우리가 쌓은 부에 대해 이런 철학적 문제를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물음 1. 이제껏 번 돈을 사람 사이에 어떻게 돌려야 돈도 계속 더 벌리고 사는 것도 계속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물음 2. 돈으로만 실현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그런 일을 하는 이들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돈을 쓰는 방법은 없을까?
한 마디로, 돈이 모든 국민의 자유와 풍요로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정말 철학이 필요할 때이다.
(完)
■홍윤기 교수 주요 프로필
-현 동국대 철학과 교수
-강릉고, 서울대 철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박사(최고우등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위원, 사회와 철학연구회 회장(전임)
-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1995), `지식정보화 시대의 창의적 능력 및 인력 양성 정책 개발'(2007), `민주청서21.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2010) 등 저서, `철학의 변형'(1998), `한국 도덕윤리교육 백서'(2001) 등 편저서, J. 하버마스의 `이론과 실천', `의사소통의 철학', M. 베버의 `종교사회학. 힌두교와 철학' 등 번역서 다수 및 경기도교육청 발간 초·중·고등학교 철학교과서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