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루멘체치스(Lumen Caecis); 눈먼이에게 빛을!”
2025.12.13. 토요일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틸리아 동정(660-720) 대축일
이사35,1-4ㄷ.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오늘은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이지만, 우리 요셉수도원을 비롯한 왜관수도원 및 오틸리아 연합회에 속한 모든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은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틸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빛과 관련되는 두 성녀를 잠시 소개합니다.
‘빛’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어 룩스(Lux)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지닌, 루치아 성녀는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납니다. 일찍 스스로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했고 어머니께 동정생활을 허락받은 성녀는 자신의 결혼 지참금을 모두 가난한 이에게 나눠줬고, 성녀에서 청혼했던 청년은 분개하여 성녀가 그리스도인으로 로마의 법을 어겼다고 고발합니다.
마침내 배교를 강요하는 재판관에게 “당신이 황제의 뜻을 따르기 원하듯, 나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거부한 성녀는 결국 304년경 순교의 죽음을 당합니다. 순교 직전 모진 고문으로 눈알이 뽑히는 형벌까지 받았으나 천사의 도움으로 뽑한 눈알을 돌려받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적 일화도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성녀는 이름 뜻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의 순교자가 되고,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이, 또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특히 성녀 루치아를 닮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루치아 자매들을 위해 미사봉헌합니다. 주님의 빛같은 삶을 사는 김루치아 수녀, 조정미, 박온화, 이후옥, 이재분, 민경숙, 정화자, 방창연, 차영미, 황석선, 모두 참 신심깊고 충실한 루치아 자매들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오틸리아 성녀의 삶 역시 전설적입니다. 660년 무렵 프랑스 알자스의 영주의 딸로 태어났으나 눈이 멀었다는 이유로 성녀의 아버지 아달리히 공작은 그를 죽이려하나 구사일생 살아난 성녀는 수녀원에 맡겨지고 12세 무렵, 멀리서 계시를 받고 온 레겐스부르크의 에르하르트 주교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 예식중 성유를 바르는 순간 오틸리아가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후 성녀는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고 환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보살폈다 합니다. 세례 은총으로 눈을 뜬 성녀는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나 시각장애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게 됩니다. 오틸리아 연합회에 속한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의 선교 모토인 “루멘체치스(Lumen Caecis); 눈먼이들에게 빛을!” 이란 말마디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참 오묘하게도 오는 축일을 지내는 성녀 오틸리아와 루치아 모두 시각장애인들의 수호성인들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눈이 열립니다. 두 성녀의 전구도 개안開眼의 여정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예외없이 무지에 눈먼 사람들이요 주님을 만날 때 마음의 눈이 열리며 날로 맑고 밝아지는 <개안의 여정>을 살게 되는 믿는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이 참 적절합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
마음이 순수하여 맑고 밝으면 눈도, 몸도 맑고 밝아집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 치유될 때 맑고 밝게 빛나는 순수한 마음이요, 이런 마음은 그대로 눈과 몸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환하니 눈도 몸도 환해져 저절로 전인적 치유의 구원입니다. 그대로 대림시기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다음의 <그때>는 대림시기의 <오늘>이 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참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치유와 구원의 기적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불편중에도 영적 건강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유는 눈빛으로 담기고 세월은 주름으로 새겨집니다. 얼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입니다’<다산>. 마음의 얼이 드러나 얼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영적건강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첫째, “기뻐하라!”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기쁨의 선물입니다. 고해인생이 아니라 기쁨의 축제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좋아했던 희망과 위로의 예언자인 동시에 기쁨의 예언자, <기쁨의 대가>가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전임 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기쁨이야 말로 믿는 이들의 신분증입니다. 그대로 대림시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기쁨의 빛이자 생명입니다. 이런 기쁨과 함께 가는 마음의 순수요 날로 맑고 밝아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마음이 은총과 노력으로 맑고 밝아지면, 눈도 몸도 저절로 맑고 밝아져 온전한 치유의 구원입니다.
둘째, “두려워하지 마라!”
기쁨의 빛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이신 주님과 함께 할 때 저절로 사라지는 두려움의 어둠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심의 예수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성구가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권고도 우리에게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너희는 맥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방금 힘차게 부른 화답송 후렴도 이와 일치합니다.
“주여, 오소서. 오사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시는 주님께 날로 가까워질수록 기쁨의 순수로 빛나는 마음에 저절로 사라지는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입니다.
셋째. “초연하라!”
이런 이탈과 초연함의 대가가 바오로 사도입니다. 기혼자든 미혼자든 상관없습니다. 참으로 품위 있고 충실히 주님을 섬기기 위한 세상 것들로부터의 이탈이요 초연함의 홀가분한 자유입니다. 세상 것들의 무시가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에 의한 거리두기, 초연함입니다.
“형제여러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처럼”의 삶은 위선이 아니라 영적 성숙을 드러내는 초연한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깊어지는 관계와 더불어 세상 것들로 부터의 자연스런 이탈에 날로 초연한 자유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어 “눈먼이들에게 빛”을 선사하며, 주님과 함께 순수한 기쁨에 빛나는 축제인생을, 관상과 선교인생을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복음선포의 꽃자리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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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은총과 노력으로 맑고 밝아지면,
눈도 몸도 저절로 맑고 밝아져 온전한
치유의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