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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래동안 집에서 쉬었지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적어보았습니다.
많은 비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남매의 막내 딸
태어나서 일주일 만에 부모님과 헤어져 조부모님의 품에서 자랐으나, 저는 언제나 할머니의 여덟 번째 막 딸 같은 존재였습니다. 작은 아버지께서 저를 위해 사오신 염소 젖으로 엄마 젖을 대신하였고, 4명의 고모들은 저를 조카가 아닌 동생처럼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어느 누구도 제가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저는 밝고 명랑했으며 항상 긍정적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이라는 아주 산골에서 자라서 자연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놀았으며, 동네 어르신들에게 하루에 열 번을 만나도 열 번 다 인사하는 예의 바르고 착한 어린이였습니다. 특히 저는 대 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울 수 있었으며, 시골의 좋은 인심 속에서 사랑 받고 자란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간호사, 상담사 그리고 오뎅 아줌마.
1998년 12월 중순부터 간호사로서 첫 병원생활을 중환자실에서 시작하여, 정형외과와 소아과 경력도 있습니다. 비록 2년 반이라는 짧은 병원 생활 이였지만, 다양한 상황들을 접하면서 기본간호 및 CPR 등 간호사로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황 판단력, 정확성 및 세심함 등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세원셀론텍 ‘Bio sales team’에서는 ‘Cell-coordinator’로 부산지역 산부인과에 파견 근무하면서 산모들을 상대로 재대혈 상담업무 및 상품 판매, 산모 교육, 교육 자료 제작, 신규 직원 교육 등 간호사로서는 배우지 못하는 영업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이 기간은 저에게 있어서 힘든 시기였지만, 영업 방법, 고객응대 및 실적 관리, 수금 등 비롯하여 거래처 직원들과 융화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던 기간 이였습니다. 무엇보다 간호사로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저로서는 개인 병원의 간호조무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을 얻어내는 등,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면서 다른 사람, 나 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6년 6월, 남편이 서울 본사 발령으로 구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그곳에서 부산 오뎅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들 친구엄마들에게 오뎅을 그냥 나눠 주었는데, 그 오뎅에 시중에 파는 것 보다 맛있다고 하여 부산 동래 시장에 있는 오뎅 가계와 손을 잡고 오뎅 판매를 하였습니다. 한 번에 10만원 이상 주문하는 오뎅을 한 달에 두 세 번씩도 주문하였으며, 부산 가계에서 일일이 종류별로 5천원, 만원씩 따로 포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배송 받은 오뎅을 제가 직접 주문표 대로 포항을 해서 배달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오뎅가계 사장님께서는 6개에 천원인 오뎅을 5개에 천원씩 팔고 남는 것은 제가 따로 팔아서 이득을 남기라고 하셨지만, 주변 아는 사람들에게 굳이 저의 이득을 보고자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아서 아무런 대가 없이 주문 받아서 판매해주는 그저 중간자 역할 만 하였습니다.
새로운 도전 – New Zealand 에서
남편과 저는 항상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영어공부를 하자고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빠듯한 살림살이와 직장생활 등으로 생각만 할 뿐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2월 남편과 저는 ‘더 늦기 전에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뉴질랜드로 온 가족이 유학을 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그러나 실행 하기에는 두려움도 크고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가보지 않고 나중에 평생을 두고 ‘그때 해 볼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후회할 때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싶어서 큰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뉴질랜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19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도 많았지만, 온 가족이 모두 열심히 살았고,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하기에 평생에 걸쳐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영어에 영’자도 제대로 몰랐던 제가 어느 정도의 신력을 갖추고 귀국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영어책을 손에서 놓았기 때문에 처음 어학원에 입학했을 때는 가장 낮은 반인 ‘Elementary class’ 에서 “ good morning’ 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1년이 지난 시점에는 현지인과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그곳 대학원(법학, 교육학, 의학 제외)에도 입학 할 수 있는 점수인 IELTS 6.5를 받아,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저를 가르친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현지 교민들도 저에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친 첫 TOEIC 시험에서 900점을 받게 되어 후원해준 남편과 시부모님들께서도 아주 뿌듯해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약 6개월 정도 요양원에서 일주일에 3일씩 자원 봉사를 했었는데, 그 때 제가 느낀 것은 비록 겉모습도 틀리고, 말도 다르지만 진심은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곳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식사를 드리고 산책을 하며 서로 얘기를 하면서 느껴지는 따듯한 마음은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세상 어느 곳에 살든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가정
현재 저는 결혼 10년 차 주부로서 시부모님, 남편,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듯이 저 역시 결혼 이후 많은 모습들이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 남편이 저에게 ‘변덕이 죽 끓듯이 한다’고 하였으나 요즘은 더 많이 차분해지고 안정적으로 바뀌었으며 급한 성격도 많이 느긋해 져서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5명이 한 지붕아래에 살지만 4명의 시누식구들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저희 집으로 오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이면 그 수가 19명이 됩니다. 물론 힘든 점도 많지만 요즘처럼 핵가족 시대에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부모님에 대한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가족 모두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을 넓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하여 인내심과 이해심이 더 증가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님께서는 70이 넘으신 연세에도 현직에 계시며, 매일 아침 운동을 하시고 규칙적인 생활과 남에게 베푸는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며, 어머님께서는 자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자로서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으시는 사람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제 남편은 다국적기업에서 약 9년을 근무하였고, 현재는 자신의 경력과 영어실력을 함께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요즘 행복해?”라고 물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 네, 행복해요” 라고 대답하는 아주 맑고 행복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입니다.
나의 생활
저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면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목표를 설정하여 항상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action plains를 만들어 진행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한번 관계를 맺은 사람과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뽑으라면 저의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이십니다. 졸업한지 14년 째인 지금까지도 매달 한번씩 e-mail 교환을 하고 있으며, 제 결혼식 때에도 참석해주시고 제가 무슨 일을 할 때나 고민 거리가 있을 때마다 mentor 역할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전 직장의 상사와 후배들과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제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에도 이분들이 제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 다른 의료인의 모습으로…
의료인은 독선적이며 이기적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며 여러 팀이 힘을 모아 환자의 빠른 쾌유를 최상의 목표로 자신의 책임을 다해 최고의 효과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저
첫댓글 무슨 일이든 잘 하실 분이란 느낌이 옵니다. 새 해 소원하는 모든 일 성취하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소개서 글자 제한이 없나요? 없다면, 상세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목요연한 글이란 장점이 있습니다. 글의 행간에 흐르는 도전과 성취, 노력, 활동력이 느껴지기도 하고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왠만한 곳이라면 특히 힘들다는 제약영업에서는 눈여겨 볼 지원자입니다. 자소서는 어차피 목적을 가진 서류이고 그 목적은 내가 당신 회사에서 충분히 일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므로.다시 한 번 살펴 보시고 너무 개인적인 일상사는 빼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나오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멋있으세요!!! 화이팅^^
잘쓰셨네요^^근데..화이자 1500자 글자제한있을텐데요..
오뎅 대신 어묵이 어떨까요,, ㅋ
줄여서 줄여서 1500자에 맞추었구요... 헐~~ 이미 오뎅으로 올려버렸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부럽네요!
전 어묵보단 오뎅이 나을꺼같은데 전 친근해보이 진실되어 보이네요 ^^
감동했습니다..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31살 미혼 구직자입니다.동건모 글읽고 감동받았어요^^ 멋지시구요~ 화이팅입니다!!!. 합격하셨나요?^^